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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Aug 05. 2023

코르푸 섬 이야기

그리스보다 이탈리아를 닮았다.



우리의 여행은 코르푸 섬에서 시작되었다.

처음계획은 코르푸섬 구도심에서만 며칠 머물다 알바니아로 건너가 거기서 넉넉히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이탈리아로 건너가려던 것이었다. 그런데 중간에 계획이 바꿔 알바니아에서 다시 코르푸 섬으로 되돌아왔다. 그 연유는 나중에 알바니아 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결국 이번 여행의 절반 이상을 코르푸 섬 구도심과 남쪽 시골 해안가 작은 마을에서 보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푸른 바다 상공에서 삽시간에 공항으로 접어들었다. 착륙을 시작한다. 그 순간 창밖을 내려다보는데 여기가 이탈리아 땅인지 그리스 땅인지 착각이 들었다. 에게해의 군도에서 보던 가시 달린 메마른 관목들과 새하얀 집들은 보이지 않고, 언덕바지에 서있는 시프레 나무들과 주홍빛 기와, 분홍과 붉고 연 노란색 파스텔톤의 집과 건물들, 짙은 녹색의 덧창문, 초록빛으로 울창한 자연이 영락없는 이탈리아 풍광이었다. 그리고 휴양지를 방불케 하는 수영장을 갖춘 고급 맨션과 호텔들, 올리브 나무와 월계수 꽃. 이탈리아 남부 어느 지방도시에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시내를 들어설 때까지도 그리스라는 인상을 갖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쭉 그리스에 있다는 것을 잊고 지냈을 정도다. 사실 그리스라고 하기에 물가도 턱없이 높았다. 그러나 신시가지 아파트와 그 베란다에 설치된 스토어를 보면서, 또는 방치된 듯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보고서야  '아, 그리스!' 하며 문득문득 떠오르게 했다.


파라솔과 스토어가 설치된 신시가지의 아파트


그리스 서쪽 이오니아 해에 있는 코르푸섬, 이오니아 제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그리스어로 케르키라, 그러나 이탈리어 표기(Corfù)에 따라 또는 프랑스어로 코르푸(Corfou) 섬으로 더 자주 불린다. 알바니아 와는 기껏 3킬로미터에 불과해 팔을 뻗으면 닿을 듯이 가깝다.


코르푸 섬은 역사적으로 고대 그리스-고대 로마-비잔틴(비잔티움) 시대를 거쳐 베니스(베네치아)-프랑스와 영국 등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다가 1864년 비로소 그리스 왕국 영토로 확정되었다.

14세기부터 18세기 말엽까지 오랫동안 베네치아 영향권에 있었던 까닭에 차라리 그리스보다 이탈리아를 더 닮아 있었던 것이다. 15세기-18세기 오스만 제국의 확장 이후, 베네치아는 이 섬을 더욱 강화시켜 무슬림의 침략에서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1550년에 옛 성채를 설립한 후 30여 년 뒤 새로운 요새가 건립되어 두 철벽 같은 성채가 옛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지금도 구도심을 중심으로 당시에 지은 항구와 성채 또는 성곽, 그리고 베네치아 풍의 멋진 건축물과 문화재들이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성채입구
수로와 성곽
구항구에 정박된 요트


우리의 숙소는 신시가지에 있다. 구도심까지는 걸어서 10분가량. 에어컨이 설치된 방 2개와 넓은 욕실과 거실, 부엌이 있고, 두 개의 발코니가 앞뒤로 있다. 그 난간에 선인장과 꽃화분을 걸어놓아 삭막하지 않을뿐더러, 탁자와 2인용 소파까지 갖춰져 두 커플이 독립적으로 지낼 수 있게끔 꾸며놓은 넓고 깨끗한 아파트였다. 무엇보다 침대와 소파가 아주 폭신했다. 남편과 나는 방 하나씩 차지하여 짐을 풀었다. 그럼에도 이중창이 아니므로 밤늦게까지 활동하는 사람들과 또 아침 일찍 출근하는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머리 바로 위에서 이, 착륙하는 비행기의 굉음 때문에 충분하게 잘 수가 없었다. 큰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어놓고 잔다는 건 언감생심. 그리스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탈리아 사람 못지않게 크다는 걸 또 새삼스레 느꼈다.


