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금요일
낯선 곳에서 첫날밤 의외로 자리 가름은 없었다. 잘 잤다. 나는 남편과 동시에 눈을 뜨고 같이 일어나서 함께 준비한 아침을 먹는다. 하나의 공간에서 같은 리듬을 유지한다. 집에서와는 사뭇 다른 풍경.
평소 아침잠에 취하던 나는 그래서 거의 조식은 함께 못한다. 그러나 서로가 이해하며 각자 리듬을 존중한다.
그리하여 방한칸 서민의 삶이 더 애틋하고 진득한 것인가? 부딪치는 햇수만큼 애증이 쌓이고 포개져서...?
낯선 공간, 원룸이라 더 강해지는 이 연대의식, 일거수일투족이 따로 없다. 숨은 애증도 퐁퐁 솟아나겠지?
"Titite 너 오늘 무엇부터 하고 싶어?"
"오전은 빈둥거리다 천천히 움직이고 싶은데, 미술관을 가려면 우선 에너지 충전부터 좀 해야 될 거 같아서"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러자, 시간은 충분해"
"오후에는 미술관 갈 수 있어"
"알았어, 네가 괜찮다면 좋아 오후에 가자, 아마 오늘은 미술관이 늦게 문 닫는 날일걸 내가 사이트 들어가서 찾아볼게, 몇 시에 문 닫는지"
13일 금요일! 이 불길함, 미신적 괴담, 우연인지 아닌지 역시 피할 수는 없었다.
"이런! 미술관, 박물관 모두 폐관이라는데... 문 닫았다는군"
"왜?"
"코로나 바이러스로..."
"뭐?"
"이거 어제부터 닫은 모양인데... 내가 미처 몰랐네"
"어떡해?"
"글쎄다 아니나 다를까 오스트리아인들도 독일인답게 아주 엄격하네, 프랑스와는 역시나 달라"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의 목적과 기대에는 금이가고 바뀌어 여정에 큰 차이가 생겨났다.
만약, 출발 하루 전날 미술관 박물관 폐관 공고를 알았던들 우리 여행에 뭐가 달라졌을까? 이미 떠날 모든 채비가 끝나 있었는데...? 당연 주저, 망설임, 혼란 따윈 있었겠지? 그렇다고 우리의 출발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는 암튼 솔직히 모르겠다.
프랑스에서는 일부 지역 외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정부 및 의료진들이야 엄숙한 단계임을 인지 했을지 모르겠으나 우리에게는 먼 이야기로만 느껴졌다. 또한 비엔나 확진자 수는 파리보다도 적은 한자리 숫자였다. 오히려 바이러스 위험지역을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간다고도 생각했었다.
삽시간 우리의 음음해진 머릿속, 이 중대한 무게감 그러나 벌써 엎지르진 물이다.
"미술관 못 가면 뭐하지?" 내가 묻자, 남편은 재빠른 사유와 동시에 그동안 공부한 걸 친절하게 끄내 놓는다.
비엔나 지도를 펼쳐 든 남편 "내 제안은 여기 서남쪽을 돌아보는 거야 가까운 거리에 볼 만한 아르누보식 건축물이 몇 개 있거든. 오늘 그거 보는 건 어때?"
"좋아"
"점심 먹고 나갈까?"
"난 지금 준비해서 바로 나가도 돼, 앞으로 시간도 많은데 어슬렁어슬렁 걷지 뭐"
"네가 좋다면, 그럼 나갈 준비 하자"
늑장을 부리는 꽃들, 그러나 햇살만큼은 봄날이다.
우리는 그렇게 19세기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 투어에 나섰다. 중심가에서 외곽으로 서남쪽, 비엔자일러 (Wienzeile) 작은 강가의 건축물, 우리는 정보가 없어 건축가 이름은 모르지만 현재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영업 중이었다.
이어서 중심가 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19세기 건축가 오토 바그너(Otto Wagner)의 건축물이 보인다.
외 벽면에 마치 빨간 찔레꽃 덩굴이 벽을 타고 올라간 듯, 이탈리아 마욜리카 산 타일로 장식한 마욜리카 하우스(Majolicahaus), 그 곁으로 나란히 붙어있는 흰 건물은 수컷 깃털에 곧추선 긴 꽁지가 공작새 같은 금색 장식의 메달리온 하우스(Medallionhaus)다. 이 두 건물은 일반 주거지로써 이처럼 외관 장식이 화려하게 돋보였다.
우리는 잘 알려진 나슈마르크트(Naschmarkt) 재래시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각종 중부 유럽의 먹거리가 내 식욕을 자극했다.
