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것들

봄이 온다

by 다나 김선자



튈르리 공원을 지나다 언뜻 활짝 핀 자목련을 보았다. 멀찍이서 바라보아 설마 했지만 다가가서 보니 분명 목련꽃이다. 아직 이월인데, 벌써 피어나다니 제정신이 아닌 것이 정녕 미쳐도 제대로 미쳤다. 이월에 와야 할 동백꽃은 기별도 없고, 삼월 말에나 올 소식이 일찌감치 아무래도 봄이 빨리 오려나 보다. 하늘은 아직도 온통 회색 마분지를 붙여놓은 겨울인데 그 속에서 열정만은 꿈틀이고 있었구나.


하얀 눈에 대한 풍신도 알림도 없으니 맑은 하늘을 원망하는 스키텔들은 이월 스키 바캉스에 경제난이 어쩌고 저쩌고 난리법석이지만 눈은커녕 아무리 혹한 없는 프랑스 겨울 날씨라 하더라도 올 겨울만큼은 초봄인지 늦가을 인지도 모르게 포근했으니 제철을 잃어버린 꽃들이 환장하여 제멋대로 오는 중이다.
우리 집 어린 홍매화는 일월부터 새빨갛게 입술을 쳐 바르고 있기에 어려서 철이 없구나 했었는데, 데이지나 프림로즈는 사계절 구별 없이 오고 싶을 때 제 마음대로 찾아와서는 절기 따라 모두가 몸을 바짝 낮춘 사이사이 파랗게 영역을 넓혀가더니 계절도 없이 하얗게 터져라 웃어 댄다. 기온이 상승되는 며칠 전부터는 사방에서 코를 벌렁, 눈을 찡긋 웃어대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신바람이다.


'미치다'를 사전적으로 뜻풀이하자면 정신에 탈이 나서 말과 행동이 이상하게 되다. 또는 하는 짓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다. 그리고 어떤 일에 지나칠 정도로 골몰하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더 간단히 말해서 일반적 보편적인 상태와는 다르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나쁜 부정적 형태도 있겠으나 일상에서 자주 표현되는 매우 독특하고 특별함의 긍정적 의미도 담았으니 이처럼 서둘러 오는 꽃들처럼 나도 그들과 함께 이 봄날 제대로 미쳐보고 싶다.


수선화 크로커스 홍매화는 이월에 온들 크게 낯설지 않은데 며칠 전 산책길에 본 자두 복숭아 미라벨 나무에도 하얀 쌀가루를 덮어쓴 모양새로 부풀 부풀, 철쭉까지 봉긋이 언제쯤 뛰쳐나갈까 바깥 망을 살피는 이 와중에 신바람 난 목련꽃들이 트럼펫을 울려대며 환심 나게 피어나고 있으니 내 어찌 좋아서 어깻바람 부풀지 않겠는가.

나는 작년 이맘때 포르투갈 리스본 현대미술관 공원에서 족히 한 달 앞서 핀 자목련꽃을 보고는 때 이른 봄맞이에 좋아 날뛰었는데, 올해는 수천 킬로 미터가 떨어진 북쪽 도시에서도 이월 한가운데 그를 맞대다니 환경주의자들 염려를 뒤안길로 참으로 반갑고 신난다.


이처럼 발광한 꽃들을 보자니 요요한 내 소녀적 기억 하나 끄집어 올린다. 요즘에야 정신 장애 시설이 많아 볼 수 없는 풍경으로 마치 시류에 벗어난 오래된 드라마나 흑백사진을 꺼내 놓는 것 같으나 그 유년의 무서움과 호기심은 무디어 간결해졌지만 몇십 년이 지나도 선명히 각인된 아름다운 색상대비의 인상만큼은 꽃으로 뚜렷이 남아있다.

내 고향 마을 아래 동네에 미친 여자가 살고 있었는데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참한 젊은 어른이었다. 윗동네에 살았던 나는 그녀가 왜 미쳤는지 그동안의 속사정은 모른다. 아무도 내게 알려주는 이 없었고 묻지도 않았었던 것 같다. 미친다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를 어린 나이였기에 깊은 생각은커녕 무서웠다는 것만 기억된다. 그리고 같은 여자지만 내 어머니나 언니 또는 내 이웃 아주머니들의 행동과는 다른 별스러움에 두려움이 있었을 뿐이다.

하루는 그 젊은 여자가 긴 머리를 까맣게 늘어 뜨리고 발가벗은 몸으로 밑 동네에서 윗동네로 이어진 길 한복판에 혼자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날아가는 그네처럼 되돌아 가는 모습을 사람들 틈에서 나는 한참 동안 지켜보았었다.

