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의 정원과 민들레

밤의 사냥꾼과 한밤의 동물농장

by 다나 김선자



바람 따라 비가 내린다. 또다닥 뚜닥 후루룩…! 보름째 잦은 변동과 혼란스러운 날씨가 유월 평균 기온에도 적이 못 미치는 날들이다. 며칠 전부터 보일러를 재가동시켰다. 장마철도 아니고 절기상 여름으로 접어드는 이때 해마다 파리와 일드프랑스 지방은 소우가 내리고 기온이 떨어져 늦가을을 연상한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스포츠 경기가 취소되었거나 연기되어 상황이 다르지만 예년 같으면 유월에 홀랑 가호스*가 열린다. 시합 때마다 내리는 비로 인해 경기장을 접었다 폈다 하는 모습을 흔히 보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홀랑 가오스 철이 되면 '이크, 비 오겠네!' 혹은 비가 내리면 '어, 벌써 홀랑 가오스가 시작되었나!'하고 농 같은 진담을 한다.

그런데 올봄에는 축복처럼 날씨가 맑고 화창하여 '유월도 계속해서 날씨가 좋겠는걸?' 했는데 이 말에 마치 반박이라도 하듯이 유월이 되자마자 성긴 소우와 흐린 날이 계속된다.


*홀랑 가오스 (Roland Garros) : 매년 6월에 실시되는 프랑스 세계 테니스 경기, 1918년에 일차 대전에서 전투 비행 조종사로 사망한 그의 이름을 따서 붙였음.


오늘 이야기는 녹턴 (Nocturne, 밤)의 정원과 나의 작은 채마밭 민들레다.

집 정원 한가운데 자리한 텃밭은 위치상 그나마 안정적이고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이다. 그렇다고 햇볕이 하루 종일 든다는 것은 아니다. 아침 햇살은 옆집 호두나무가 막아서고 한낮의 넉넉한 태양은 오후 네시 즈음에 달하면 벌써 반대편 이웃집 우뚝 솟은 보리수나무와 그 너머 포플러 숲에 걸려 쉽게 빠져나오지를 않는다. 유월은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고 해가 높이 뜨서 저녁 여덟 시가 되어야 해거름 이건만 내 남새밭은 어쩔 수 없이 보리수나무 울창한 잎사귀 그늘 아래서 주 35시간 일하는 프랑스인들처럼 일찌감치 하루 일을 마치고 긴 휴식에 들어간다. 따라서 큰 수확을 기대할 수는 없으나 우리 부부의 식탁에 꽤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 주기에는 충분하다.


10평 남짓한 텃밭에는 많은 종류의 것들이 옹기종기 그러나 질서 있게 자라고 있다. 토마토, 가지, 고추, 피망, 호박, 단호박, 오이, 실파, 얼갈이배추, 상치, 고수, 바질릭, 쏘즈, 민트, 딸기 그리고 민들레다. 이렇게 가짓수는 많지만 포기가 적어 적당한 간격을 잘 유지한다. 이 모두는 지난 3월 말경에 자르딜란드(Jardiland : 식물원 이름)에서 사 온 모종을 옮겨 심은 것이지만, 민들레만은 예외로 홀씨가 날아와 스스로 자란 것이다.

초봄에 민들레 새순을 채취해서 먹은 후 잦은 지불레(비가 내린 후 갑자기 해가 뜨며 또다시 소낙비가 내리는 현상)와 이런저런 이유로 정원 잔디 깎기를 늦추었더니 많은 수분과 따스한 햇살을 먹고 민들레가 삽시간에 자라났다. 그리고 얼마 후 정원 바닥에다 온통 노란 양탄자를 깔아 놓더니 어느새 홀씨 되어 둥실둥실 하얗게 유랑하듯 춤추며 하늘에서 한바탕 축제의 도가니를 맞았었다. 비단 우리 정원뿐만이 아니라 양 옆집과 건너집까지 동시에 일장 난리 형국으로. 그렇게 노랗고 하얀 환희가 끝나자 홀씨들은 초연히 부드러운 흙으로 기어들어 나의 채마에서 촘촘하게 지금의 민들레로 뿌리를 내렸다. 여러 해 묵은 뿌리에 새 잎이 돋은 것과는 달리 초년생 어린것이라 유월에도 쓴맛이 거의 없다. 흙이 연하고 살가워 호미로 살짝만 들어 올려도 뿌리째 캐기가 전혀 어렵지 않다. 어차피 다른 채소들의 양분을 위해서 느긋이 그냥 둘 수도 없기에 뿌리가 땅 깊숙이 자리를 잡기 전에 모두 캐내야 했었다. 이렇게 반평 남짓만 캐어도 한 끼 식사에 충분한 량으로 수확한 상치와 함께 쌈을 싸서 먹기도 하고 샐러드를 만들어서 연이어 며칠을 먹고도 남는다. 결국은 민들레 장아찌를 비롯한 김치까지 담았다. 이것은 애당초 내 남새밭 계획에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예기치 않은 야채가 우리 식탁에 기분 좋게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섭리에서 그저 얻는 소소한 기쁨이다.


