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에서

카라바조전을 보았다.

by 다나 김선자



파리 쟈크마르 앙드레 미술관(Musée Jacquemart André)에서 16,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상으로 오후 4시 30분 입장권을 예약하여 친구 M과 R 부부를 전시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카라바조 전시는 파리에서 그 애호가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열리지 않으므로 그만큼 몰려드는 관람객도 많아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예약하기 쉽지 않았다.

사립 재단 미술관인 쟈크마르 앙드레 미술관은 19세기 파리의 부호이며 은행가였던 자크마르 앙드레(Jacquemart André)와 그의 배우자인 넬리 앙드레(Nélie André)가 살았던 저택이며, 생전 앙드레 부부가 수집한 수많은 작품들과 그들의 호화로웠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샹젤리제 거리에서 멀지 않은 파리 8구 호스만(Haussmann) 대로 158번지에 있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이 미술관을 찾는다.


지하철 미호메닐(Miromesnil) 역에서 내려 거리로 나오자, 으스스 파고드는 찬기운에 이미 축축한 아스팔트 위로 가는 빗방울이 눅눅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목도리를 잡아당겨서 야무지게 다시 매고 옷깃도 바짝 여미었다. 파리의 겨울비는 보슬보슬 얇게 내리는 게 일상에 다반사로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들고 외출하지 않는다.

박물관 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길 모퉁이에 A가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다는 노란 우체국이 보인다. 거의 50년이 다 된 70년대 초반 이야기로 그 시절은 집집마다 전화가 흔치 않던 때라 긴급시에는 우체국에서 텔레그램이라는 전보를 쳤단다. A는 그 텔레그램을 들고 봉투에 적힌 주소를 찾아 이 길 저길 수없이 헤맸던 터라, 그가 오늘날 자주 왕래하지도 않는 이쪽 지역의 길 이름까지도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로부터 까마득한 세월이 지난 지금, 참으로 변한 것도 많지만 노랗게 변하지 않은 것 또한 수없이 많다. 파리의 정경에서나 A 역시도!


박물관 앞에 도착하자, 오후 4시 30분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건물 밖에 한 줄로 서서 침묵 속 세우를 맞으며 양손을 두 주머니에 꾹 쑤셔 넣어 움친 몸으로 불평보다는 대가 카라바조의 훌륭한 작품을 마주할 기대찬 마음에 고조된 모습이다. 우리는 그나마 긴 줄이 아니어서 10분쯤 후에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매표구 옆에는 즉석에서 표를 구입하려는 또 다른 줄이 있으나, 친구 부부는 이미 들어갔는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마당을 가로지르며 눈여겨 올려다본 미술관은 19세기 초 아르누보식 건축물이고 출입구 현관 앞 널따랗게 펼쳐진 테라스에는 매끈하게 세워진 네 개의 대리석 기둥과 좌우 놓인 두 마리 사자 조각상이 그때의 사치스러운 풍유를 엿보게 한다.

이 열린 구조의 건축물 또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니, 나는 마치 부유층 사교 모임에 초대된 착각을 일으켜, 그 장면들이 시퀀스로 주마등같이 지나간다.

프루스트는 그의 소설에서 19세기 파리의 물질적 풍요로움에 퇴폐적이며 위선적인 귀족과 부르주아 살롱 문화를 그의 냉소적이고 풍자적 특유한 시각으로 잘 표현했다. 이 시대의 화려한 치장으로 장식적이며 외향적 웅장함을 드러낸 건축물과도 긴밀하게 일치감 주는 묘사를 했었다.

샹젤리제를 비롯한 이쪽 지역 건물들은 대체로 19세기 산업 발달 이후에 생긴 신흥 부르주아들의 저택들로써, 직설적이고 고귀한 엄숙함이 있는 생제르맹 데프레(Saint Germain des-prés) 쪽 바로크식 건축물과 다르며, 17세기 지어진 피카소 미술관이나 18세기 로뎅 미술관 건축물과도 미학적인 요소나 역사적인 배경에 큰 차이가 있다.


현관문에서 서성대는 안내인들을 비껴 잽싸게 안으로 들어섰더니 관람객들은 입구부터 북적이고, 맞은편에는 언뜻 보아도 고급스러운 실내 카페가 빈자리 없이 손님들로 꽉 찼다. 대체로 사람들이 드러내는 분위기가 점잖고 차분한 부드러움이 있지만 은근슬쩍 거만함이 있고, 그 체면치레 예의와 태도로 보아 짐작하건대 넉넉하게 정년퇴직한 부르주아 파리지앵들이다. 이토록 파리의 특별 전시장들을 메우는 관람객 대부분이 그들로 이루어졌으니, 프랑스에서 흔히들 말하는 '정년퇴임자들의 여유롭고 아름다운 삶' 임을 족히 말함직한다.

우선 우리는 친구들도 만나야 하므로 컬렉션 작품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인파를 피해 곧바로 카라바조 작품이 전시된 2층 안쪽 방으로 직진했다.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된 이층의 크고 작은 몇 개의 방을 거치면서 슬쩍슬쩍 곁눈 짓만으로도 굉장한 소장품과 장식들은 분명 화려했었던 살림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카라바조 작품들은 시대별로 몇 개의 방으로 나뉘어 전시되었는데, 그 방마다 공간이 작기도 하지만 발 디딜 틈 없이 넘쳐나는 사람들로 촘촘하게 동동 떠 있는 까만 머리들은 마치 시루 속 콩나물을 떠올린다.

