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3월 12일 목요일

by 다나 김선자


오전 7시 기상, 내 매혹적인 아침잠에 새벽이나 다름없는 시간, 그래도 거뜬히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야 했다. 떠날 준비는 엊저녁에 거의 마쳤고, 아침식사 후 세면도구와 잠옷, 실내화만 챙기면 된다.

8시 예정시간 2분을 초과해서 집을 나선 우리는 시댁에 도착, 시부모님께 인사한 후, 자동차를 맡겨두고, D의 배웅을 받아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갔다.

공항은 평소보다 덜 붐빈다는 점과 멀찍이서 걸어가는 마스크 쓴 한가족 외 달라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간혹 소독제 아님 로션을 손에 바르는 사람은 있어도 보건 관리청 단체 방역이나 검진도 없었다.

대합실에는 띄엄띄엄 자리 잡은 여행객들, 코로나 바이러스로 거리두기인지, 좌석이 많아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국 뉴스에서 코로나 19 위력을 듣은 나는 은연중 사람과의 적당한 간격을 유지했고, 의도적으로 마주치는 사람과 고개 돌려 비껴 났다. 그렇지만 공항은 그 어느 때 보다 평화로운 모습이었고 붐비지 않아 스트레스도 없다.


9시 20분 탑승, 에어 오스트리안, 에어버스 319 소형 비행기다.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적어도 좌석 삼분의 일은 비었다. 정말 오랜만에 한적한 공간에서 머리, 얼굴과 노란 비닐장갑을 낀, 손만 제외하면 온통 빨갛게 물들인 승무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며, 느긋한 마음으로 비행할 수 있었다. 에어 오스트리안은 독일 루프탄자 자회사로 저가 항공사와는 달리 비록 2시간 비행이나마 음료와 간식까지 나와서 우리의 여행길 즐거움을 더했다.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낯섦과 새로움에 대한 짜릿함, 발견의 기쁨, 미지로의 기대는 벌써부터 무디어진 우리의 감각을 활기차게 일깨운다.

남편 A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의 작품 Néopa(네오파)처럼, 그가 비행기에서 바라본 얼어붙은 시베리아 굽이친 강줄기에 영감을 받아 작업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항상 그에게 창쪽 좌석을 양보하여 중간 자리의 불편함도 기꺼이 감수한다.

오늘도 A는 나에게 저기 봐라 눈이 쌓였다, 홍수로 침수된 땅 여기도 봐라 저것도 봐라, 라인 강이 보인다 마인 강인가 열심히 알려오지만, 나는 고소의 흔들림에 울렁울렁 멀미 나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동쪽을 향해 예정보다 빠른 시간에 우리는 점점 오스트리아 땅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비행기는 어느새 빈 공항에 들어 착륙을 시도한다.

바퀴가 활주로 바닥에 거의 닿을 둥 말 둥 싶은데, 갑자기 비행기 몸체가 비틀비틀 심하게 출렁대다가 삽시간 요동치더니 '우웅'하고 다시 떠 오른다. 내 메스꺼운 위장이 야단법석을 떨고, 비행기도 자꾸자꾸 흔들거린다. 착륙에 실패한 것이다. 나는 내장이 뒤집혀 끓어오르는듯한 고통 속에서 식은땀이 나도록 안감힘을 쓰며 두 눈을 꼭 감은채 참고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우리는 반경 원을 크게 그리며 높이 올라가 재 비행한 끝에 반대 방향에서 12시 5분 제시간에 무사히 착륙했다.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바람에 뒤꽁무니 떠밀려 예정보다 빨리 왔다 싶었는데, 그 바람 때문에 우리의 착륙이 방해가 되었다. 나는 극심한 멀미로 진땀을 흘렸고, A를 비롯한 주변 승객들은 초조와 긴장했던 순간을 내려놓고 속풀이 하느라 여기저기서 웅성댄다. 잠시간 소란.

많은 비행기를 탔지만 이런 순간 처음이라는 A에게 나는 두 가지 기억을 떠올려 상기시킨다.


십수 년 전, 모스크바에서 인천행으로 환승하는 저렴한 러시아 항공 아에로플로트를 타고 모스크바 공항에 착륙하는 순간이었다.

러시아 언어와 문학을 좋아하고 슬라브족 피가 반절 섞인 A는 이 낡은 에어버스를 타고 관광객 발길이 적은 모스크바 공항에 내려 사모바르(러시아 전통 물 끓이는 주전자)에서 흘러나온 따뜻한 차 한잔이나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길 좋아했었다. 지금은 먼 이야기가 되었지만, 솔직히 마시는 것보다, 현대화 물결이 천편일률 휩쓸지 않은 서민적인 그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는 몇 번의 아에로플로트 항공을 이용했었다.