Majolicahaus (왼쪽;마욜리카 하우스)와 Medallionhaus (오른쪽;메달리온 하우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프리드리취스타르스 (Friedrichstrasse) 12번가, 건축가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Joseph Maria Olbrich)의 주목할 걸작품인 19세기 아르누보 양식 제체시온(Secession)이다. 이것이야말로 비엔나의 꽃.
균형 잡힌 하얀 사각형 건물 지붕에 찬란한 금빛 월계수 잎의 격자무늬 화려한 구형, 이 우아하고 단아한 건축미.
각양 각식 종종 색색 눈짓하는 매력적인 것들로 차마 무심코 지나치지 못할 발길들이 머물고 가는 곳.
이 건물 지하에는 34미터 길이의 클림트 프레스크 벽화가 베토벤의 아홉 번째 심포니(9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 환희의 송가를 표현한 작품이 있다는데 아쉽게도 문이 닫혀 들어가지는 못했다.
Secession (제체시온)
도로를 건너면 공원 그 옆으로 칼스 플라츠 스테이션(Karlsplatz Stadtbahn Pavillon)이 있다. 이 마주한 두 정거장 역시 19세기 아르누보 양식 오토 바그너(Otto Wagner) 작품이다. 철재와 꽃 장식의 아름다운 조화에 심플하며 섬세하고 우아한 곡선이 인상적이다.
문은 닫혔고 찾는 이 없으며 따스한 이른 봄햇살 아래 한쌍의 젊은 연인이 나누는 숫기 많은 사랑, 이 아름다운 건물과 새삼 잘 어울리는 하모니, 두 쌍의 꽃, 아니 우리와의 세 쌍.
여기서 공원을 가로질러 보이는 파란 하늘 밑 옥색 돔 지붕이 카를 성당((Karlskirche)이다. 이 바로크식 성당은 18세기 초 유럽을 휩쓴 페스트(흑사병)가 빈에서 물러나자 이를 기념으로 지었다고 한다.
칼스 플라츠 스테이션 (Karlsplatz Stadtbahn Pavillon)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아르누보 양식의 발생 동기가 19세기 링 (Ring;옛 도심 테두리) 주변으로 궁전(지금은 박물관), 현 시청 건물을 비롯하여 관습적 틀에 박힌 아카데미풍의 성대, 엄숙, 과장, 거드름 피우는 건축물에 반기를 들어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했단다. 따라서 간소 단아 실용적이며 뛰어난 조화, 비례, 균형을 잘 갖춘 심플하나 화려함을 주는 분위기로 주목할 만한 예술적 장식 건축물들이다.
꽃도 없는 꽃샘바람, 쌀쌀한 날씨, 봄이 엄살을 부린다. 그래도 봄날.
역시 신호등을 무시하고 도로를 가로지르는 우리, 독일인도 아니고, 비엔나 사람은 더구나 아닌 거침없는 자유방임형 파리지앵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과감히 일정을 수정키로 한다. 이 여행의 주 목적인 그림을 볼 수 없다면 굳이 오래 머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오면 된다. 이왕 디딘 첫발, 다음 발걸음은 더 가벼울 것이다. 그리하여 3박으로 변경 에어비엔비로 메일을 보냈다. 답은 즉시 왔고, 위약금 30유로 제외한 나머지는 환불 가능해서 의아케 했다.
문제는 항공 티켓이다. 세일 상품에는 좌석 변경이 안 되는 게 규칙이다. 값싼 표니까. 혹시나 모르는 일이라 사무실에 가서 알아보자 했다. 금요일 저녁은 서둘려야 한다. 지하철을 타고 찾아간 뜻밖의 장소, 주변에서 한참을 서성댄다. 눈앞에 두고도 모르면, 이토록 힘들 때도 있는 법. 인생살이 만사 내 마음대로 되던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여직원의 불평이나 거절 없이 원하는 좌석표를 자연스레 바꿨다. 아연실색하는 우리, 예상과는 달리 너무 쉬웠다. 애걸복걸 구차한 변명도 필요 없는 삶, 이렇게도 쉬울 수 있구나고 하하호호 웃으며 돌아왔다.
단축된 여행, 오히려 이 가뿐한 기분, 이상한 저녁이었다.
우리에게 미술관 그림 없이 비엔나 6박 7일은 그야말로 한갓 되다.
Secession (제체시온 정문)
Secession (제체시온)
칼스 플라츠 스테이션 (Karlsplatz Stadtbahn Pavillon)
* 우리의 가벼운 산책 카메라는 없었다 그리하여 사진 출처는 인터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