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건 내 영역이 좁아지는 것이다.
매주 일요일 오후 4시, 남편 A가 그의 부모님 댁으로 출발하는 시간이다. 쪽 길 자동차로 20분 남짓, 그리고 저녁 7시 조금 넘으면 돌아온다. 19시는 시댁 저녁식사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혼자 남아 쉬거나 내 일을 한다. 이전에는 함께 가서 저녁을 먹고 왔지만 언제부터인가 남편 혼자 다니기로 했다. 시어머니의 작은 수술 이후 노환이 부쩍 악화로 찾아든 즈음 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시댁에서 다 함께 하는 일요일 식사와 카드놀이도 즐기지 않는다. 시아버지의 흐렸다 맑았다 밤이었다 낮이었다 계단을 오르듯 힘들어지는 기억에 빗대어 웃는 날도 적어졌다.
희미한 등불 같은 시아버지 기억이 가족만은 뚜렷이 불 밝히시어 나를 두고 A에게 에둘러하시는 말씀 "마담은 잘 있나? 다음에는 꼭 함께 오도록!"
특별한 날을 맞거나 서로 얼굴 잊지 않도록 가끔 뵈러 가는 나에게 비록 습관처럼 지나가는 인사로 던진 시아버지 말씀도 내게 전해오는 무게는 다르다. 내가 자주 찾아뵙는 횟수만큼 시어른들의 기쁨도 늘어난다는 걸 모르지 않으니까.
시아버지 사랑은 며느리다.
결혼 초기 시댁에서 나는 프랑세즈(프랑스 여자를 일컬음)들처럼 어른들이 차려 놓은 식탁에 앉아 당연지사 음식만 넙적 먹고 온다던지 식사 후에는 손님 마냥 털썩 주저앉아 있기가 면구스러워 무엇을 도와야 하나 주위를 얼쩡거리면 곁에 있던 시아버지 늘 하시는 말씀.
'S 넌 소파에 앉아 있어, 너희는 초대되어서 온 거야'
그러시고는 자신이 식탁을 차리고 치우고 부엌을 정리하는 일까지 도맡아 하신다. 시어머니는 요리 담당이지만 그 나머지는 시아버지 몫이었다.
그의 따뜻한 배려와 심상이 겨울날 한잔의 허브차를 마시듯 속이 편안하고 봄날 아뻬로 한잔처럼 경직된 기분을 돋게 해 주던 그 몇 개의 단어 문장들 그 온기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잘 안착할 수 있었다.
그렇다 여기는 프랑스다. 내가 시댁에서 손님처럼 앉아 있은들 민망한 철부지 모양새는 아니더라도 한국인 정서와 문화에 겸연스러운 나에게 시아버지 그 한 마디는 가벼운 거위털 이불처럼 포근하게 내 마음을 감싸주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킨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함부로 간섭하거나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써 서로 각각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각자 명분과 위치에서 분명한 선을 지켜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맡은 바 책임과 도리를 다한다.
이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인간의 진리이며 도덕적 윤리이지만 어떻게 실천하는가는 개개인의 가진 인격일 것이다.
우리 또한 시댁을 갈 때는 미리 약속을 정하고 출발 전에도 시어른들의 편리를 도모하여 매번 우리의 도착시간을 알려 준다. 그동안 그들은 간단한 몸단장을 하고서 명쾌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가이 맞이한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흐트러진 외모를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너희가 원할 때 언제든지 오너라 문은 항상 열려있어"
"당신들 집처럼 편안히 지내거라"
시아버지 이 간단한 몇 마디가 우리는 그 어떤 강요나 강압적인 말보다 스스로 더한층 책임감을 느꼈었고 또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나에게 따뜻한 큰 힘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에 대한 존경심과 이러한 문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두 주에 한번 가는 시댁, 난 은근히 그날을 기다리게 되었고 그 후 어른들의 나이가 들면서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꾸준히 다니다가 이제 나는 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다.
그렇게 그들의 애틋한 사랑을 받은 나 어쩔 수 없이 아들도 딸도 아닌, A가 미치는 마음과는 다른 며느리에 불과했나 보다.
굳이 변명하자 들면 다 함께 즐기던 대화나 카드놀이도 점점 어려워 고단해하시는 시어른들, 나는 멍청히 티브이만 보다 온다. 내 건강 또한 예전과 다르며, 이렇게 우리들의 상황과 처지가 달라졌고 삶의 방식도 변했다. 또한 내가 간들 다 같이 즐길 수 없다면, 각자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는 시부모님들 곁에서 굳이 숙제하듯 내 체력 낭비하며 무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나에 대한 A의 배려가 포함되어 있다.