우리의 일정은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빈둥거리면서 그날 일정을 짠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여행이기도 하지만 바캉스다.

오전 나절에는 박물관을 방문하고 점심식사 후 씨에스트(시에스타, 낮잠)를 즐긴다. 햇볕이 너무 강한 한낮은 밖에서 활동하기도 힘들뿐더러 특별히 갈 곳도 없다. 대부분 상점들도 사람들도 이 시간은 문을 닫아걸고 집안으로 들어가 쨍쨍한 햇살만 거리를 지킨다.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오후 4시경 더위가 한풀 꺾이면 밖으로 나와 우리는 구도심의 주택가 골목길을 걷기도, 성벽을 따라 성채를 산책하기도, 바닷가에 서서 비경을 눈으로 그리며 먼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한다. 수영을 할까? 물이 차갑지는 않은지 슬그머니 바닷물에 발을 밀어 넣어본다. 어느 오후 나절에 성채 안에서 바흐곡의 아름다운 연주를 듣기도(음악학교였다), 다음날은 동양박물관에서 클래식 오케스트라 연주를 무료 관람하기도 했다. 우연이 얻은 클래식 음악감상의 기회, 이 문화까지도 이탈리아를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오후의 그림자가 빛을 잃을 때즈음 재스민 향기를 나풀거리며 하나 둘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그 상큼하게 갈색 윤기 띤 살갗에 섞여 우리도 베네치아풍의 아카이드 테라스에 자리를 잡는다. 저녁대신 우조를 마셨다. 우리가 우조를 마시는 동안에 골목 광장을 불문하고 순식간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왁자지껄하다. 테이블이 모두 밖으로 나와 진을 쳤고 탁자 위에서 희미하게 길을 잃은 촛불과 그 앞에 마시다 남은 칵테일 잔이 만찬을 기다린다. 코르푸 섬의 하루는 저녁을 위해 존재하고, 저녁은 하루의 시작에 불과했다.


동양박물관에서 본 작품들
아카이드 테라스에서 마신 우조
구도심의 밤거리


옛 도시는 대부분이 그러하듯 나지막한 언덕바지에 있다. 그 이유는 적이 침략해 오는 것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뿐더러, 방비적 태세로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웠던 것이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듯한 세월의 때가 묻은 건물들은 멋진 베네치아 풍으로 베니스의 어느 골목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더러 방기 된 모습이었고, 그럼에도 나무와 돌, 석회로 쌓아 올린 그 자체가 우아하고 은근하게 아름다웠다. 전혀 추하지도 밉지도 않은 자연적인 의젓한 잠재적 멋을 품고 있었다. 좁은 골목으로 오르고 내리는 계단, 그 골목을 빠져나오다 보면 어김없이 광장을 낀 성당이 있고, 그 광장 옆 또는 맞은편으로 또 다른 골목이 거미줄처럼 짜여 이어진다. 거기에 우뚝우뚝 솟아오른 건물들이 촘촘히 미로 같은 도시를 형성했다. 비록 오래되어 지금은 낡고 퇴색되었지만. 서로서로 등을 기대어 의지하듯 옹기종기한 모습이 보기 좋다.      

색이 바래고 벗겨진 덧창, 그 창살이 부서져 내려앉은 집들, 그 빛바랜 높은 담벼락에서 잡풀이 자라나고 허물어진 담장너머에서는 키 큰 선인장과 무화과나뭇가지가 손을 뻗으면 다가선다. 골목마다 가출한 꽃화분이 집을 지키고, 공중에 매달린 빨랫감이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린다. 저만치에서 눈을 부시게 하는 부깐빌레아, 월계수꽃이 화사한 웃음을 터트리며 담벼락을 타고 오른다. 또한 길목을 돌 때 새하얗게 뒤덮인 담장에서 재스민 꽃향기가 내 목덜미의 땀과 더위를 씻어내 막 샤워를 끝내고 나오는 기분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그늘만 찾으며 걷고 있었다. 이 불같이 사나운 햇볕을 너그럽게 가려주는 골목이 좁다.


