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형편의 미묘한 감정
두 번째로 맞이하는 내 양력 생일날에 하필이면 우리는 또 다른 셋집으로 이사를 간다. 집을 떠나 지낸 지가 벌써 4개월, 이토록 긴 시간 돌아가지 못할 줄은 미처 몰랐다. 집 공사가 이렇게 길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여름 짙은 녹음일 때 반팔 소매로 나와서 오색 물든 나무가 그 옷마저 떨구는 계절, 우리는 두꺼운 겨울 외투를 껴입으면서도 유랑생활을 끝내지 못했다.
벨뷰 아파트 세 들 때만 해도 넉넉잡아 2개월만 살면 되겠지 했는데 이곳에서 연장을 세 번이나 거듭하였다. 이후에는 예약된 손님이 있어 이제 더 이상 머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네 번의 연장으로 설마 계속 지내지 않을까하여 미루고 버티다가 급기야 이틀 전에 에어비앤비에서 또 다른 집을 구했다. 예약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혹시 예약 손님이 취소한다는 소식이 있지 않나 일말의 기대로 벨뷰 아파트 주인 소피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솔직이 근처에서 이만한 조건을 가진 셋집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집으로 입주할 날짜를 일주일 내지 길어야 십일 남짓 앞두고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인한 국경 봉쇄 및 자가격리임에도 불구하고 마르티니크(Martinique, 카리브해에 있는 프랑스 해외령)에서 온다는 손님의 계획에 변동은 없었다.
'그래 출산을 하러 오는 손님이 코로나 19가 겁이나 취소할 일은 없겠지' 자단 하며, 결국 오늘 이사 갈 집 예약 버튼을 꾹 눌렀던 것이다.
그래도 코로나 19로 인하여 여행 손님이 없는 탓에 우리는 세 번의 연장도 가능했었고 따라서 코비드 혜택을 톡톡히 본 것이다.
짐은 그제부터 차근차근 정리해서 싸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오층 아파트라 최대한 짐을 채우지 않으려 했건만 그럭저럭 쌓인 세간이 어지간하다. 두 사람 사는데 묻어온 살림이 어느덧 내 애초 계획을 처참히 무산시켰다. 역시 소유보다 무소유로 사는 게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여름 옷가지와 신발 등 자질구레한 것들은 별도의 여행가방에 정리하여 그홀레 집에 갖다 두고, 일주일 동안 지낼 물건만 들고 가기로 했다.
생일이라고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노심 끝에 작년부터 강조하여 맞은 양력 생일이지만 그 이전과 크게 다를 바도 없다.
며칠 전에 남편은 내게 "생일 선물로 뭘 원해? 목걸이?" 하고 당장이라도 사러 갈듯이 물었다.
"아니, 그건 너무 비싸, 차라리 겨울 망토가 좋겠어?" 몇 년 전부터 장만하려 했지만 마땅한 걸 찾지 못했었다.
"망토는 굳이 선물로 살 필요가 없지 않아? 그냥 언제든 사면되지?" 오래전부터 남편이 생각해오던 목걸이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목걸이는 너무 비싸, 시시한 건 사놓고도 안 할게 분명한데, 좋은 건 형편상 너무 과해"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남편은 금방이라도 주문할 듯이 말을 꺼내더니 "그럼 선물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네"라고 덧붙였다.
물론, 코비드 19로 인해 주얼리도 옷가게도 꽃집도 문이 굳게 닫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생일날 아침이 되어서는 온통 집 공사와 이사에 몰입한 나머지 남편은 내 생일을 까맣게 잊었나 보다. 눈을 뜨고 아침인사로 "잘 잤니? 좋은 아침!"하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가벼운 포옹과 비쥬(bisou, 입맞춤)를 하고서도 더 이상 이어지는 말이 없다.
'이런 또 잊어버렸군' 나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그뿐이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 덧붙일 말은 없어?"하고 말했다.
그때까지도 남편은 아주 태연스럽게 "이사하는 날"하고 내뱉던 순간, 내 질문에 이상기류를 느꼈는지 재빠른 눈치와 머리 회전으로 '아니 다른 뭔가가 또 있구나'하며 주춤하는가 싶더니 비로소 기억을 떠올려 "생일 축하해!"라고 태연 작약하게 그러나 무안함이 묻어 말한다.
아침 날씨는 포근하나 꽤 흐리고 우중충하다. 그럼에도 광장 일요장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들 콧바람이라도 쐴 겸 나왔나 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연신 흘러내리는 마스크를 끌어올리며 열렬히 토론하는 모습. 사람과의 거리두기, 자가격리, 봉쇄... 이 얼마나 답답한 요구이며 제한들인가를 짐작게도 한다.