작은 텃밭은 우리에게 건강한 식거리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있어서는 기분전환의 수단이며, 가볍게 몸을 푸는 운동장이고, 심심풀이하는 놀이터 또한 관찰자의 연구소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 사정과 까닭이 궁금해서 나가 보기도, 작업을 하다 지치면 잠시 허리를 펴고 싶을 때나 신선한 공기를 맞고 싶을 때 멀리 나갈 필요 없이 잠시 잠깐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써 좋다. 또한 시선을 옮겨 생각을 바꾸고 사고 체계를 돌리는데도 금상첨화다. 이렇듯 실내외를 수시로 드나들며 호박꽃은 몇 개가 피었는지, 토마토가 얼마나 맺었는지, 오이는 자랐는지, 배추 새싹이 돋아 났는지, 벌레가 먹었는지 보고 또 본다. 가끔은 나갈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잡초도 뽑아주고 덧 순도 제거하며 하루에도 수차례씩 남새밭 가장자리를 어슬렁 거리면서 내 허리 운동을 한다.

물론 이렇게 다 긍정적인 곳만은 아닌 것이 매일 늦은 밤이슬이 내릴 때면 어김없이 나는 잔인한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상치가 파릇파릇 자라고 딸기가 익어가는 이 무렵에 잦은 비로 인하여 정원에는 달팽이와 민달팽이의 집촌이 되었다. 따라서 채마밭의 여리고 부드러운 채소들은 그들에게 훌륭한 먹거리고 다양한 맛을 제공하는 뷔페식 식당과도 같다. 맛에 민감한 나보다도 더 예리한 미각을 가진 그들을 달리 감당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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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고수와 바질릭 모종을 사다 심은 다음날 아침 절반이 사라졌었다. 처음에는 옮겨심기를 잘못했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중인가? 차가운 기운에, 햇살이 부족해서? (고수와 바질릭은 높고 습한 기온에서 잘 자란다) 등으로 그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 했으며, 애써 자기중심적이고 낙천적인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삼 사일이 지났다. 모종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무렵에 그 문제의 원인이 민달팽이라는 것을 이 단순하고 안일한 관찰자의 시선에 잡혔다. 그날로부터 나는 주저 없이 밤이슬을 맞는 사냥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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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


밤은 사냥꾼에게 엄격하고 축축한 시간이며 관찰자에게 새로운 세계다.

낮에는 미쳐 알지도, 보지도 못한, 알 수도 볼 수도 없었던 것들이 목격된다. 밤은 야생 밤 살이 동물세계로 변한다.


밤 11시경이면 기온이 떨어지고 이슬이 내린다. 민달팽이는 이슬을 먹고 자라는가 싶을 정도 늦은 저녁이면 스페인 사람들같이 무수히 밤 외출을 시작한다. 그동안은 어디에서 몸을 꼭꼭 숨기고 있었는지? 이슬이 내린다는 것은 어떻게도 잘 아는지? 느리고 둔한 걸음이지만 온 몸으로 기어 나온다. 반면 지렁이는 그 동작이 매우 빠르고 민첩하여 나를 섬찟하게 한다. 낮에 땅을 팔 때 자주 목격했던 지렁이와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굉장한 굵기와 길이에 웬만한 어린 뱀을 보는 것 같아 나 스스로 지레 놀랜다. 그리고 낮에 보았던 소극적인 태도와는 전혀 다른 저항력도 있다. 내 발자국이 스칠 때면 기다란 물부리를 빨아올리듯 쪼르륵 땅으로 미끄러지며 빨려 들어 잽싸게 몸을 숨긴다.

지네는 열대나 아열대 지역에서나 있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 놓기도 했다. 다행히도 남태평양 푸투나 섬에서 보았던 크기의 것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리고 불나방, 다리가 무척 긴 거미, 각종 이름을 모르는 야행성 벌레들까지…


무엇보다 특별한 동물은 두꺼비와 고슴도치다. 몇 년 전부터 옆집과 우리 집을 오가며 사는 고슴도치와 두꺼비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쭈글거리고 두꺼운 짙은 회갈색 표피에 젊다고 볼 수 없는, 오히려 꽤 늙은 두꺼비가 하도 귀엽고 애처로워 남편이 <두두>라고 이름 지었다. 가뭄이 길어지고 낮이 긴 어느 여름날 초저녁 같은 밤에 목이 말랐는지 두두는 테라스 수돗가에 나타나더니, 며칠 후에는 베란다에 벗어둔 모자 밑에서 쉬고 있는걸 남편이 발견하여 숲이 된 정원 끝자락에 데려다 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고슴도치는 가족을 이루어 저녁마다 나와 마주친다. 내 사냥 시간이면 그들도 틀림없이 외출을 한다. 몇 년 전에는 독신으로 한 마리만 사는구나 했는데, 며칠 전에는 한쌍이 나타나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더니 지난밤에는 세 마리를 보았다. 그동안 가족을 이루었나?


