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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Aug 11. 2023

알바니아 여행 I

사란다에서 생긴 일



우리가 사란다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이미 중천을 벗어나 45도를 넘어 90도 가까이 기울어져 있었다.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서둘러 출발했건만 한나절 넘게 길바닥에서 보낸 것이다.

사란다는 알바니아 남쪽 해안도시다. 근해에서 바라본 하얀 도시는 그리스 에게해의 어느 섬과 유사한 듯 그러나 아주 많이 달랐다. 항구는 국제항이라고 하기에 작지만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깨끗한 새 건물이었다. 공항에서의 검열도 너무 간편하고 쉬웠다. 오히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외국인을 반기는 듯한다.

나는 상쾌하게도 호기심 어린 기분에서 도망치듯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가방을 질질 끌면서도 날다람쥐처럼 가뿐히 경사길을 올랐다. 뜨겁고 해맑은 햇살이 거침없이 우리를 반긴다.

아까 페리에서 만난 건장한 체코인(루마니아였는지 헷갈림) 남성과 그의 친구들이 외쳐대는 고함소리가 비탈길에서 햇살만큼이나 쨍쨍하게 울려 퍼진다. 프랑스에서 살았었다던 그는 프랑스어로 그의 아파트가 항구 바로 위에 있다는 얘기를 자부심 넘친 어투로 말했었다. 하지만 그의 언행으로 보아 어딘지 모르게 딱히 삶이 평범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혹 마피아가 아닐까?


알바니아, 발칸반도의 아드리아해와 이오니아 해, 넓게는 지중해에 속하는 이 나라는 그동안 유럽인들에게 결코 여행하기에 편안하고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청정해안에 그리스와 국경을 두고 유럽나라들과 가까우면서도 저렴한 물가, 꽤 좋은 조건을 지녔음에도 유럽인들에게 각광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친러, 친중 관계의 공산주의를 거쳐 쇄국책과 철권통치, 사회주의 냉전으로 가난과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로 심지어 마피아의 악명으로 위험한 국가로까지 취급되었다. 또한 국토는 넓지 않으며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을 뿐 아니라 개발이 늦어 여행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이와 같이 프랑스에서 멀지 않은 나라임에도 북한처럼 멀게 느껴졌던 곳. 나는 물론이고 무릇 45개국을 다닌 남편에게도 처음 밟아 보는 땅, 알바니아다.


갑자기 알바니아 여행을 계획했다. 약간 뜬금없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당시 남편이 읽고 있던 책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것은 폴란드 작가가 쓴 알바니아에 관한 내용이다. 둘째 현대화 물결이 덜 닿고 덜 다듬어진 곳, 여행객이 적은 조용한 곳을 찾던 중이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부쩍 늘어난 여행객과 지나치게 상업화된 유명 관광지에 식상해져 있었다. 셋째 지난번 그리스 사모스 섬에서 우연찮게 지냈던 바닷가 집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다. 바캉스를 위한 그 독집은 길이 끝나는 지점에 곧바로 바다와 연결되어 온종일 수영복 차림으로 지낼 수 있는 곳. 대문도 현관도 없이 바다가 마당이고 뜰이었다. 이웃이라 할 수도 없을 옆집과 족히 100미터 넘게 떨어져 있다. 낮동안은 타마린느나무 그늘아래 놓인 긴 의자에 누워 책 읽다가 파도소리 듣다가 그것조차 따분해지면 곧장 바다로 뛰어들 수 있는 곳. 바닷물에서 나오자마자 포도주 잔을 그대로 들 수 있는 곳. 이 넓고 한적한 바다가 개인 수영장이 되는, 굳이 해수욕장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되는 곳. 사실 이런 조건을 갖춘 집이 흔치 않다.

그런데 우리는 알바니아가 그런 곳일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사모스 섬의 그 집은 장기체류에 경제적 부담도 클뿐더러 하물며 일 년 전에 예약해야 한다. 그리하여 유럽국가도 유로존도 아닌, 저렴한 물가에 여행객이 적은 알바니아 이오니아 해안가에서 유족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그 네 번째 이유다. 다섯 번째가 유럽 어느 나라보다 개발의 물결이 적어 아직 옛 전통을 간직하여 그 정취를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겼다. 여섯 번째가 저렴한 항공료와 노선. 사실 이 점이 가장 직접적이고 매력적인 요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착은 그리스 코르푸 섬, 돌아올 때는 이탈리아 레체 공항에서 출국이다. 이 노선의 여정으로 페리를 타고 알바니아를 거쳐 이탈리아 브란디시, 레체까지 이동할 수 있는 육, 해, 공을 다 활용할 수 있게 최적의 조건이었다. 따라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매력은 딱 거기까지였다.


우리는 숙소로 가기 전에 우선 점심끼니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배가 무척 고팠다.