남편은 그홀레 집에 가방을 두고 점심으로 라오스 요리를 사 왔다. 그런데 내 생일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손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서운함과 약간의 허전한 마음이 언뜻 스친 것도 같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특별한 상황임을 이해하고 지나갔다.
오후에 이사하려면 에너지 충전도 할 겸 점심식사 전까지 휴식시간을 가졌다.
나는 엊그제부터 짐 싸고 청소하느라 무리한 탓에 피곤한지 눈도 찌르고 책을 읽으면 졸음이 쏟아진다. 할 수 없이 눈은 감은채 대신 이어폰 끼고 침대에 누워 유투버에서 흘러나오는 우리 가요 모음 7080을 들었다. 신계행의 '가을사랑',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 김광석의 '거리에서', 조동진의 '나뭇잎 사이로', 패티김의 가을이 남기고 떠난 사랑'......., 잔잔히 유수같이 흐르는 노래 따라 우수에 젖는 내 마음, 그곳에서 차가운 바람이 분다.
그리고 갑자기 소리 없는 눈물이 봇물처럼 줄줄 흘러내린다. 무슨 영문인가? 그냥 까닭 모르게 아프다. 아니 너무 많은 복합된 형편의 미묘한 슬픔이었다.
남편이 지나가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서 깜짝 놀란다. "왜? 무슨 일이야?" 하고 내 눈치를 살피더니 곁에 다가와 살며시 파고들어 눕는다. "음악 듣는 거야?" 말하며 나를 꼭 껴안아준다.
"응, 몰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모든 것이 다 슬퍼, 만사가 귀찮아, 아마 집으로 못 가고 또 다른 곳으로 이사 간다는 사실도 힘 빠져 기운이 없어."라고 그동안 내심 차곡히 쌓였던 감정의 말들이 술술 새어 나왔다. 눈물에 대한 정확한 이유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이기는 하나, 최소한의 감정을 털어내고 있었다.
공사일로 서로가 힘들기 때문에 그동안은 부정적이고 우울한 내색을 될 수 있으면 안 하고 서로 조심하며 삼가기로 애썼다. 그래서 쌓인 것도 많았나 보다. 어린아이 같은 갱년기!
남편은 "조금만 참자, 곧 집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거의 다 왔어, 이제 끝 지점에 있거든"라고 위로를 한다.
"집 없이 셋집으로 옮겨 다녀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노고를 이해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며칠 후면 집으로 갈 수 있잖아"라고 남편은 원칙적인 말로써 대신 용기를 준다. 그러더니 곧바로 "생일인데, 케이크이라도 사 올까?, 그래 케이크를 사야지, 내가 가서 사 올게"라 덧붙인다.
사실, 나는 케이크 같이 너무 단것도 싫어하고, 버터처럼 유제품이 첨가된 음식을 먹으면 위가 더부룩해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아니"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도 내 눈치를 보면서 묻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비록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방금 전 남편의 손에 케이크가 들리지 않았나 하는 조각 같은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마음을 형식적으로라도 보고,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니'라고 답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이제 그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정쩡하게 "응, 당신 맘대로... 해"라고 말했다.
남편은 후다닥 달려 나가더니 쥬스틴 댁 살구 파이를 사들고 왔다. 그리고 점심을 먹었다.
일요일마다 색다르게 먹는 라오스 음식도 그 맛은 아직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지난번 하비올리(raviolis) 수프도 오늘의 쌀가루에 버무린 다진 소고기와 닭고기 코코넛 요리도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 음식보다도 맛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사 온 이탈리아식 살구 파이를 먹었다. 파이 위에 얹힌 계란 흰자 거품과 하얀 치즈는 파이를 싫어하는 내 입에서도 살살 녹는다.
갑자기 기분이 되살아났다. 사실 생일 때문에 눈물을 흘린 건 아니었다. 그리고 보니 완전히 아닌 것도 아닌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무엇 때문인지 아무것도 분명치는 않다. 어쩜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 터져 나온 서글픔인 것도 같다. 깊어지는 가을, 우울한 날씨, 추억의 7080 노래, 피곤함, 내 마음에 빈 공간, 지연된 집 공사, 또 이사... 한마디로 복잡다단 미묘하고 공허한 내 감정에 찬바람이 새어 든 것이리라.
더 확실한 건, 남편이 사다준 맛있는 음식과 달콤한 살구 파이를 먹고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