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블리 백포도주에 버터 발린 호밀빵과 생굴을 먹었다
A의 아주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브르타뉴 산 꽉 다문 생굴 입을 벌리는 일이다. 반쪽으로 껍질을 쪼갠 생굴에 레몬즙을 살짝 뿌려 꿈틀이는 상태에 따라 신선도를 확인한 후 식탁에 올린다. 무 썰듯 자른 호밀빵에 버터를 바르고 샤블리산 백포도주와 함께 먹는다. 그의 얼굴에서 환하게 부푼 태양이 떠오른다.
우리 음식에도 서로 맞는 궁합이 있듯이 그 의미에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프랑스 요리에는 이를테면 하모니가 있다. 그리고 본성에 대한 모든 감각을 중요시한다.
건강과 직결하여 조화로운 배합을 중시한 한국음식과는 달리, 프랑스 요리는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과 개성을 존중하여 최대한 헤치지 않으며 잘 살려둔다. 그래서인지 여러 재료들이 섞여서 그 독특한 맛을 내는 탕이나 찌개 같은 혼합된 재료의 요리가 많지 않다. 그리고 한 상에 모든 음식을 차려놓고 먹는 대가족적 문화인 한국과는 달리 전, 본, 후식 순으로 개별적 식단에서 프랑스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이나 기질이 잘 드러나기도 한다. 또한 프랑스 식탁은 대화를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한국은 밥상머리에서 지키는 유교적 문화의 근엄함과 침묵이 하나의 예의범절이기도 하듯이, 식탁 위에 칼을 올리지 않고 수저를 사용하는 것 또한 밥상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의 전통문화라 생각된다. 물론 오늘날에는 나라마다 가진 많은 전통들이 해체되고 허물어져 그 경계선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음식이나 식단에서도 그 나라마다의 고유한 문화와 그들이 지닌 국민성을 엿볼 수 있다.
생굴에는 아무래도 버터 발린 호밀빵과 산미 나는 백포도주를 곁들어야 제 맛이다
굴의 촉촉하고 졸깃하며 부드럽게 식감 나는 살집에는 바케트 빵보다 약간 거친 듯 독특하게 씹히는 호밀빵에 버터를 발라야 그 부드러운 맛과도 적당히 상충되어 다시 연한 생굴과 어울리는 매개체가 된다. 다시 말하면 생굴과 호밀빵, 버터가 가진 맛과 질감을 각각 살리면서도 입안에서 부드럽게 화합하며 서로 어울리게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 가벼운 맛의 청사과 같은 풍부하고 상큼한 신맛으로 잘 숙성된 백포도주가 곁들이면 은은하고도 조화로운 미감을 준다. 그리고 생굴의 맛과 일체감을 이룬다.
A는 반지하 저장고에 백포도주가 동 났다며, 샨세르(Sancerre)나 다른 백포도주를 살 수도 있건만 유독 그만의 유쾌한 추억이 담긴 부르고뉴 북쪽 지방의 귀한 샤블리산을 그다지 비싸지는 않은 것으로 사 왔다. 독특한 맛을 내는 샤블리(Chablis)는 그 유명세에 반하여 생산량이 현저히 미치지 못해 언제나 값이 비싸다. 따라서 저렴한 것이라 할지라도 웬만한 다른 좋은 포도주 값에 견준다.
전식으로 즐겨 먹는 생굴은 프랑스에서 고급 요리에 속하나 그나마 영양가가 가장 높다는 겨울철 성탄절 전 후에는 대목이라 신선한 굴을 제철에 좀 더 싸게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
가족들과의 성탄절에는 많은 양의 굴을 까야하는 어려움과 특히 바다에서 생산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시아버지 식성에 따라 한 번도 먹지 않았지만, A는 바닷물을 좋아하는 굴보다도 더 그 생굴을 좋아한다. 그러나 생굴 먹는 걸 꺼리는 나를 두고 그 역시 자주 먹지는 못한다.
간혹 연말이나 새해 또는 친구들과 아주 가끔 즐기는 정도라 그의 생굴 사랑에 비하면 너무 바투 하지 못하지만, 만찬의 기회가 주어지면 그의 행동은 민첩해진다.
반면, 나는 피치 못할 암울한 기억으로 그동안 생굴을 먹지 않았다.
십수 년 전 내가 A의 집으로 들어오고 며칠 후 우리는 친구들을 초대하여 연말 파티를 열었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생굴을 먹었고 포도주를 마셨고 그리고 또 여러 가지를 먹었었다. 그 밤에 나는 심하게 토하기 시작하여 이후 몇 날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힘겨워하며 이불속에서 보내야 했다. 재발된 갑상선과 겹쳤는지 나날이 줄어드는 체중에 무척 추웠고, 얼굴빛은 햇빛도 없는 겨울 방 안에서 어떻게 선탠이 가능했는지 까맣게 타들어가는 동안 한국의 따뜻한 밥상을 마냥 그리워하며 그렇게 혹독한 새해를 맞이했었다. 생굴 먹고 배탈 났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지만 먼 이국땅에서 여남은 날을 몸져누워서 지냈던 나에게는 쉽사리 지우 지지 않는 참으로 쓸쓸하고도 어두운 추억이다.
