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온 친구들

3. 올해도 어김없이 그들과 만났었지!

by 다나 김선자


겨울 아침 태양이 뜨는 날은 서리도 따라오고 영락없이 추위까지 동반한다. 자동차 전면 창에 얇게 얼어붙은 뽀얀 서리를 긁어내고 몽마니 역에서 기차를 탔다. 파업에 반으로 줄어든 배차 시간을 제때 맞추지 않으면 약속시간을 지킬 수 없어 여유롭게 나왔는데 도리어 일요일이라서인지 평소보다 한산한 것으로 보아 교통지옥을 예상하여 필요 불가불 외출이 아니면 꼼짝 않는 사람들이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파리 북역 지하 RER 플랫폼에는 달력의 빨간 날도 간곳없이 까맣게 인파들로 붐비던 곳인데 그렇게 들끓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되레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정오가 넘은 일요일 파리 중심가도 잠에서 아직 덜 깨어났는지 잠잠해서 분위기가 썰렁하다. 우리는 그동안 오랜 단골이었던 카페 미스트랄의 오만 무례 방자한 매서운 바람을 배척하여 또한 지연된 시립극장 보수공사로 우리가 좋아하는 안무가 비나 부쉬(Pina Bausch, 작고했음)나 께스마께르(Keersmaeker)도 들지 않으니 큰 미련이나 아쉬움도 없어 과감하게 맞은편 샤틀레 광장 너머 르 지메르 카페로 자리를 옮겨 친구 S와 F 부부와 점심 약속을 했었다.


술과 대화와 논쟁을 좋아했던 F는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는 파리에서 유명했던 외과의사 조부 덕에 부유하고, 파리 명문 그랑제콜 폴리테크니크에서 최상급 학생들을 가르친 부친을 비롯하여 형제자매가 모두 교육자인 가정의 맏이로 태어난 사실을 일찍이 아는바 묻지도 않았거늘 그의 집안 내력에 자부심을 내비치면서 긴 시간 독신으로 지내는 동안 A와 가까운 친구라는 특권이라도 부여받았는지, 초대된 방문에는 포도주나 꽃을 들고 오는 프랑스인들의 예절에도 어그러져 늘 빈손으로 와서는 맛 좋은 포도주를 적잖이 비우었지 않은가!

외벌이에 두 사람 몫까지 그림 재료를 구입해야 하는 빠듯한 우리 살림을 매번 축 내는 것도 못마땅하건만 내게는 마냥 지루하기만 하는 철학이야기를 어찌나 길고 풍성하게 풀어놓던지 그에게 술술 넘어가는 포도주만큼이나 수다도 수월수월했었다. 차마 문 밖으로 떠밀어내기는 커녕 싫다는 내색도 못해 묵묵무언 스트레스로 민감했던 내 위장이 짜증을 내어 변비가 걸리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남자 수다가 여자의 그것에 못지않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지!

사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프랑스인들의 수다는 그들 삶에 필수 불가결 조약이라도 맺었는지 수다스럽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가 차라리 사지도 않은 복권에 당첨되거나 파리에서 겨울날 햇빛을 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럼에도 내 남편인 A의 눈에는 내 스트레스가 전연 보이지도 않는지 그런 그와 너무나 환상적 궁합으로 내 조용한 시간과 인내심을 어찌나 야무지게 뭉개어 주던지 참을 수 없는 나의 한정된 자제력에 여자의 초월적 질투심까지 합심하여 인간의 바닥과 한계점을 숱하게도 자극했었다. 나는 이 모든 그들의 만행을 까맣게는 아닐지라도 그동안 먼지처럼 희미하게 잊고 있었다.

지금 와서 왜냐고 돌이켜보니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독신이 아닌 어엿 부부 동반으로 만난 지가 십 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카페 르 지메르(café le Zimmer), 이 독일 성씨나 그 분위기를 보아 주인장이 알자스 태생이지 아닐까 하는 A의 추론에 더하여 미스트랄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 두 개나 이어져 그 규모가 굉장하다. 내부 장식도 그윽한 분위기에 온화하고 고급스러운 것이 바깥의 눅눅하게 쌀쌀한 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카페 안의 작은 소란스러움조차 포근한 일요일 외식을 즐기는 사람들에 활기참으로 우리 기분도 덩달아 공중에 붕 떠있는 풍선 같다.

우리는 갸르숑의 안내를 받아 창가에 자리를 잡고 친구 부부를 기다렸다.

잠시 후 S와 F가 도착하고, 독일어로 <방>이란 뜻을 동시에 지닌 르 지메르<le Zimmer>의 카페 이름마저도 독일에서 온 그들을 향한 특히나 S를 위해 준비된 것 같으니 이 대단한 공기에 그녀의 만족스러움이 한결 고무되었는지 나에게 반가움을 더하여 매우 호의적인 표현으로 가벼운 우스개 소리를 전혀 우습지 않은 독일 억양으로 안겨준다.