나는 그 빽빽한 시루 속에 콕 박혀 사방으로 둘러쳐진 사람들 등짝에 꼼짝없이 잠긴 꼴이다. 그림은 전혀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뒤로 돌아 나갈 길도 막혀버린 이 어둠 속에서 울렁이는 파도를 타고 있는 듯 무진장 열이 오르고 멀미가 났다. 마침내 꾀를 내어 어깨를 요리조리 살짝 슬쩍 비틀어서 빈 틈을 겨우 찾아 기듯이 나와 맨 앞줄에 그림을 마주하여 섰다. 다행히도 내 작은 키 덕분에 이 처참한 상황을 제대로 빠져나와, 작품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애로점은 있지만, 뒷사람한테 방해 주지 않고서도 그나마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림들은 역시 16, 17세기 거장다운, 당대에 혁신적이라 할 그의 특유한 기법으로 인간 내면을 잘 표출한 훌륭한 걸작들이었다. 자연스러운 표정과 매우 섬세한 묘사, 세심하고 강한 붓터치, 간결하나 극적인 긴장된 과감한 구도, 선명한 색상과 명도, 불필요함 없는 그러나 정확히 필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분명하게 표현하여 힘찬 생동감을 자아내는 그의 거침없는 화풍이었다.

여기 전시된 이 훌륭하고 많은 작품 중에서도 가장 나를 붙들어 감격시킨 작품은 그의 말년에 그린 "엑스타스에 빠진 마들렌느(La Madelein en extase)"였다. 이것은 거의 동일한 두 그림으로써, 암흑 같은 어두운 배경에, 한 젊은 여인이 황홀경에 빠졌는지, 잠겼는지, 환각 도취인지 무감각 상태로 기대어 반쯤 드러누워 있는 작품인데, 아주 절제 있고 간결한 구도에, 매우 신비감을 주며, 검정과 흰색, 빨강의 대담한 색상 대비가 더욱 강렬하고 현실감을 주었다. 또한 그 둘 중 왼쪽 "마들렌느 그렌 (Madelein Klain)" 작품에서는 강한 윤곽선이 만들어내는 뚜렷한 명암 대비가 리얼리티 한 강렬함은 물론이고 이 현대적인 표현이 나에게 관능적 흥분을 일으키면서 그 환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카라바조는 이토록 자연스러운 표정을 담아내기 위해 전문 모델보다는 지나가는 행인이나 아마추어 모델을 주로 그렸으며, 또한 그의 대부분 작품에는 해골이 그려져 있다. 이 역시 삶의 허무함이나 죽음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로 표현되어, 이 시대 작가들에게서 하나의 유행처럼 그려졌다고 한다.

나는 카라바조 작품을 당연히 루브르 미술관 및 이태리에서도 보아 그의 작품에 대하여 어림짐작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훌륭한 다량의 작품들만 선별되어, 집중적이고 체계적이게 본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다. 그의 작품 흐름과 변천을 보다 상세하게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토록 대가 카라바조 예술세계를 깊이 있게 들어다 볼 수 있는 기회에 무한한 기쁨과 만족은 거듭하여 내가 파리에서 누릴 수 있는 굉장한 호사이며, 참으로 거부할 수 없는 행복이다.


드디어 친구 부부를 만났고, 서로 볼인사도 나누었다. 그들은 먼저 전시장에 들어와 진즉에 관람을 끝내고 우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들은 다 함께 이층에 전시된 컬렉션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역시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부터 비토레 카르파초(Vittore Carpaccio)까지, 넬리 앙드레 부인의 취향에 따라 이탈리아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나선형 계단을 내려오면 일층에는 남자 주인 침실과 여주인 침실이 나란히 있고, 그 옆으로 휴식실, 큰방, 작은방, 흡연실, 겨울정원까지 갖추어, 중국에서 아랍 나라에 이르는 각 나라 특색이 담긴 도자기며 가구들이 방마다 두루 진열되어 있다. 중앙의 큰 살롱에 이르자, 그 옆으로 음악실도 있으며, 여기서 밤마다 각종 화려한 파티와 무도회가 열렸음직하다. 그야말로 앙드레 부부의 풍류와 그 시대상을 어림하여 알 수 있는 공간들이다.

오늘날 이 박물관은 그때의 풍요했던 시절의 뒤안길에, 지금의 현실적인 힘든 유지비 충당을 위하여 휴관일에 맞추어 이 큰 살롱만은 행사나 모임 등을 위한 일반인들에 대여되어, 그 준비로 분주하다.

대로 쪽으로 난 넓은 테라스를 따라 전면 유리창 위에서 희미하게 점철되어 나타난 겨울 나뭇가지들이 내 시선을 멈추게 하여, 나는 잠깐 앙드레 부부가 활동하던 그 시대를 회상하여 내 정신적 호화로운 사치도 누린다. 그리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속 한 장면을 떠올리기도, 또한 남녀가 쌍쌍으로 춤추는 앙드레 부부의 무도회를 상상하며, 우리는 짝을 찾는 춤꾼처럼 살롱 안을 이리저리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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