그 크고 낡은 비행기가 어찌나 후들후들 덜거덕덜거덕 소란스럽게 흔들거리던지 마치 천정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움에 불안, 긴장으로 바싹 웅크려서 공포의 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이빨을 깨물고 두 눈 꾹 감은채 행운을 빌며 참고 기다려야 했었다.

공포의 시간을 거쳐, 무사 착륙을 알리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끝나자마자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승객들의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연달아 환호와 웃음도 터졌다. 모두들 나와 같은 심정이었거나 A처럼 익숙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때의 웃지 못할 아찔했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자, 내 갸웃거리는 고개와 함께 비로소 이제야 입가 미소가 살짝 절로 살짝 여민다.


두 번째는 내 생애 가장 작은 비행기를 탔던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섬 왈리스에서 푸투나로 가는 15인승 최소형 비행기다. 거주 4년 동안 일 년에 몇 차례씩 왕복 이, 착륙을 반복하며 타고 다녔던 이 작은 비행기는 약간의 바람에도 울렁출렁 하늘에서 좌우 파도타기를 한다. 비행 전 언제나 소화제를 미리 복용함에도 간곳없이 울렁대는 내 위장으로 안간힘을 다해 견뎌야 했고, 그럼에도 낭떠러지 매달린 아모크에 올라탄 기분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사방천지가 파란색 그 한가운데 둥둥 떠있는 나와 하얀 뭉게구름, 그 가까이서 내 손에 잡힐듯한 솜덩이 같은 구름 사이 요리조리 비껴 나며 비행하는 이 기분은 신묘하고 황홀하기조차 했다. 또한 바다와 이어진 작은 활주로에서 이, 착륙을 할 때마다 흡사 바다로 뛰어드는 날쌘 소년 같은 느낌은 신선하여 흥미롭기까지 했다.

그 맑고도 청명한 파랗고 하얀 눈부신 태평양 바다와 하늘, 이 자연의 선물이 나를 감싸지 않았더라면 나는 버티지 못하고 금방 쓰러졌을 것이다. 이 인상적인 감흥들은 여행이 주는 놓칠 수 없는 내 인생의 값진 경험들이다.


긴 일자형 공항은 조용하여 더 쾌적하며, 오스트리아인의 삶을 엿보는듯한 청결과 질서가 있다. 우리는 열차와 지하철 트램을 갈아타고 예약한 숙소에 도착한다. 가는 곳마다 한산하고 긴 기다림 없이 적당한 간격으로 환승되는 대중교통의 편리함 덕분에 힘들거나 거북하지 않았다.

숙소는 사진에서 본 바와 어긋남 없고, 스튜디오라는 단점은 있지만 넓은 오픈형 공간 한쪽 전면 큰 이중창과 높은 아치형 천정 덕분에 시원한 볼륨감이 있어 멋과 운치를 준다. 옛 건물을 현대식으로 개조, 내부 장식한 지 얼마 안 되어 깨끗하고, 디자이너라는 호스트 마리아 직업에 걸맞게 소품 하나하나에도 섬세함과 신중함이 묻어나 부족함 없다. 바깥 테라스에는 작은 테이블까지 놓여있다. 중심가도 멀지 않으면서 그 무엇보다 박물관, 미술관이 가까워 걸어 다닐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다시 말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초콜릿과 화병에 꽂힌 색색 튤립이 우리를 환영했다.


가방을 두고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집 근처로 나갔다. 가이드 책에서 찾은 레스토랑, 비엔나에서 몇 되지 않는 전통식당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객들이 제법 많다. 익힌 감자와 돼지고기에 빵가루 옷을 입혀 튀긴 유럽 중앙 내륙지방 특유의 음식이다. 그 양이 어찌나 많은지 배불리 먹고도 절반은 남아 싸들고 왔다. 내 입맛에는 짜고 기름기 많아 결코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신선한 색다른 경험으로 충분했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 후 소화도 시킬 겸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맑고 건조하나 쌀쌀한 대륙성 공기, 파리지앵보다 잠이 깊은지 비엔나 꽃들은 아직도 하품할 기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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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oritenkirche (이태리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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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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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ansdom (슈테판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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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ben (1679년 페스트 발병 말기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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