그들 부부는 성탄절을 독일 북쪽 지방도시 S 모친 댁에서 보내었고, 파리에서 F 가족과 새해를 맞으러 프랑스 대중교통 총파업으로 열차가 아닌 자동차를 8시간 운전해서 다행히 고속도로 체증 없이 달려왔단다.

우리는 백포도주 한 병과 각자 다른 메뉴를 주문하고 오래간만에 서로의 회포를 푼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는데 평소 이야기 풀기를 좋아하던 F의 말수가 현저히 줄었고 그토록 나에게 인지되었던 그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먹먹하고 침침하게 앉아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그는 말을 하기보다 점점 듣는 쪽으로 변했다는 걸 나는 새삼 떠올린다. 반면에 S는 그 어느 때보다 화창한 봄날이다.


S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지 일 년 된 지금, 성당에서 독신인 독일 여성 친구를 사귀어 주일마다 필요한 수다를 마음껏 떨 수도, 속 깊은 대화까지 나눌 수 있어 아주 행복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에서 연분홍 철쭉이 활짝 피었고 작년 그 겨울철 날씨만큼이나 흐리고 무겁던 도덕적 자막 대기는 고향 독일에 두고 왔는지 긍정적 분방한 사고와 기운 돋은 싱싱한 관점에서 자유로운 파리의 정취만큼 몽글몽글 피고 있다.

사람은 특히 중년 여성들의 일상에 있어서 수다란 그 어떤 영양제 못지않게 필요한, 해열제나 진통제보다 시시로는 효력까지 발휘하는, 스트레스 해소에도 필수 대치 요법이다. 좀 더 신중하게 말하면 인간은 남녀 불문하고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혼자만의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만판 외딴섬에서 홀로 살 수 없듯이 사람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겠으나 이미 잘 알듯이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S 역시 개종한 가톨릭 신앙보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내 보기에는 성당에서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만나 비로소 그녀의 건조했던 삶에 포근하고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의 이 카페처럼 활력이 넘치며 기쁨이고 즐거움이라 생각된다.

나 역시 그것으로 애태우고 목마르기도 하여 자주 애상에 젖어들기 때문에 그녀의 마음을 어느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이처럼 S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친구를 만나기까지 참 우여곡절 긴 시간이 걸렸다고도 한다.

드디어 그녀는 어둡고 답답한 비좁은 다락방에서 뛰쳐나온 작금에 따뜻한 태양 아래서 아름다운 지중해를 바라보며 참참이 걷는 중이리라!


덧붙여 S가 한 말을 잠깐 옮겨보면, 그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동료들은 있지만 사적으로나 부부끼리 만나는 가까운 친구가 없단다. 유럽 중앙은행과 독일 연방은행이 자리한 경제와 금융도시의 명성답게 높은 빌딩만큼이나 오만한 도시로써 거기 사는 사람들 또한 차갑고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란다. 그래서인지 참다운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고 동료애도 없으며 삶은 매정하고 삭막하여 인간미가 없단다.

자국민인 S마저도 친구가 없으니 외국인으로 사는 F의 삶은 더 만만찮을 것이다. 그는 내 남편 A와 달리 사회성이 없지 않아 사람과 만나서 대화하고 교제하기를 꽤 좋아하는 성격임에도 그 대상이 없다면 그에게 보다 더 큰 쓸쓸함은 없을 것이다.


흔히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 불리는 프랑스나 유럽인들은 좋게는 예의와 품위를 갖춘 사생활이 잘 보장된 삶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미치는 철저한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에 홀로서기나 외로움이라는 비싼 값을 치러야 하기도 한다. 개인주의는 독립성을 키우기도 하나, 때때로 인정사정 고사하고 냉정함에 윤기 없이 메마른 식물이나 뻣뻣하게 굳은 나무처럼 그들의 도도함도 만들어 낸다. 또한 서로 간에 속마음을 진정 드러내지 않아 알 수도 없으니 친구가 되기도 쉽지 않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역시 지켜야 할 깔끔하고 분명한 선과 그 한계점을 잘 고수하여 일명 예의나 존엄성, 품격이라는 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독특하며 검질기게 끈끈하고도 복잡다단 애틋한 정이라는 그 온화하고 값진 걸 느낄 수가 없기도 하다.

세상만사 완전무결이란 없는 것인가?

이것은 지방도시보다 파리나 프랑크푸르트 같은 대도시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따라서 큰 도시나 타향, 이국생활에 따른 편리함과 자유로움도 있겠으나 독립성에 익숙되지 않던지 준비가 없다면 자칫 고독함이라는 암울한 방에 갇힐 수 있다. 또는 허약한 내면이나 성격일 때 무너지기도 쉬워서 고립된 외톨이 생활은 오히려 객지나 외국생활에 큰 어려움이기도 하다. 하지만 겨울꽃이 아름답고 뿌리가 더 깊듯이 쌀쌀한 이곳에도 마음의 문을 열어 친구를 사귀기까지가 어렵지만 친구가 되면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이 짙다.