반면 아들인 A는 시종여일 한결같다.
언젠가 내가 그에게 "왜 꼭 일요일 가야 하는지?" 묻자 그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다 함께 일요일 가지는 휴식을 그들의 평생 규칙처럼 지켜온 그냥 습관 같은 것"이란다. 그 말은 단순하나 관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나는 잘 안다. 비록 예전 같지 않은 시어른들의 모습이지만, 그들의 삶에 방식과 권위가 적어도 이전과 같이 영위되어 정신적 혼란을 주지 않겠다는 마음과 쇠약한 그들의 노후에도 스스로 서글픔이 들지 않도록 변한 게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삶에 대한 믿음과 보장된 안정감을 느끼어 편안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A의 깊은 뜻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꼭 그렇게 자주 찾아봬야 하는가 혼자 계신 것도 아니고 아직 건강하신데?"
내가 또 한 번 그에게 물었을 때 "부모님들께서 내 어린 시절을 돌보아 주셨던 것처럼 지금은 내가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날이 점점 줄어드니까 남은 시간 자주 보는 거라고" 이른바 그의 대답이었다.
그렇게 A는 시댁의 간단한 집안 수선부터 사소한 서류 정리까지 챙기고 시어머니 반복적 꺼내놓는 추억담을 들어주고 가끔은 투심 나게도 내 끼어들 틈 없이 의좋게 아들 딸 노력을 다하고 오는 것이다.
저녁 7시 돌아온 남편 A, 시댁에서의 무거웠던 시간을 얘기한다. 그는 찌뿌듯이 흐린 날씨만큼 묵직한 마음을 다소나마 내려놓고 나에게서 파란 하늘을 보고 싶은 것이다.
늙는다는 건 참으로 서글프고 침울한 일이다.
"친구들이 다 떠나고 이제 우리만 남았다" 시어머니 쓸쓸한 가을 저녁 같은 말씀이 기억난다. 그들과 더불어 시시종종 긴 시간 젊음과 희로애락을 즐기며 나누었고 희망과 추억을 만들어 역사를 이루던 동행들이 하나 둘 다 떠나버린 생은 정말 괴괴하고 적적 함일 것이다.
또한 예측 불가한 남은 그들의 앞날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의지대로 활동은커녕 상실케 하는 자존감으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게도 클 것이며 그 시간들이 길고도 지루할 것이다.
무거운 시간!
노환으로 귀가 먼 시아버지 그래도 요란한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순간적 거슬렸는지 아니면 낯선 아주머니께 자신의 역할과 영역을 빼앗긴 불만이었을까 그는 눈 앞에 놓인 청소기를 평소 그의 짓궂은 농담처럼 발로 슬쩍 밀어 계단으로 떨어뜨렸단다. 이 상황을 눈치로 알아챈 아주머니 처지가 곤란해져 연락처만 남겨두고 떠나셨단다.
집안 청소는 오랫동안 시아버지께서 도맡아 하셨다. 그의 깔끔하고 부지런함은 한시도 앉아 있는 경우 없고 내가 알기로는 우리 중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한다. 그런 그가 이제는 먼지도 얼룩도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그의 빗자루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얼룩이나 흔적들은 그대로 있고 번번이 빠져있는 전화선 티브이 스위치에 애를 먹기도 한다. 그 보다는 그의 철두철미한 정리정돈으로 본의 아니게, 우리를 쓰레기통 서랍, 다락까지 온통 집안을 뒤지도록 끝없이 강요한다. 왜냐하면 정리정돈 후, 외출한 그의 기억이 되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오지 않으면 누가 이 일을 맡을 것인가?로 시작된 아흔 중반을 한걸음 앞에 둔, 아이 같은 두 분의 옥신각신, 시아버지 행동에 불평불만, 근심하는 시어머니 투정까지 다 들어준 A, 결코 웃고 넘기기에 가볍지 못할, 쌓인 무게를 겹겹이 짊어지고 왔다.
이 시간의 무게!
"그 무게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두 분이 함께 계신 자체만으로도 천만다행 의지할 수 있는 힘일 것이다" "침묵, 고독보다 그들의 작은 언쟁은 오히려 존재에 소중하고 필요한 삶의 원동력"이라는 내 위로가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코비 19(코로나 바이러스)는 매양 가던 부모님 댁 방문도 단절시키고, 남편 A는 24시간 일주일 내내 고스란히 내 곁에서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