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기쁨을 색칠하다

한 다발의 미모자

by 다나 김선자


노란 미모자(Mimosa:함수초) 한 다발을 꽃병에 꽂았더니, 싱그러운 바다 냄새를 풍기며 내 작업실로 들어와 화사한 사월이 되었다. 유년시절 기억 속 어느 봄날 알에서 막 깨어난 햇병아리 떼를 보는 것도 같다. 그 부드러운 생명은 작은 솜털 방울꽃으로 옹기종기 모였다. 탁탁했던 겨울 실내가 신선한 생기와 활력으로 되살아난다. 내 기분도 한껏 우쭐하게 전환되었다.

노란 꽃이라니! 평소에 노란색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몹시도 봄이 기다려지고 그리웠나 보다.

이제 두 걸음 뗀 겨울이 세 걸음에서 아직도 한걸음 즈음 남았는데!

왜 봄은 노란빛을 떠올리게 하는지? 수선화와 개나리꽃 때문일까? 포근하고 은은한 햇살 때문인가?

사실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실내용 화초를 살 까고 한참을 망설이다 기쁨의 팡파르가 울리는 축제를 그대로 닮아버린 생화 다발의 매력과 유혹에 이끌려 미모자를 샀다.

나는 그동안 프랑스 살면서 수없이 주고받기만 했었지 고스란히 나를 위한 취향으로 직접 꽃을 사서 화병에 꽂아 본 기억은 없다.

단 며칠 동안의 즐거움을 위해 꽃을 산다는 게 왠지 돈과 시간 낭비라는 생각도 했었다. 매일 물을 갈아 주는 번거로움도 귀찮았다. 시들어가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은 더 씁쓸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자생력이 강한 선인장을 더불어, 생화부케 같은 화려함은 없을지언정 실내 분위기 환기에 충분한, 자주 보살피지 않더라도 투정 부리지 않고 파란 지킴이로 내 곁에서 묵묵히 잘 자라 주는 몬스테라나 아레카야자 같은 강한 생명력을 가진 실내용 푸른 식물을 선호했다.

생화는 아름답고 화려하나 그 까다로운 성격이 게으른 나와는 잘 친하지를 않는다. 처음 싱싱하던 활기가 채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시들시들 고개 숙인 그 모습은 꼭 내 곁을 막 떠나려 애쓰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그런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갈이 외 다른 방도가 없으니 물을 갈아 주어도 소용없기는 매 한 가지였다.

모든 걸 떠나서 나는 꽃이 싫어서가 아니라 금방 시들어 가는 그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있는 내가 더 지치고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겨울철 비실비실 움츠려 드는 내 처지가 담긴듯하여 더욱이 안쓰럽고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부터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생화를 꽃병에 꽂아 볼까 마음먹었다. 비록 처음 같은 생생함은 오래가지 않거나 그 아름다운 향기와 모양새는 금세 사라질지라도 한순간이나마 행복을 준다면 기꺼이 그 순간도 소중히 여겨 보자고!

너무 사치스러운 생각일까?




프랑스 중산층의 많은 여인들은 꽃을 자주 산다. 시어머니를 포함한 노 여인들은 더욱 그러하다. 늘 흐리고 우중충한 긴 겨울나기에 꽃만큼 실내 분위기 전환에 효과적인 것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꽃집이 빵가게만큼은 아닐지라도 중상층 동네라면 필히 한 두 군데는 있다. 마을 재래시장이 설 때도 꽃장사가 따라오고 대형 슈퍼마켓 입구에도 생화와 꽃화분 특설 판매장이 보인다.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시어머니 시장 목록에도 꽃이 포함되어있다. 그동안 내가 본 시댁 거실에서 꽃이 피지 않는 날은 거의 없었다.

시어머니 90세 되는 해부터 시장 보는 일도 꽃병 물갈이도 고단하여, 이제는 화병 속에서 꽃들이 보이지 않는 날도 거듭되지만 우리는 그녀의 탄생일과 어머니날에 꾸준히 그녀를 위한 꽃을 산다. 단지 부케 꽃 대신 그녀를 닮은 화분에 담긴 서양란으로...!

시어머니는 80세 되던 날부터 향수 대신 꽃 선물 받기를 원했었다.




그때 나는 시어머니를 포함한 프랑스 여인들에게 질투심도 가졌었다.

시어머니를 보면서 오래전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를 생각하고 많은 한국 어머니들을 떠올리며 비교도 했었다.