F는 또한 A와는 다르게 그러나 나처럼 나이가 드는걸 두렵기도 하단다.

그는 얼마 전에 정년퇴직을 하고 조용히 집에서 그동안 원했던 철학에 관해 심도 있게 글도 쓰고, S가 근무하는 주중에는 요리를 하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에게 갑자기 나타난 관절염 증상으로 몸을 자유자재 움직일 수도 없게 통증을 느낀단다.

그래서였을까? F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간간이 파편적으로 오가는 대답과 질문 외 침묵이 잦았던 이유가 그 통증 때문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아닌지 전혀 연관성이 없을지도 모르나 정년퇴직이란 사회 뒤편으로 물러난 우울함이나 외로움 따위로 어쩌면 우리가 인지 못한 그 나름의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의 급작스런 발병에 다소 의아스럽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옛날 내게 스트레스를 가중시켰고 자기중심적이었던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라, 외국 땅에 사는 한 외로운 인간으로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도 같아 연민과 동질감으로 그를 맞모금 하여 바라본다.

내가 겪는 한국사회와의 간극처럼, 어쩌면 F도 끊어진 연처럼 공중에서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파리의 스승과 친구, 동료들이 공동 발간한 하이데거 사전에서도 능력을 불문하고 그의 이름이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피차간에 시공이라는 틈이 존재해서이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과 동시에 그즈음에 그의 침묵이 자주 찾아들었다고도 추측한다.

혹시 그에게서 외국 살이가 현실적인 장애이자 외로움의 동기나 원인 부여가 되지 않은가도 생각 하지만 그는 더불어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인 S를 만났고 편안하고 안정된 직장과 하이데거 연구에 필요한 독일어를 습득하는 동기도 부여받았다.

'세상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고어를 떠올리면서...


A와 F는 거의 매일같이 소설 같은 장문의 글을 이메일로 주고받으며 의견이나 토론과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뜻이라도 표정과 느낌을 담아서 마주 보며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전하는 말이 아닌 글로 표현하는 것은 간접적이라 온전한 전달도 심리적 만족도도 충분치 않다.

따라서 인간은 심리적 정신적 물리적으로 엄연히 서로 다르게 작용하는 말과 글 모두 동등한 필요성을 가진다.

우리가 가끔 수다를 필요로 하는 것도 같은 이치 이리라!

소리 내는 말과 모국어의 중요성을, 나는 아주 오래되어 가물한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파리 한국은행에서 우연히 내게 말을 걸며 다가온 중년의 한인 여성이 영국에서 프랑스 남성을 만나 결혼하고 무자식에 말수가 적은 남편과 영어로 소통하여 불어를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파리로 이사 와, 학생도 아니었으니 당연히 친구도 없을뿐더러 만나는 사람이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나와 한참 수다를 나누고서 " 한국말을 실컷 하고 나니 이제야 살 것 같아 참 좋다" "그동안 늦게 들어오는 남편 외 하루 종일 말할 상대도 없고 또 한국말이 너무 그리워서 어떤 때는 한참을 벽을 바라보며 혼자서 말했다"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두세 번 더 만난 후 그녀는 어느 한국식당에 일자리를 찾고부터는 나와도 자연히 연락이 끊어졌었다.

갑자기 나는 F의 상태를 보면서 그때 그 여성이 했던 그 말을 듣던 순간의 슬픔이 어렴풋이 되살아난다.

나 역시도 지나치며 짤막한 말이라도 던질 수 있었던 기숙사를 떠나 남편 A 곁으로 온 초기에는 수다가 그리워 밤낮을 가리지 않은 채 한 시간씩 전화상 한국에 있는 동생이고 친구 같은 조카들을 붙들고 혼자 지껄이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때 감감히 들어주던 그녀들에게 고맙고 이때의 내 모습이 애처롭기도 우습게도 느껴진다.

어느새 시간은 훌훌 달아난다.


친구 부부는 인터넷으로 오후 4시 입장하는 루브르 박물관 티켓이 예약되어 우리는 카페를 나와 모두 함께 걸었다. 그동안 잦은 비로 불어난 센 강물에 안전을 대비해 강 가장자리 산책길을 봉쇄하고 터널길을 열어 두었다. 불에 탄 그스름도 아닌 흙먼지보다 그 둘 가운데 어디쯤의 음침한 색으로 덮어쓴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마주치는 은빛 하늘과 온몸에 닿는 찬바람은 내 몸의 세포들을 하나씩 깨어나게 한다.

튈르리 공원에서 피라미드 광장으로 웅성대는 관광객들을 보아 짐작컨대 루브르 안에는 더 많은 인파로 북적일게 뻔할진대 솔직히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털끝도 없었으나 자주 보지 못한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다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이 동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왔지만 일전에 친구 M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성탄절이 끝나는 바로 다음날부터는 미술관 방문을 포기하는 쪽이 좋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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