다음 어느 날은 그 까만 삼단같이 긴 머리채로 원피스인지 치마였는지 분명 하얀 긴 옷을 팔랑이며 왼발 오른발 번갈아 가볍게 들어 올려 춤추면서 왔다가 모난돌에라도 찔렸는지 별안간 기가 푹 죽어 등 돌리며 가는 뒷전에서 엉덩이 감싼 그녀의 흰 옷자락에 바가지 마한 붉은 자국이 또렷이 찍혀 있었다. 그때도 분홍 참꽃이 미친 듯이 피던 즈음이었지만 진달래도 철쭉도 아닌 틀림없이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린 꽃물이었다.

또 새들은 어떤가. 몇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실려 온 컨테이너가 공항에 도착하자 그 속에 있던 수천만 마리의 앵무새가 탈출하여 파리 일대에 터전을 마련해 사시사철 무리 지어 시끄럽게 돌아다닌다. 그 짹짹거리는 소리가 그들의 멋진 차림새와는 달리 어찌나 수다스럽고 요설스러운지 열대지방 제 고향을 떠나 낯선 이국 온화한 대륙성 기후에서 무려 제집보다 더 즐기며 잘도 살아간다. 어쩌면 풍족한 먹잇감에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곳 삶이 그가 어디서 왔던지 까마득한 고향이 어디든가 사는 곳이 고국이라 저리도 재재거리며 온 동네가 떠날 듯 시끄러운 것인가.

따라서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었는지 마치 용병이라도 된 양 앵무새 떼들이 들썩이고 다닌 몇 해 전부터는 주홍 부리에 까만 깃털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그 고귀하고 우아한 자태에 세련된 목소리로 노래하는 티티새가 보이지 않는다. 그 텃새는 해마다 긴 동절이나 이맘때 지근거리에서 겨우내 우울함을 달래주던 내 정분이었다.


내가 그들과 연을 맺은 건 늦깎이 유학생 시절 파리 샤론느 길에 있는 기숙사 다락방에서 외롭게 논문을 준비하던 때였었다. 그때 나에게 닥쳐온 크나큰 여러 가지 기막힌 사건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아팠던 사연은 내게 친언니 못지않고 형제 중 막내로 자란 나는 두 번째 엄마라 감히 생각한 큰올케언니의 죽음과 연이어 노 어머니의 사망 소식이었다.

한해에 겹친 불행을 맞았을 때는 밥 해 먹을 기운조차 없어 시리얼로 끼니를 때우며 슬픔에 지쳐 자고 울고를 반복하던 그즈음에 새벽녘 선잠을 깨우며 들려오던 구슬프게 아름다운 노랫소리, 내 우울한 마음을 너무도 잘 이해하여 함께 울어주던 청아한 소리였다.

하루 중 외로움이 가장 깊게 파이던 새벽이나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 홀로 내 방 지붕 위 굴뚝 머리에 앉아서 큰 들창 너머로 내 슬픔을 꿰뚫어 보듬고 위로하여 애절한 목청으로 내 마음에 대답하던 티티새,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혼자가 아님을 깨달았고, 참으로 큰 위안이 되었으며, 삐 삐르륵 삐릭 삐륵 그 세련되고 아름다운 소리에 공감하여 일어나야겠다는 격려와 동시에 희망을 얻고 가졌었다.

지금도 나는 그의 우아한 모습과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미치도록 그립다.


올 겨울 많은 것들이 보편적인 생각을 뛰어넘어 제멋대로다. 환절 머리에서 기후 따라 계절 따라 인간사 자연 섭리대로 이동에 변천을 거듭나는 중이다.

지난가을부터 내리는 강우량은 겨울 내내 센강 수치를 위협하더니 지불레 엉 막스(giboulée de mars:삼월에 내리는 우박)는 일월 이월 가리지 않고 온다.

갈매기는 바다 떠나 육지에서 뱅글뱅글 무리 지어 떠돌고, 차가운 땅속을 기어 나온 지렁이들은 온기 찾아 집 현관문 앞에서 모다기 공동묘지를 이루었다.

이른 봄 가장 먼저 오는 눈꽃(perce neige;꽃 이름) 손님을 막 보내려는 시점에 여기저기 황매화 홍매화 개나리 크로커스 노란 단추 꽃 수선화들이 찰나마다 색색이 맵시 나게 차려입고 맹렬한 외출을 시작했다. 앵초 꽃은 일찍이 지천으로 동네방네 왁자지껄 야단법석이구나.

건너집 울타리에 덤불진 홍매화는 화화 화광 충천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미친 난리통에 뜨음해진 여행객들로 한량 된 파리 거리에 환장한 우리는 그 틈새 인상주의 그림을 감상하러 오르세 미술관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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