어쩌면 내 어머니를 핑계 삼아 나의 이기심과 내 질투심을 합리화하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사실 내 어머니는 사심을 느낄 여유도 상황도 살펴보지 못하게 다사 분주하여 그렇게 사시다 홀연히 가셨다.

그 시절은 그랬었다.

나는 그러한 내 어머니 일생과 프랑스 여인들의 삶이 비유되는 것마저 원망스럽기도 했다.

시어머니와 꽃은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라면, 내 어머니는 꽃과 어떤 연상을 떠올려야 할지 도무지 찾기가 어렵다. 애써 기억을 끄집어내 짜 맞추어 보자면, 어린 내가 앞산에서 꺾어와서 먹고 남은 한아름 참꽃을 유리병에 꽂았을 때, 그 심심하게 바라보시던 안온한 눈빛과 잠시간 얼굴 주름이 펴졌던 게 전부다. 분명 만족함에서 나오는 무심함인 것도 같으나 아닐 수도 있다. 그런 내 하는 짓이 다사롭고 기특해서 흐뭇한 것인지, 고운 진달래 꽃에서 잃어버린 당신의 화사했던 한때의 젊음에 회상이었는지는 지금까지 도통 모르겠다. 이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어머니 일생에서 꽃을 산다는 건 평생 자식들 졸업식 때 외에는 그 단어조차 떠올리기 불가능한 것이었고, 어머니의 시장바구니 속에 꽃다발을 담아 집을 들어서는 것은 그냥 드라마 속에서나 존재 가능한 것으로써 자신에게서는 꿈속에 묻힌 것이거나 아예 상상도 생각조차 없는 것이었다.

그 시절은 꽃을 파는 곳도 흔치 않았다. 마찬가지 아무리 꽃가게 앞을 지날지라도 며칠간 자신의 기분을 호사하고자 꽃을 산다는 건 쓸모없는 짓이라 여겼던 어머니 마음이다. 꽃 대신 차라리 가족과 다 함께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하나라도 더 담았을 것이다.

이처럼 내 어머니는 자신보다 모두를 위하여, 시각적인 즐거움에 앞서 미각적인 것에서 기쁨을 얻고 배부름의 풍만함에서 보람을 느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네의 형편이기도 했지만 비로소 우리 어머니들의 정서이고 문화였다.

어쩌면 한국 겨울날은 파리 날씨와는 달리 태양이 빛나고 풍요로운 미소가 따사하니 인심 좋게도 꽃자리를 대신하여 찬란히 반겨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상 꽃을 꽂는다는 것, 고달프던 내 어머니 시절도 아닌 지금에야 시시로는 얼마 안 되는 지출로 집안 분위기를 쾌적하게도 만들어, 그 좋은 기분에 따라 가정이 유쾌하고 화목할 수도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늘 욕념에 가려져 우선한 감정으로 이성적인 생각을 미처 못했던 것도 어쩜 나의 또 다른 이기심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그리하여 나는 봄의 전령사인 튤립과 크로커스(Crocus:샤프란) 뿌리도 살 겸 식물원 투뤼포(Truffaut:식물원 이름)를 향했다. 작년 9월에서 12월 사이에 심었어야 이른 봄 아름다운 협주곡으로 피어나는 꽃들을 볼 수 있겠으나, 시기를 놓쳐지만 지금이라도 심어볼까 해서다.

나는 그물망 안에서 이미 싹이 오른 튤립과 크로커스 뿌리를 들고 꽃 단지들 앞에 섰다.

백합, 튤립, 물망초, 장미, 국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 중 미모자 한 묶음을 들어 코끝에 닿아 보았다. 왜 하필이면 그 순간 노란색이 눈에 들어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봄날 같은 그윽한 풀향기에 은은하고 소박해서 더 우아하게 향내 나는 아름다움이 내 심장으로 쏙 들어왔는가 보다. 작고 노란 방울들이 화사하게 통통 튀어 실로폰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곁에서 남편이 부추긴다."음~ 미모자 구나, 좋네 멋지다 사?" "지금 한참 피는 꽃이지, 제철 꽃이잖아!"

그래 제철, 제때, 제대로가 좋은 거야!

나는 망설임을 그만두고 미모자 한 다발을 가슴에 안았다.

미모자는 겨울철 포근한 바닷가 지방에서 피는 꽃으로 남부의 지중해 연안도시 니스에 가면 노란 미모자가 한창으로 피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 바다 같은 신선한 향기에 노란 물방울처럼 동글동글 피어나는 것인가?

흐리고 밋밋한 무채색 겨울날을 노랗게 기쁨으로 색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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