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온 친구들

2. 일 년 전 이야기 : S와 F를 만나다

by 다나 김선자



새해 첫 꼭두새벽 밤하늘은 독일인들이 쏘아 올린 폭죽을 모질게 맞았는지 갑자기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던 즈음에 내 남편 A와 내가 현관문을 닫고 나왔던 그날로부터 이삼 년이 지난 어느 하루 F는 합창단에서 S를 만나 동거와 결혼에 이르러 현재까지 그 현대식 프랑크푸르트의 5층 아파트에 세 들어 산다.


A는 그의 친구인 F가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하던 날 자신의 자동차에다 F의 이삿짐을 가득 실고 국경을 넘어서 왕복 장거리 운전과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계단으로 무거운 짐을 메고 수차례씩 오르내리는 노동력에 짓눌러 집에 돌아와서 심한 몸살을 앓았었다.

그해 마지막 날은 F가 이사한 프랑크푸르트 아파트에서 보내기 위해 우리 부부와 그의 여동생 C를 초대해서 이상하리만치 이성적이며 차가운 독일인들의 침묵 속에서 터지는 폭죽 소리를 듣으며 우리의 폭주 새해를 맞이했었다. 새 달력이 넘어가던 그 시점에 우리는 조금씩 취했고 토론이 논쟁으로 논쟁은 주장과 투쟁이 되어 나는 그의 여동생 C에 대한 묵은 감정과 이틀 동안 함께 지내면서 쌓인 못마땅한 불쾌감까지 파리 날씨 같은 그녀의 변덕스럽고 위선적인 성격에 맞서 대판 싸웠고 이후 화해는 오고 갔지만 그날 이후 나는 퍽 유쾌함도 없을뿐더러 비애감만 두고 온 그 아파트를 다시는 가지 않았다.


F와 A는 젊은 시절부터 하이데게리안(Heideggerien:독일 현대 철학자 하이데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으로써 오랫동안 독신이라는 공통점까지 지녔었던 절친한 벗이다.

프랑스 결혼식은 법적으로 신랑 신부 양측에 최소한 한 명씩의 증인을 세워 시청에서 해야 하는 게 필수 불가결한 조건인데 이때 주로 가까운 친구를 증인으로 내세운다.

A가 내 남편이 되는 날 그의 유일한 증인으로 F가 참석 했었던 그들은 둘도 없이 친밀하다.


F는 그 십수 년 전 이삿날로부터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프랑스학교에서 철학을 가리키고 있으며 바캉스 때마다 혼자 또는 S와 함께 그의 가족과 친구들을 보러 파리에 온다.

F의 아내 S는 독일 북쪽 출신으로 기독교인이며 독일 여성다운 말쑥한 큰 키에 프랑크푸르트 외곽 어느 고등학교에서 불어와 영어를 가리키고 있으며 프랑스를 좋아하는 우리처럼 인종을 초월해서 맺은 부부다.

두 사람은 11년 전에 만나 커플로 동거한 지 5년 만에 부부가 된 이제야 결혼 6년 차다. 우리도 중년이 넘어 참 늦은 나이에 초혼을 했지만 이 커플들은 특히 F는 쫓아오는 노년을 몇 인치 눈앞에 두고 늦깎이 총각 결혼을 한 초년생 아직은 신선한 젊은 커플인 셈이다.


프랑스의 68 운동을 겪고 자란 세대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 속박 없는 세입자로 독신을 추구했거나 여행 또는 자기 계발에 충실하던지 아니면 자유나 이상을 좇아 남쪽 세벤느 같은 산골로 떠나기도 했었다. 물론 국가 정책도 과세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역으로 부모세대들의 시행착오를 보고 자란 오늘날 세대들은 결혼과 안전한 거주 정착을 지향하는 편이며 경향이나 주변을 유심히 돌아보면 60년대 이전 세대들에게서는 참으로 혼자 사는 사람이나 결혼보다 빡스(PACS)*로 사는 커플이 의외로 많다.

*PACS : Pacte civil de solidalité의 약자, 프랑스에서 시행 중인 두 이성 또는 동성 성인 간의 시민 결합 제도로써 법적 권리와 의무가 주어지지만 결혼보다는 제한적이다.

한 친구의 예를 들면 프랑스의 복잡한 이혼법 절차상 첫 남편과 수년간 어려움을 겪고 난 이후 현 남편과는 결혼이 아닌 빡스로 몇십 년째 자녀들을 낳아 성장시켜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있다.

