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여행을 마치며

3월 15일 일요일

by 다나 김선자


비엔나에서 우리의 마지막 날 일요일 오전은 눈 덮인 알프스가 동무했는지 꽁꽁 부동자세 인적 없는 냉랭한 거리 봄볕을 시샘하는 바람이 내 머리카락만 날린다.

어제저녁부터 일부 영업은 정지되었고 오늘부터 상점 식당 카페들도 완전히 폐쇄한단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렇게 아주 조용히 우리 곁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었다. 선지자 같은 우리의 신속한 여행 단축 결정은 현명했었다. 계속 비엔나에 있은들 엄청나게 불편한 삶이 될 것이 분명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에어비엔비의 환불도 항공 티켓 변경도 무리 없이 손쉽게 이루어졌던 것이 우리에게 특별히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당연한 처사였던 것이다.


오후 5시 30분 파리행 비행기 출발까지는 오전 시내 투어가 충분히 가능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모차르트 생가와 유대인 동네 그리고 비엔나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당 등이다.

굳게 닫힌 모차르트 생가 앞에서 멀거니 무심중 창문만 세어보는 처지라 솔직이 내 작업실에서 빠져 듣던 또는 필하모니에서 심취하며 들었던 모차르트 오페라나 협주곡 베토벤 교향곡 같은 환열찬 감흥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숙소로 가는 길목 며칠째 공연이 열리지 않는 오페라 하우스도 냉소적인 거대한 건물로 우두커니 그동안 나는 음악의 고장 비엔나임을 깜박 잊고 있었다. 건물이란 그 목적을 위해 사람이 활용할 때 가장 빛난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본다.

찾아도 들 수 없어 멀찍이서 사진만 찰깍! 일요일 썰렁한 거리는 더욱이 프랑스로 돌아갈 이유를 덧붙인다. 우리는 빈들빈들 한량처럼 이 골목 저 거리를 뒤지고 다닌다. 뱅뱅 돌면서 걷고 또 걸었다.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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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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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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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prechtskirche (현존 가장 오래된 12-13세기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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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하우스


내 이쯤에서 아주 짧은 시간에 본 비엔나를 감히 적어 볼까 한다.

센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파리처럼 대부분 유럽 옛 도시들은 교통수단 강이나 수로 또는 바다를 끼고 형성되었지만 비엔나는 강을 두고도 중심에서 비껴 나 있다는 점이다. 작은 비엔자일러(Wienweil) 강은 외곽에 도나우(다뉴브) 길고 긴 강은 멀찍이서 구심과 신도시를 가르며 흐른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조용하고 쾌적한 도시 그러나 삼월이라 시어머니 본 천지사방 주렁주렁 늘어진 샹들리에 같은 등꽃도 없고 인심 좋게 안겨주는 춘난 춘만도 내 큰 기대를 저버렸지만 단정 깨끗하여 붐비지 않는 인파 차량으로 사람 살기는 그지없이 좋을 것 같았다. 만나는 사람들은 친절하고 정직한 문화인들 그들의 부드러운 말투 억양은 독일인들의 발음보다 세련되게 들렸고 경직되지 않아 살가운 유연한 모양새가 완고 엄격한 독일인들보다 더 자유로워 보였다. 또한 파리지앵들 같은 민감한 세련미가 없으니 차라리 인간적인 편안함으로 와 닿았다. 또한 시내 곳곳 고 예술품 가게가 많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전통문화에 관심도가 높다는 것이 느껴져 안도감도 들었다. 짧으나마 대륙성 공기로 새로운 기분 전환에 결코 아쉽지만 않은 탁탁한 긴 겨울 자락 잘 털어내는 여행이었다.


여행, 사람마다 그 차이는 있겠으나 그것은 인생에 많은 것을 남기고 제시한다. 나에게 여행은 예술가로서 작업에 미치는 영향은 말할 수 없고 또한 내 삶의 목적을 바꾸어 놓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약 한 달간의 러시아 배낭여행 이후부터다.


2006년 나는 A와 한국을 갔다가 프랑스로 돌아오는 행로를 야심 차게 북경에서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캐리어 가방을 끌지 않은 그야말로 배낭을 짊어진 여행이었다.

열차를 타고 몽골의 초원과 고비사막 가장자리를 지나 시베리아 도시 이르쿠츠크 도착 바이칼 호수에 발을 담그고 동서양의 경계선 우랄산맥을 넘었다. 유럽 땅 볼가 강을 건너 블라디미르에 내려 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은 하늘 아래서 둥둥 오색 돔 지붕들이 떠있는 정교도의 성지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유적지이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안드레이 루블료프> 영화가 만들어진 아름다운 도시 수즈달.

나는 숙소인 옛 수도원에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내 덜렁덜렁 팔딱거리는 심장을 A 가슴에 푹 파묻고서 소리 없는 눈물을 주르륵 하염직하게 흘러내렸다. 덜컹거리는 오래된 소비에트 시절의 낡은 철도 탓에 울렁증으로 누워만 지내야 했던 며칠간의 고됨과 내 작은 키에 절반 크기 배낭을 A 도움도 거절하는 쇠고집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을 성취한 기쁨에 찬 환희의 눈물이었다.

나는 늦깎이로 파리에 유학 와 보고 느낀 많은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바캉스철 배낭을 메고 또는 내려놓고 자유롭게 역사에 드러누워 행선지 열차를 기다리던 이곳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나는 그들의 자유로움이 몹시도 부러웠었다. 내 삶에는 배낭을 메는 일도 그들처럼 자유로운 신선한 세계가 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한국 유학생끼리 종종 만나면 했었던 말이 학업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우리도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여행 삼아 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꿈 꾸기도 했다.

그랬었는데 나는 여기서 A를 만났고 결혼을 하고 그중 일부분을 이루었다. 배낭을 짊어지고 동방에서 서양으로 긴 열차를 타고 몇 개의 국경을 넘어서 온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는 닿지 않을 것 같던 세계를 경험했다.

그리고 '톨스토이'가 숨 쉬던 모스크바와 에르미타쥬 박물관에서 '마티스' 작품 <노래하는 사람>과 <춤추는 사람>을 보았고 '푸슈킨' 고장이며 네바강이 흐르는 상트페데르부르그까지 또한 들꽃을 꺾어 A가 좋아하는 '안나 아흐마토바' 시인의 무덤을 찾아가던 전나무 숲길. 이 약 한 달간의 배낭여행 모험 끝에 내 인생의 비전(vision)은 달라졌다.

이 광활한 세계를 보고선 아무리 달려도 나 혼자 세상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넓은 시각 열린 사고 물질보다 더 아름다운 자유로운 정신 그런 삶을 살고자 했었다.

그런 이후 내 작업에서도 인생도 서서히 작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었다. 분명 앞서 와는 다른 거동의 전개로. 지금도 그때 마음에는 변함없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공항 가는 기차역에서 프라하행 열차 편을 보고는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오며 열차를 타고 국경 없는 유럽의 국경을 넘어서 돌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내 멀미가 너그럽게 받아준다면.

공항은 올 때와 달리 돌아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비행기도 만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 가까이 와 있는 것인가? 마스크를 쓴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띈다.

슈트라우스 왈츠(les valses de Strauss)가 흘러나오는 에어 오스트리안 나는 승무원이 꾹꾹 채워 준 적포도주 잔을 들고서 A와 축배를 한다.

비엔나를 위하여! 여행의 끝마침을 그리고 우리들의 건강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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