항구에서 비탈길을 오르면 차도가 있고 길가에 환전소를 비롯한 여행객을 위한 가게들이 쭉 보인다. 그 맞은편 깨끗이 단장된 현대식 카페-레스토랑이 있다.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현대적인 모습이라 실망과 함께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위장에서 들리는 뱃고동 소리에 이것저것 따질 상태가 아니었다. 또 점심때가 훌쩍 넘은 이 시각에 다른 레스토랑을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알바니아산 맥주 한 병과 남편은 오징어 튀김, 나는 생선요리를 시켰다. 맥주는 밍밍했고 음식은 맛과 신선도가 모두 별로였다. 그렇다고 값이 싼 것도 아니었다. 우리 예상과는 반대였지만, 오래도록 고심할 여유가 없어 가볍게 지나갔다.

그리고 숙소를 향했다. 예약한 숙소는 중심가를 약간 비껴 난 주택가다. 여름 오후 태양이 가장 뜨거운 시간에 그늘도 없는 길 위에서 캐리어를 끌며 긴 계단을 오르고 걷는다는 것은 이 도시의 풍경만큼이나 거칠었다. 그럼에도 조용하니까 애써서 구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까 만난 체코인지 루마니아 사람인가도 말했듯이 백사장 앞 중심가 숙소들은 밤낮 없는 소음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다는 풍설이다.

이 한적한 동네는 신흥고급주택가였다. 그럼에도 녹지도 공간도 멋도 개성도 없이 시멘트로 중구난방 쌓아 올린 현대식 아파트만 우뚝 솟아 도시계획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때로는 짓다가 중단된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급해진 개발 붐 속에 부정부패의 음지가 어른거린다. 그러나 고지대로 올라오니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타는듯한 땡볕도 그다지 얄궂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길 위에서 만난 연세 지긋한 여성분이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어디를 찾아 가느냐고 물었다.

"전화번호 있으면 줘요 내가 전화해 줄게요"

"감사합니다만, 이제 다 왔어요"  

그때까지 찾는 데 자신만만한 남편이 정중히 거절을 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 연세에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게 다시금 알바니아를 바라보게 했다.

드디어 약속시간에 맞춰 주소지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눌렸다. 아무리 눌려도 꼼짝을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이 7층까지 올라가 보기로 하고 나는 아래서 가방을 지키고 있었다. 몇 분 후 남편은 주인아주머니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엘리베이터 사용은 열쇠가 있어야만이 열고 닫을 수가 있었다.

그때부터 묘하게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호스트는 사전에 이러한 설명도 없었다. 예약 후 아파트를 찾아 들어가는 방법을 물었을 때도 설명은커녕 그냥 오면 된다고만 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호스트가 마중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호스트의 안내를 받아 예약한 아파트에 들어섰다. 넓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앞으로 확 트인 바다전망이 있어 시원했다. 무엇보다 늦은 식사 후의 포만감과 땡볕아래 걸어왔기 때문에 그늘이라는 그 자체가 좋았다.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지니 더할 나위 없다. 짐을 풀고 이대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주인이 떠나기 전에 사이트에 적힌 비품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지 대충 그러나 신속하게 훑어보았다. 이 또한 내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미리 점검, 그런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갖추어진 게 없었다. 부족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에어비엔비 숙소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텅 비었다.

4박 5일 예약을 했는데 고작 쓰다 남은 휴지 하나에 샴푸는커녕 샤워용 비누도 없었다. 그리고 아주 기본적인 커피머신은 물론이고 행주나 칼도 없다. 코팅이 다 벗겨져 희끄무레 은색이 된 프라이팬은 오래전에 폐기 처분되었어야 마땅할 뿐, 그냥 사용했다가 건강을 해칠 것만 같았다. 또 냄비는 어떤가. 방 하나 거실하나짜리 작은 아파트에 적어도 10명 대가족이 사용하고도 남을법한 대자냄비 하나가 전부다. 방에는 침대커브 외 이불 따윈 없다. 아무리 더운 지방이라 해도 밤에는 천조각이라도 덮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호스트라서 어쩜 경험부족으로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당연히 비치되었어야 하는 물품을 손짓발짓으로 공손하게 청구를 했다. 그제사 주인아주머니는 칼과 마른행주 그리고 호텔용 비누하나와 샘플용 샤워샴푸 두 개를 들고 왔다. 참으로 구차하고 어이없었지만 그녀와는 언어문제로 소통이 쉽지 않았다. 곧 자신의 아들이 올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우리는 짐도 풀지 않은 채 주인아들을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온다던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인터넷 비번도 모르니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다. 핸드폰은 아예 심을 사지 않았다.

이 숙소는 남편이 에어비엔비 사이트에서 찾았다. 당연히 내 의견도 반영되었다. 조용하고 바다전망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딱 그것뿐이다. 조용하고 바다전망!