양파 쪽을 심고, 밤사이 몇 군데 움푹 흙이 파여 있어 이상하다 했는데, 결국 그 자리에 양파는 싹을 틔우지 않았다. 그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고슴도치의 짓이지 않을까 하고 추측케 한다. 처음에 나와 마주치던 날은 두려워서인지 생소해서인지 먼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주저하며 경계태세로 슬그머니 지나갔는데, 이제는 내가 있어도 그다지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설마 나를 움직이는 허수아비로 보는 건 아닐 테지? 다만 내가 의도적으로 전등불을 비추고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면 움찔 몸을 정지하더니 그 특유의 수비 태세로 등에 난 바늘을 꼿꼿이 세우고 네 발을 목으로 힘껏 잡아당겨 움츠려 동그랗게 몸을 만들어 꼼짝 않는 것이다.


어젯밤, 고슴도치 한 마리가 오른쪽 옆집 철망 울타리 구멍을 빠져나와 우리 집을 거쳐 왼쪽 옆집으로 갔는데, 잠시 후 또 다른 두 마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게 나타나 <뒤뚱뒤뚱> 좌우로 몸을 마구 흔들며 나의 채소밭으로 들어가려 한다. '이크~~ 안돼!' 하고 나는 사정없이 전등불을 비추어 '멈춰!' '저리 가~'라고 했더니 불빛을 받자마자 한 마리가 즉각 멈칫 방어태세로 들어서고, 몸집이 약간 더 큰 다른 한 마리는 다소 무안한 표정으로 주춤하더니 불빛에 고정된 눈을 초롱초롱 반짝거린다. 아름답기조차 하다. 아니 눈을 뜬 채 방어가 아닌 가만히 멈추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게 잠시, 전등불을 무자비하게 사영한 지 몇 초가 지났을까 몸집 큰 한 마리가 슬그머니 돌아서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몇 자국 움직이는가 했는데, 갑자기 공 같은 몸이 빙그레 작은 원을 그리며 회전하여 되돌아온다. 그리고는 옴나위가 없이 웅크려있는 단짝에게 자신의 몸을 살짝 가져다가 부드럽게 비빈다. 애정 어린 따뜻한 애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짝은 어떠한 반응도 않고 겁에 질린 채 여전히 방어태세다. 그러자 그 동그란 몸을 돌려 또다시 뒤뚱거리며 혼자서 몇 걸음 옮긴다. 뒤따라 오리라 생각했겠지만 따라갈 생각은커녕 여전히 경직된 상태로 아무 반응 없는 짝을 두고 혼자 갈 수 없으니, 얼마 가지도 않아 재차 원을 그리듯 돌아와서는 살며시 단짝에게 자신의 몸을 갖다가 꼭 붙이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모습 앞에서 이제는 내가 자리를 비껴줘야 할 때다. 나는 전등 빛을 가리고 다소 멀리 물러섰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쿡쿡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희미해지는 소리와 함께 한쌍의 고슴도치는 어둠 속 숲으로 사라졌다.


herisson-3-091815.jpg 고슴도치


고수는 새순이 돋아서 한 뼘으로 자랐고, 절반만 남아 허약한 바질릭은 새 잎보다는 꽃을 먼저 피우려 한다.


성기게 내리는 비로 축축하고 젖은 땅 잔디 깎기를 또 미루었더니, 포근한 날씨에 수분까지 흡수하여 쑥쑥 자라난 잔디 풀과 잡초가 발목까지 닿는다. 전등 빛에 반사된 젖은 풀잎과 죽은 잎사귀마저 흡사 민달팽이를 닮아 내 흐릿한 밤 눈에 자주 착각을 일으킨다. 내 집중이 너무 과했나 보다! 그들에게는 숲이나 다름없을 풀잎들, 그 사이로 몸을 숨기기에는 아주 그만이지. 따라서 내 밤 사냥도 점점 어려워진다. 분명한 건 눈을 더 크게 뜨고 찾아야 하는 사냥꾼의 고초와 난이도가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서둘러 잔디 깎기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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