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서 심화되는 코로나 19 확산세를 꺾기 위해 프랑스는 두 번째 봉쇄와 동시에 12월 1일까지 약 한 달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지난 10월 23일부터 실시된, 저녁 9시에서 오전 6시까지 통행금지에 이어 더욱 강화된 조치다.
이와 동시에 프랑스 남쪽 지중해 연안 세계적인 관광 휴양도시 니스에 있는 바질릭 성당에서 뚜상(Toussaint, {가톨릭} 모든 성인 대축일)을 며칠 앞두고 극 이슬람주의 테러가 발생하여 세명의 희생자가 생겼다. 파리 근교 중학교 지리-역사 교사의 참수가 있은지 불과 2주가 되기도 전이다. 곧이어서 리옹에서의 정교도 신부님의 총상까지.
극 이슬람주의 테러는 코로나 바이러스 못지않게 프랑스 사회에 적신호와 시민들을 분노케 했다.
자가격리 실시 직전 저녁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나와 평화롭게 즐기는 모습을 보고 역시 프랑스인 답다고 생각했는데, 마침내 모두가 슬픔에 빠졌다.
우중충한 날씨만큼이나 썰렁하고 요요한 가운데 또 다른 슬픔이 우리에게 찾아든 날이기도 하다.
인간에게는 느낌이라는 강한 매력적인 감각기관이 있다. 이 느끼는 감각은 그 어떤 문화나 인종,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 기호에 따라 서로의 마음을 밀거나 끌어당겨 통하게 한다.
얼마 전부터 집 내부 공사에 합류한 중국인 쟌에 대한 이야기다.
쟌은 오십 갓 접어든 중국인으로 삼 년 전 일자리를 찾아 프랑스에 왔다. 상하이 근처 어느 도시 가구공장에 다녔다는 사실 외 우리가 아는 구체적인 정보는 없다.
우리의 입주가 애바쁜 시점에 공사가 자꾸 지연되어 할 수 없이 일꾼을 한 사람 추가하기로 했었다. 따라서 일을 책임 맡은 중국동포 한분이 그의 중국인 친구 소개로 쟌을 데리고 왔다.
그를 처음 제시받을 당시 우리는 그가 중국인이며 불어도 한국어도 전혀 못한다는 말에 약간 망설였다. "말도 안 통하는데 어떻게 일을 시킵니까, 우리는 중국말을 못 하잖아요" 했더니, "내가 맡아서 시키면 됩니다"라고 해서 승낙을 했다. 하지만 우선 수습기간 삼아 일주일간 지켜본 후, 지속 여부를 결정하겠다는데 서로가 동의를 했다.
일주일 동안 겪어 본 쟌은 결국 세 사람 중 가장 우리 마음에 들었다. 그의 조용하고 깔끔한 성격과 성실함이 좋았다. 무엇보다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인생을 즐겁게 생각하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우리를 건전화시켰다. 그리고 천성적으로 좋은 성격 같았다.
물론 언어소통이 안되기에 지키는 나름의 적정한 예의나 조심성 일수도, 또 우리가 분명 그와의 대면 기간이 짧은 만큼 두 사람에게서 가지지 못한 신선함도 내포되어 있었다.
세 사람 모두 힘든 외국생활이지만, 그들 중 쟌의 이민 기간은 두 사람에 비해 월등히 짧아 그가 처한 형편 또한 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쟌이 풍기는 행동거지나 일처리, 인간관계는 더욱 유연하고 문화인다웠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 공사현장에서 계속 일하게 되었다.
내 남편 A는 점심시간 또는 저녁에 돌아와서도 쟌의 칭찬과 그에 대한 만족감을 자주 표현했다.
"음, 쟌의 정리정돈은 정말 마음에 들어"
"그는 내가 시킨 것보다 항상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놓거든"
"쟌은 특별해, 그런 사람이 흔치 않은데..."
"쟌이 나무 바닥을 깔았는데 허점이 없어, 거의 완벽해, 일을 아주 깔끔하게 잘해" 등.
쟌의 정리정돈과 청결함, 세밀한 일솜씨는 다른 두 일꾼이 미처 이루지 못한 그의 큰 장점이었다. 가구 제작에 종사한 경력으로 나무 작업이나 섬세한 부분의 일처리 능력이 더욱 뛰어났다.
사람마다 그 성향에 따라 잘하는 분야가 있듯이, 이 세 사람만 보아도 각자 성격이 다른만큼 일의 능력도, 개성도 참 다르다.
하루일이 끝날 무렵, 내가 공사현장에 나가서 볼 때마다, 그는 항상 혼자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흥얼대며 일에 열중했다. 그런 모습은 그가 가진 성격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또는 노래가 주는 여유로움이 노동의 힘든 분위기를 밝고 흥겹게도 했다. 오직 돈을 목적 삼아 힘겹게 억지로 하기보다는 이왕이면 즐기면서 일하는 모습은 고된 일을 시키는 우리의 무거운 마음속 부담도 들게 했다.