남편은 이렇게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에 참을 수 없었는지 주인아들에게 메시지를 남기기로 했다.

"인터넷이 되는 카페에서 메시지 남기고 올 테니, 혹시 그 안에 호스트가 오면 첫 번째 카페에 있는 걸로 하자. 물론 인터넷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얼른 다녀와요"

그렇게 남편이 나간 후 20여분이 지나자 주인아들이라는 30대 젊은 남성이 문을 두드렸고, 그와 나는 남편이 있을 카페로 갔다. 그러나 첫 번째 카페에 남편은커녕 개미 한 마리 없었다. 다시 두 번째 카페를 향해서 가는데 저 만치서 남편이 허둥지둥 오고 있었다. 우리는 다 같이 아파트로 올라와 이것저것 부족한 것들을 불쾌하지 않도록 말했다.

이때부터 나는 말할 것도 없고 남편까지도 불쾌한 심정이 되어갔다.

우리는 사이트에 기록된 비치품을 요구했을 뿐인데 주인아들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관철시키려 했다. 예를 들어 커피머신 대신 낡던 작던 터키식이 있고, 휴지는 다 떨어지면 그때 요구해라. 샴푸는 샘플용이던 어쨌든 주었고, 이불용도로 덮을 천만 갖다 주겠다였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도 요구하지도 말라는 뜻이었다.

"당신들이 에어비앤비 집을 아는지는 모르겠으나 여기는 호텔이 아니라 에어비앤비의 집이다"

"우리는 벌써 10년 전부터 이용하고 있다"

호텔이 아니기 때문에 부엌살림이 비치돼야 마땅하건만, 그의 말은 전혀 논리에 맞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사이트에 적힌 것들은 눈 속임용이었던가? 의문이 들었지만 반박하지도 않았다.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도 않았고, 사실 우리는 너무 지쳐있었다.

그런데 그는 말을 돌려 묻지도 않은 얘기를 시작했다. 이 아파트는 자신의 아버지가 지었고 이 건물에만도 10여 개의 아파트가 게스트를 기다리고 있으며, 자신의 아버지는 이런 건물을 이 도시에 10채를 지었다... 등이다.

결국 이 아파트 주인은 사란다에서 유지였던 셈이다. 그러니까 당신 같은 여행객이 뭘 알겠냐? 내게 더 이상 대꾸하지 말라는 식으로 느껴졌다. 아님 내가 주인이고 갑이니까 당신들은 주는 대로 가만히, 조용히 있으라는 뜻인가? 숙박료는 이미 지불했으니까?

이와 같이 궁색한 대화가 빙글빙글 되돌이표처럼 도는 꼴이라 더 이상 그의 과시를 듣으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일방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주장자체가 한없이 치졸함을 느끼게 했다. 휴지든 샴푸든 슈퍼에서 사는 게 빠르고 차라리 났다고 생각했다. 쓰다가 남아서 두고 가면 다른 여행객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니까. 우리 역시도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서둘러 '오케, 알았다'로 막을 내렸다.

옛 속담에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의 의미를 충분히 깨닫게 했다. 그리고 부자가 더 무섭다는 것과 그렇게 해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우쳐 실감케 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전혀 부럽거나 긍지 있게 보이지도 않았다.


나에게는 사소하지만 이런 것들까지도 여행의 즐거움에 속한다. 배낭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멋과 편리함을 갖춘 곳이라면 분명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인데. 그때부터 코르푸의 아파트와 비교되며 다가왔다. 다시 코르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남편은 남자여서인지, 내 비판적인 반응에 비관적 그림자를 더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무 말이 없다.

멋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베란다나 정원에 있어야 할 플라스틱 식탁이 거실에 들어와 있는 것도 싫었고, 침대에 누우면 옷장이 나를 덮칠 것 같은 그 위치도 밉고, 촌스러운 꽃무늬 침대커브도 구차스럽다. 그리고 가방이나 욕실 용품을 놓을만한 선반도 적당한 가구도 없다. 또 욕실 샤워장은 너무 좁아서 덩치 작은 나도 움직이기 힘든데 만약 독일 남성이라면 어떻게 샤워를 할까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화장실 변기는 위치가 이상하게 놓여 똑바로 앉아서 용변을 볼 수가 없었다. 발 놓을 곳이 없어 엉거주춤 비스듬히 앉아야만 했다. 비좁은 공간에다 억지로 샤워장과 함께 끼워 설치한 탓에 어정쩡하게 되었다. 한꺼번에 순식간 밀어 닫친 현대화 물결, 그 거친 바람에 어설픈 흉내로 휩쓸리며 내달리는 도시 사란다!

이 모든 게 옹졸하고 피곤하게 와닿았다. 참 길고 지난한 하루였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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