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로

조금은 두려웠다.

by 다나 김선자


S언니 표현대로 나비효과라도 바랐던 것일까 겨울날 긴긴 빗줄기를 자르고 싶었던 것인가 쏟아지는 봄비가 얄미워서 피하고 싶었나 아무튼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이맘때면 꼭 나타나는 꽃바람 역마병이 올해도 어김없이 도졌다.

분명 이 지난한 비와 며칠간은 연을 끊을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태양이 빛나는 아침을 맞이하고 파란 하늘 아래 마른땅을 밟으며 오래오래 걸을 것이다. 젖은 대기 무거운 습기를 짊어지고 걷지 않아도 될 터이고 흙탕물을 튕길 염려도 신발 밑창 두껍게 들어붙은 진흙을 털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곳은 내륙이라 비보다는 달달한 햇살이 더 맹렬할 테니까. 꽃피는 봄이잖아.

미루적미루적 걸어오는 봄아 내가 너를 맞으러 문을 활짝 열고 달려가마.


예측 불가한 혼돈의 시간, 불투명한 앞날, 5월 전시, 서울행, 이 답답하고 탁탁한 공기 속에서 쓰린 배를 움켜쥐고 막막한 겨울밤 미로를 걷는 듯한 암울한 분위기, 눅눅하고 진득한 것들이 스멀스멀 기어든다. 녹록잖은 내 기질 탓 있으리라만.

타성에 젖은 이 공간을 하루하루 지킨 들, 무디어진 칼날로는 아무것도 자를 수가 없다. 마비된 감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란 결국은 지루해서 찢어 버릴, 작품이라 할 수도 없는 것들과 짜증 섞인 불만에 상처 내기 이외는 별로 없다. 반복된 일상의 리듬을 끊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그리하여 떠나고 싶었다. 새로운 영감, 자극,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합리적 이유를 만들었다. 미술관으로 떠나자고.


벨기에 사는 S의 추천으로 반 에이크 특별전이 열리는 겐트를 들러 내침 걸음에 브뤼허와 앤트워프를 2박 3일 또는 3박 4일 다녀오려고도 했었다. 북쪽 지방도시 스트라스부르를 갈까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 6박 7일 비엔나행으로 정했다.

비행기로 2시간 남짓할 뿐인데 A도 나도 백지나 다름없는 그곳, 아직 우리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 훌륭한 미술관이 있어 우리의 여행 리스트에 자주 올려놓고도 매번 뒤로 밀려났던 곳이다. 드디어 우리의 모든 감각을 무한정 열고 확장시켜 보고, 느껴 우리만의 흰 도화지에 그 흔적을 남길 것이다.


항공 티켓은 싸게 구입했고 에어비엔비에서 아파트 예약도 마쳤다. 어제는 기드 듀 후따흐드(guide du routard;가이드 책) 비엔나 편을 샀다. 어디에서 무엇을 볼까 부지런히 책갈피를 넘기며 책장에서 두 눈동자를 굴리는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다들 바깥활동을 최소화한다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 기회를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어기여차 좋아라 개념 없이 음흉 스레 노린 것은 아니다. 거기도 마찬가지 여행 밀집지역 코로나 바이러스 청정도시는 결코 아니니까. 그러나 프랑스보다도 적은 확진자수에 일말의 희망을 두기도 했다.

붐비는 인파 속에서는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으니까. 이 기회 그림 속에 깊숙이 빠져서 보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하고 확고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러의 고장 음악의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나라!

그리고 브리오쉬와 크루아상의 원산지 비엔노아즈리의 도시!

그리하여 오스트리아에서 온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가 그 유명한 말을 했던 것일까? '빵이 없으면 브리오쉬(brioche)를 먹으세요' 진정 그녀는 국민들이 빵보다 더 맛있는 비엔노아즈리(viennoiseries)를 배불리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 비엔노아즈리를 먹으러 가자.


출국일이 하루 이틀 앞으로 다가오고 작은 여행가방을 끄내 놓고 차곡차곡 먼지처럼 쌓여가는 두려움. 한국 뉴스를 너무 많이 보고 들은 탓일까 이 늘어나는 신중함. 마스크를 구해볼까 역시 일반인 우리에게는 팔지 않는단다. 의료진과 간병인들만 살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심각한 상태는 아니다. 그래 비엔나가 파리보다 더 안전하다. 이렇게 내 이성을 억지 춘향이로 합리화시킨다. 그래도 폐쇄된 공간이 위험하다는데,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는 어쩔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쳐드는 걱정을 싹둑 잘라본다.

그래도 떠난다. 더 절실한 것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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