겨울철, 생선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생굴 먹을 날 기다리며 입맛 다시던 내 남편 A를 두고, 내 몹쓸 외상 충격을 누차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의 뜻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를 두고 혼자만 즐기는 야박한 성격도 못되어 물음표만 달고 지나는 모습이 차마 안쓰러워, 그가 나를 배려하는 마음처럼 그를 생각하여, 겨울이 가기 전에 혼자라도 먹어라고 했더니, 싱글벙글 정말로 지난 연말 생굴이 든 작은 상자를 들고 왔었다. 참 어이없어하면서도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고 내친김에, 나는 특별한 날에만 꺼내는 파랗게 작은 꽃무늬 손 수가 놓인 하얀 식탁보를 깔았다. 그 위에 촛불과 꽃병을 올리고, 버터보다 더 사르륵 녹는 푸아그라를 내 몫으로, 부세 라 헨느와 향긋한 샨세르 백포도주까지 그리고 바다 냄새가 그득히 담긴 생굴의 입을 열어서, 2019년 우리의 마지막 저녁을 위한 파티를 했었다.
그날 저녁, 막막한 겨울밤 악몽 같은 추억이 조금씩 희석되었는지? 오래간만에 꺼낸 파란 꽃 흰 식탁보에 홀렸을까? 분위기로 취했는가? 마침내 용기 내어 생굴 세 개를 먹었지만 용케도 아무런 탈 없이 지났다.
그래서인지 오늘 에피파니 축일을 맞아, A는 용기백배하여 그 파란 꽃무늬가 수 놓인 하얀 식탁보를 펴고 싶었는지 또다시 생굴 상자를 들고 왔다. 그리고 디저트로 갈레뜨 데 호와 파이 까지!
생굴을 먹을 때는 작은 포크를 굴 아래로 살짝 집어넣어 슬쩍 들어 올리면 껍질과 살집을 쉽게 분리시킬 수 있다. 그리고 살집을 먼저 먹고 굴 껍데기에 담긴 즙까지 후루룩 마신다. 레몬향이 입안에 그윽하다.
짭조름한 바다 맛까지 더하여 지난번 굴보다 향이 풍부하고 한층 탱탱하니 졸깃하다. 나는 물씬한 겨울바다 냄새에 아직 가보지 못한 브르타뉴 바닷가 돌옷 무리, 잔잔한 파도, 크고 작은 화강암, 상큼하게 미네랄 향내 나는 겨울철 바다를 그리워하며 식탁보에 그려본다.
샤블리 백포도주는 약간 복잡하게 특유한 맛을 제외하면, 그 유명세와 값에 반비례하여 과일과 꿀 향은 미미하고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았다. 지난번 친구 B가 들고 온 샤블리 보다도 연말에 마신 샨세르 보다도 질이 떨어지지만, A가 풀어놓은 샤블리에 대한 추억까지 마시며, 열 오른 분위기에 젖어, 적어도 그의 기분은 최고조에 이른다.
나는 슬픈 이전 기억이 완전히 씻기지 않아서인지 너무나 깊은 징표로 긴 역사의 화석처럼 단단히 박혀서인지 생굴의 그 깊고 은은한 맛을 음미하기에 소심하게도 아직은 이르지만, A의 즐거움에 내조하는 마음과 내 징크스를 극복하려는 과감성을 발휘하여 서서히 량을 늘린 끝에 무릇 다섯 개를 먹었다. 그 부드러운 생굴을 씹는 동안 내내 왠지 내 생살을 씹는 듯한 기분으로 마치 굴 껍데기를 억지로 씹어 삼키는 것 같았다.
'차라리 된장국이 좋겠다'라는 품위와 격식에 어긋나는 말 따위는 함묵했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생굴보다 서울과 통영에서 먹은 속이 뻥 뚫리게 시원한 굴 국밥이나 먹었으며 하는, 흡사 그의 백포도주에 찬물을 타는 격의 잔인한 생각은 했었다.
한국에서 A가 뜨끈한 굴국밥을 먹으면서도 생굴에 버터 발린 호밀빵과 백포도주를 못내 그리워했듯이!
에필로그
누워서 고스란히 이틀을 보내고 삼일째 일어났으나 휴식하며 며칠을 더 빈둥거리고 꼬박 닷새 동안 남편 A의 간호를 받은 끝에 서서히 회복되었다.
의사 진단에 의하면 생굴이 아니라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가 원인이라고 했다.
그렇더라도 아무렴 나에게 또다시 생굴 먹을 용기가 생겨날 것인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