그리고 나와 마주치면 "니하우"하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우리는 단지 그 한마디 언어밖에 통하지 않지만, 그가 주는 태도에서 직감적으로 내 감정은 따뜻하고 흡족했다.
퇴근길 "안녕" 하고 차에서 내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역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과는 달리, 그는 언제나 "안녕"하고서도 차에서 내려 다시 창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다감하게 손을 들어 미소 짓는다. 이 작은 제스처가 그와의 언어 장벽까지 허물어버릴 이해관계로 개선된다.
비록 전기, 용접 같은 기술적인 능력은 없으나 작은 일이라도 빈틈없이 열심히 해주는 그에게 호감이 가는 것도 인지상정인가 보다.
그런데 2차 봉쇄 및 자가격리가 선포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프랑스 정부는 치명적인 경제손실을 막기 위해 BTP(공공 건축물을 위한 일) 분야 등의 종사자들은 증명서를 소지하여 출퇴근을 허용했다. 정부 방침에 따라 우리도 프리랜서 사업 등록자격으로 증명서에 날인을 찍어 그들에게 발급할 수가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쟌의 집주인은 그의 외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쟌이 자가격리 기간에 일하면서 바이러스를 옮겨 올 수도 있다는 이유다. 그는 한 방에 두 사람씩 사용하는 중국인이 세 놓은 집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공동생활을 한다고 했다.
물론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정책으로 자가격리가 실시되지만, 그만큼 외출 인구가 줄어들면 전염력 역시 어제오늘보다는 억제될 터인데, 오늘까지 일하러 나온 그가 같은 일터에서 느닷없이 자가격리 기간 바이러스에 전염될 것이라는 집주인의 다소 비논리적이고 억척스러운 변명이지만, 집주인 나름대로 또 다른 입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일을 못하면 집세를 비롯한 생활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괜스레 내 마음이 찐하게 먹먹해 온다.
우리는 그의 일솜씨가 마음에 든 면도 있을 뿐 아니라, 일주일 내지 이 주일이면 내부공사가 끝나기 때문에 지금 다른 사람이 오는 것보다는 쟌이 자리를 지켜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집주인이 그의 출퇴근으로 걱정되어 반대한다면, 일주일간 우리 집에서 지내라고 했다. 보일러도 작동되고 작업실에는 수돗물도 나온다. 아직 부엌가구 설치가 안됐지만, 음식을 데우고 만들 수 있는 전기판도 있고 물 끓이는 포트병도 있으니 아쉬운 대로 지낼 수는 있다.
그는 집주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사실여부를 알리고 승인을 구했다. 그런데 그에게 '일주일 후, 돌아올 필요 없이 그만 방을 빼라'는 집주인 중국 여성의 단호하고 날카로운 반응이었다.
그러니 우리도 별도리가 없었다. 앞으로 그가 살 집을 책임지고 마련해 줄 수도 없기 때문에 그를 아쉽게 보내야 했다. 남편은 그에게 "봄이 되면 정원 창고 지을 때 쟌이 와서 지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이며 서로의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그와 작별을 했다.
우리는 그를 떠나보낸 후 씁쓸한 심정에 우울하고 슬펐다. 그리고 새삼 코로나 19가 원망스러웠다.
그를 필요로 한 우리의 욕심과 아쉬움이 전혀 슬픔에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꼭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우리보다는 한 달간 아니 자가격리가 더 길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동안 일도 못하고 좁은 방에서 월세만 지불하면서 지내야 하는 그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지난봄 일차 자가격리 55일간도 역시 일을 못했을 텐데... 일을 해야만 하는 쟌의 절실한 현실을 도울 수 없다는 나 자신의 무능력함에도 우울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시나브로 그에게 가지는 인간적 연민과 정이 들었나 보다. 어쩌면 그를 보면서 내 유학시절 어려웠던 외국 살이가 떠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 동정심은 한국인이나 동양인을 향해 더 크게 느껴지는 건 나의 정체성에 대한 현실이 반영된 것일까?
저녁식사 시간에 남편은 쟌을 두고서 "슬프다, 이거 기구한 삶이다"라 말하며, "그는 내게 좋은 인상으로 남은 사람"이라고도 덧붙인다. 나 역시 "정말 슬프다, 이것이 인생이구나!"라고 말하는 동시에, "우리는 운이 좋은 거다"라고 비로소 내 생활에 안도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새삼 또 나는 내 주어진 삶과 형편에, 그리고 내 작지만 따뜻한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집 공사에는 페인트칠 전문가이며, 언어가 통하는 활기 넘친 젊은 프랑스인이 합류하여 새로운 에너지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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