또한 프랑스는 서양 국가들 가운데서도 인종차별이 적어 인종 혼합 부부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아마도 선조 골 시대부터 동등한 남녀 의식과 오늘날 자유, 평등, 박애라는 나라 표어와 같이 그 국민성이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대 전환점은 세계 일차 대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일차 대전은 수많은 프랑스 젊은 남성들의 희생을 강요했었고 전쟁으로 인한 이동이 많았으며 그로 인해 빈자리를 이주민들로 채울 수 있는 계기가 곳곳에서 생겨났다. 또한 세계 일차 이차 대전을 겪으면서 많은 도시의 파괴와 손실로 인하여 부족한 노동력 보강으로 외국 이민자를 대거 받아들인 결과 서민들의 삶 곳곳에서 인종을 떠난 커플이 생겨나게 된 결정적 큰 동기이기도 하다.

가깝게는 프랑스 북쪽 출신 부상 병사와 남쪽 여성의 만남인 A의 조부모님 경우나 시아버지와 폴란드계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시어머니와의 만남이 그 전형적인 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형태로 만난 A와 나.


비좁은 테이블에서 음식과 포도주 잔이 비틀거리고 빠르게 흐르는 대화는 시공을 떠 돌며 접었다 펼쳤다를 반복하여 정치, 경제, 문화, 일상 등의 다양한 주제가 식탁 위로 튀어 오른다.

나에 대한 예의상? 또는 호기심? 그도 아니면 정말 궁금해서인지? 틀림없이 내게 오는 정치적 질문은 한결같이 남북한의 현 상황과 통일에 관한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어김없이 식탁 위에 올랐다가 예년과 다를 바 없이 진행형인 세 개의 마침표를 찍고 지나갔다. 특히 올해의 새로운 논쟁거리는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에 관하여 더 많은 대화가 오갔고 알자스 지방 수도 스트라스부르에서 얼마 전에 일어났던 테러에 관해서도 논했다. S의 말에 의하면 이번 사건으로 독일인들의 충격도 말할 수 없이 컸었고 국경지역인 만큼 그 위험에 대한 합리적 이유 또한 충분히 내포되어 있었다.

스트라스부르는 독일과 국경지대에 위치한 프랑스 북동쪽 중심도시로써 대성당과 크리스마스 시장으로도 꽤 유명한 아름다운 도시로 1870년에서 세계 일차 대전 이전까지 독일에 속했었다. 따라서 독일 정취와 풍습이 뒤섞인 두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 독일인들이 가지는 애착 또한 크다.


점심식사 시간이 훌쩍 지났건만 뜨거운 열기가 여전히 카페 안을 꽉 메우고, 손님들의 소란함에 맞불을 놓아 우리 테이블에서도 재밌는 몇 가지 일상적 농 같은 웃음 엣 소리가 오간다.

기꺼이 농변 좋아하는 A가 "자네들이 다툴 때는 무슨 언어를 사용하는가?"

두 사람은 동시에 "각자의 나라 언어로 말한다"

"서로 상대방의 언어로 싸우는 건 어떻겠냐, S는 불어로, F가 독일어로?"

A의 되받은 질문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진다.

"아니면 두 사람이 동시에 영어로 다투는 건 어떨까?"

내가 한마디 거들어 본다.

영어를 가리키는 S와 아일랜드 태생인 모친 덕분에 영어를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구사하는 F다.

S는 독일인답게 사우나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꼭 한 번은 사우나탕에 간다고 하면서 불쑥하는 말이 "나 가톨릭으로 개종할까 생각 중이다"

"왜 하필 가톨릭인데?" A가 묻자

"가톨릭은 신비로움이 더 많은 것 같거든" S의 답에

나는 "차라리 불교는 어떻겠니?" 말하자

식탁이 또 들썩하게 한바탕 웃음판이다.

F가 "SJ는 법당에 다녔잖나, 계속 가니?"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라며 F의 질문에 덧붙여 불교와 부처에 대한 A의 긴 설명과 해설이 시작되었다.


A와 나는 수년째 매일 저녁 명상을 하고, 특정한 종교적 신앙은 없지만, 신이나 초자연도 아닌, 더 깊은 인간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자기 성찰에 수행하는 불교를 좋아한다. 또한 믿음을 떠나서 종교적 형태나 인간의 삶이 깊숙이 스며든 아름다운 전통이나 문화를 좋아하고 존중하며 훌륭한 건축미를 감상하러 대성당을 찾기도 이슬람 사원에 가기도 한다.