구도시의 광장
성당과 방치된듯한 아파트 건물
베네치아풍의 성당
좁은 골목길
담벽을 오르는 부칸빌레아와 집앞의 화분들 그리고 골목을 이어주는 계단과 공터
이탈리아를 닮은 골목과 성당의 종루


뱃고동 소리와 함께 대형 크루즈 두척이 항구에 정박한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우루룩 풀려난 양 떼처럼 구도심으로 밀려든다. 무릇 대단지 아파트 입주민을 방불케 하는 굉장한 인원이다.

크루즈들은 항구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겨우 몇 시간, 길어야 하루 이틀밤. 그리고는 썰물처럼 깨끗이 빠져나간다. 도심은 잠시 조용해졌다가 금세 또 다른 뱃고동 소리와 함께 새로운 사람들로 거리를 메운다.

여기에 개인이나 가족단위, 또는 잠시 휴식하는 요트맨, 그리고 패키지여행자들까지 합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코르푸 섬의 여행 상품화가 된다. 그들은 모두 섬 곳곳의 해안가 호텔이나 펜션에서 또는 옛 부두에 닻을 내린다.

우리는 항구 어귀에서 돛을 내린 요트들을 내려다보며 어디에서 왔나? 어느 나라 국기를 달았나? 어떤 배가 더 멋진가? 또 그들이 유지하는 열정에 코멘트까지 달면서 항해를 상상한다.

항구란 언제 어디서나 숨 쉬는, 살아있는, 그림 같다. 수많은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미지의 세계가, 꿈꾸고 열리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구를 좋아하고, 오며 가며 자동으로 멈춘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사이에 수직, 수평의 선들이 자유롭게 기하학적 교차선을 만들고, 은은한 빛깔, 가슴이 확 틔게 열린 공간에서 역동적인 아름다움이 펼쳐지는 곳이다.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신 항구에 도착했다.

다음 여정은 알바니아. 알바니아행 페리를 타려면 우선 국경 검열 통과부터 거쳐야 한다. 유럽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출발하기 한 시간 전에 도착했고, 티켓은 이미 예약해 두었으므로 도착하자마자 줄을 섰다. 그런데 줄을 선지가 한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줄어들지가 않았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검열관도 여행객 어느 누구 하나 서두려는 기색이 없다. 이미 배가 떠나야 할 시간이다.

우리 앞뒤 줄 선 모든 이들이 같은 배를 타려는 사람들이었고, 우리 뒤로도 줄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솔직이 걱정이나 불안까지는 아니지만 지루하고 짜증이 나 좀이 쑤시듯 어쩔 줄 몰랐다. 실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여 의도적이라는 평도 있었다.

마침내 검열을 통과했고 벌써 출발 예정시간 30분이 지나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시원했다. 그 기분도 잠시, 모두가 부두에 서 있는 배를 향해 한결같이 잽싸게 내달렸다.

페리 직원들은 우리가 안전하고 신속하게 탈 수 있도록 친절히 가방을 받아서 실어주었다. 신 항구에서 알바니아 사란데 항구까지는 쾌속정으로 30분 만에 도달한다. 이 짧은 거리를 우리는 총 3시간을 소모하여 겨우 사란다 행 페리에 올랐던 것이다.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노력인가? 그야말로 불만이 더위를 먹은 것 같았다. 갑자기 코르푸 섬이 미개국처럼 여겨졌다.

드디어 우리가 탄 페리는 물 위를 붕 떠서 달리고 있었다. 작지만 고속선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쌓였던 불만까지 씻겨낸다.

알바니아 사란다(사란더)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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