S는 독일인 특유의 또는 북유럽 기독교의 엄격한 도덕성과 감성적인 성향을 지닌 순수하나 시시로 순진함마저 가진 적어도 나보다는 규율과 규범에 그리고 믿음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자유로운 정신을 좋아하는 내 기질과는 나름 엇서나 있으나 무조건 기적을 기다리는 맹신이 아니라 미스터리적인 오묘한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S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그러나 신비성이라는 그녀의 신앙에도 오로 절대적 공감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나 물질적 소비 맹신 주의보다 차라리 종교와 믿음을 가진 S처럼 올바른 순수성에는 나 역시 반기를 들지 못한다. 세상에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크기의 뭔가가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내 겸손한 생각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으로 개종을 심사숙고 중인 기독교인 S와 종교보다는 철학을 좋아하는 F 부부의 프랑크푸르트 일상적인 저녁시간이 다시 화제로 올려졌다.

우선 그들은 티브이로 프랑스 뉴스를 본 후, 독일 뉴스로, 마지막으로 영국 비비시 뉴스를 보면서 저녁을 끝낸다고 한다. 현 정부의 프로파간드(Propagande:선전)로 그 충실한 역할을 서슴지 않는다고 공영방송을 거의 보지 않는 A, 그들의 저녁 삶에 잠깐 의아 스레 놀라면서도 오늘날 미디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논하는 대화가 이어진다. 텔레비전 뉴스를 선호하지 않는 A와 반대로 티브이에서 뉴스로 세상을 엿보는 커플들과의 즐거운 만남!


식사는 거의 끝나고 바케트 빵으로 깨끗이 잘 핥은 접시에 빈 포도주 잔, 각자 엑스프레소 한잔으로 식탁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카페 미스트랄을 나와 다 함께 퐁피듀 미술관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키가 장대같이 큰 두 사람과 나란히 걷기에는 내 작은 키로 인해 그들의 대화가 잘 들리지 않아 나는 앞서거나 A 옆에 바짝 붙어서 걷는다. 안개가 약간 걷힌 듯 하지만 여전히 은비늘 같은 도시는 너무나 흔디 흔한 파리의 겨울 풍경이다.

생-쟈크 탑이 서 있는 공원을 가로질러서 기념품 상점들이 늘어선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고딕식과 바로크 식이 혼합된 성당이 나오고, 한창 공사 중인 한쪽 내부에 방어벽이 둘러져 있는, 이 또한 역사 깊은 파리에서는 자주 대하는 모습이다. 인도 생활 풍경사진 위에 오브젯으로 콜라쥬한 사진작품이 침침한 성당 안에서 을씨년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F의 요청에 예의상 따라 들어가긴 했지만, 너무 키치(Kitsch:저속한 예술을 뜻함)하고 조잡스러운 느낌이 들어 대충 눈으로 훑고 나왔다.


골목을 빠져나온 후 친구 커플과는 아쉽지만 헤어졌다.

그들은 S의 오빠 댁에서 S 가족과 새해를 맞으러 저녁 스위스행 기차를 타야 한단다. 백세를 바라보는 F의 부친께서 자동차로 파리 동역까지 배웅하기로 했단다. 지금도 책 출간을 위해 글을 쓰고 계신 96세 노인께서 이 복잡한 파리 시내 운전을 하신다니 과연 내 상상력을 초월한다.


우리는 퐁피두센터에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 전시를 보기 위해 갔다.


입구 광장에는 검은 띠처럼 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적어도 바깥에서 삼십 분은 기다려야 그나마 실내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추위에...! 하고 갑자기 심한 냉기가 찾아든다.

기다림도 싫은데 더군다나 실외에서 우두커니 웅크리고 서서 기다릴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는다. 방금까지 따뜻하고 즐거웠던 시간을 이 추위에 고스란히 날려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기분 좋은 온기를 더욱 오랫동안 길게 붙잡아 두고 싶어 아쉽지만 월요일 오전에 다시 오리라 다짐하여 발길을 돌렸다. 솔직하게 전시 마지막 날이 더 붐비는 월요일 역시도 장담은 못한다.

돌아오는 길목에서 어스름이 내려앉고 연기처럼 떠 있는 안개가 서서히 온 동네를 차갑고 습한 음기로 둘러싸는 이 자연의 신비로움을 또다시 맞이하며 행복한 늦은 오후다. 그리고 유쾌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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