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데쉬(l'Ardèche) 고장에서
이열치열!
더위를 쫓아 프랑스 남쪽 아르데쉬(Ardèche) 지방에 왔다. 무려 해발 1000미터에서 낮 최고 41도의 기온은 사하라 사막을 방불케 하는 높은 온도다. 몇십 년 만의 신기록이라 한다. 프랑스 여름 날씨는 고온 건조하여 햇살은 작열하게 뜨겁지만 그늘은 시원하다. 대체로 선풍기나 에어컨은 필요가 없다. 하지만 오늘 같은 예상치 못한 폭음이 불청객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에어컨이 보편화되지 않은 파리의 아파트에서는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는 이들도 또는 2003년 여름 어느 날의 혹서 때처럼 노인 사망자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 날이다. 다행히도 에어컨이 작동 잘 되는 자동차 안에서 우리는 더위를 잊고 산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길가에는 노랗고 하얀 보랏빛 연보라색 각양각색 만발한 들꽃이 난만하고 산등성이마다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계곡 쪽으로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저녁 햇살에 반사된 밤꽃들은 흡사 하늘에서 쏟아진 별들이 살포시 숲 끄트머리 내려앉아 탐스럽게 웃고 있는 듯, 아니면 칠월 십 사일 밤하늘 프랑스혁명일을 기념하는 서양 겨자색 폭죽들이 와자작하게 마구 터지고 있는 듯도 하다. 굽이진 등선을 돌 때마다 밤꿀 향기가 지천으로 풍겨온다. 율목의 고장이다. 밤나무와, 도토리나무, 얇은 석회석 편암을 얹은 지붕과 돌담집들 그리고 길 어귀마다 소박하게 서 있는 십자가가 자주 보인다. 아마도 우리가 세벤느(Cévennes) 어느 지점을 지나가고 있다는 직감이다.
프랑스 루이 14세 때 까미자르 전쟁 <guerre des Camisards>*에서 박해받은 기독교인들은 세벤느(les Cévennes)에서도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정착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그 이후 기독교인과 가톨릭인들끼리 적대시하는 경향이 생겨나 서로 간의 마을도 구별 져 있다.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폐쇄적 성향을 드러내어 프랑스인들에 대한 비호의적인 태도가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같이 세벤느는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을 강하게 가진 곳이다.
*카미자르 전쟁(guerre des Camisards): 또는 세벤느 전쟁(guerre des Cévennes)이라고도 부른다. 루이 14세는 1685년에 낭트 칙령(기독교 일부 허용) 해지와 기독교 금지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세벤느에 사는 기독교 농민들의 거센 반발로 유발된 전쟁이다.
완만하게 경사진 등선으로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여기저기 다양한 성격을 띤 까만 바윗돌이 듬성듬성 솟아있는 경관은 지루함이 없다. 그 사이로 방실대는 샛노란 금작화(genêts) 꽃들을 배경 삼아 감미로운 석양 아래서 어슬렁거리며 노니는 연분홍빛 소떼들, 딸그랑 거리는 방울소리도 평화롭다. 몇몇은 입가에 뿌연 거품을 문 채 열심히 고개 숙여 풀을 뜯고 있다.
산허리를 기듯이 한참을 더 오르니, 위로만 한없이 곧게 뻗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나온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에 아직 이른 시간이건만 양쪽 숲 속으로 암흑 같은 어둠이 깔려서 눈앞에는 좁다란 길만이 어렴풋이 열려있다. 어둠과 대조되어 다가오는 하얀 풀꽃들이 길 가장자리에서 흰 경계선을 그으며 굽이진다. 마치 시퀀스로 재빠른 영상처럼 달아난다. 긴 여행에 지친 몸도 좌우 요란하게 흔들거리는 상체도 이 아름다운 영상에 현혹되어 나선형 리듬 속에 고스란히 맡기고 계속해서 달리다 보니 <세벤느 국립공원, Parc national des Cévennes>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짐작대로 우리는 아르데쉬(Ardèche) 지방의 세벤느(Cévennes)에 와 닿아 있다. 다시 반경을 돌아서 내리막길로 달려 몇 개의 산골마을을 거쳤다. 아직 골짜기 쪽으로 향해서 몇십 분을 더 내달려야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같은 산골에서 조금씩 성급해지는 마음. 약속시간에 맞춰 도달할 수 있을까?
이렇게 달리는 동안에도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은커녕 자동차 한 대 보이지 않는다.
"레 세벤느, Les Cévennes"는 아르데쉬(Ardèche) 지방과 에로(Hérault) 지방의 원천들 사이에서 지중해(Méditerranée)의 측면과 마쉽프 샹트랄(Massif Central)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편암과 화강암의 나라다. 아름답거나 마법의 숲, 야성적이며 너그러운 동시에 이 모두가 짧게 깎아진 풍경은 인간의 손에서 완전하게 재 데생한 것이다. 거기에는 곡식들과 뽕밭들, 포도 재배를 위하여 정돈된 테라스를 창조했다 (…) 그리고 석회암으로 이은 지붕, 때로는 화강암, 때로는 편암의 주거형태가 이처럼 주변에 혼재하다. 기복이 심한, 산들과, 헤아릴 수 없는 그러나 계곡들은 친밀하고 내밀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자연적인 안식처다." 마리 듀향(Marie Durand)은 세벤느를 이렇듯 잘 묘사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세벤느는 아르데쉬 고장보다는 남쪽 가르(Gard) 지방을 잇는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DEA(박사 준비과정) 논문을 준비하던 여름날, 내 갑상선 기능 저하가 재발되어 건강이 현저히 나빠진 탓에 논문 작성은 뒷전으로 밀쳐 두고 A 제안을 받아, 나는 그를 따라 세벤느로 떠났다. 우리가 결혼하기 전이었다. 세벤느 사는 그의 오랜 친구 자크와 클로드 부부의 돌집에서 우리들은 함께 바캉스를 보내었다. 그때 A는 나에게 세벤느에 얽힌 많은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자연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선사시대 유적지와 여름밤 축제가 열리는 아름다운 작은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나는 프랑스인의 삶 깊숙이 들어가 경험하고 체험했었다. 또한 산행을 비롯한 걷기와 강에서의 수영, 카누에 타기 등으로 그들처럼 나도 바캉스를 즐기는 행운을 갖었었다.
세벤느로 가기 전날 A는 내게 이렇게도 말했다. "세벤느에 가면, 너 또한 그곳을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 왜냐면 한국 지형을 많이 닮은 곳이거던..." 그렇다. 세벤느는 알프스나 피레네처럼 높지 않고 완만하나 깊숙하고 굽이진 수많은 구릉과 능선에 강과 계곡으로 이같이 요철 된, 마리 듀향의 표현대로 '야성적'이지만 어머니 품 같이 너그러운 그리고 편암이 많지만 한국처럼 화강암도 편재하는 곳이다.
칠흑 같은 밤, 우리는 인기척이 끊어진 산길 흙바닥에 드러누워 감히 도시에서 찾아볼 수 없게도 찬란히 빛나는 별들을 한참 동안 그렇게 바라보았다.
흙먼지가 묻을까? 벌레라도 기어들까? 맨바닥에 눕는 걸 거절하는 나에게 "그럼, 내 배 위에 누을래?" 기꺼이 자신을 내주는 A, 미안해서 주저하자 서슴없이 "난 괜찮아, 너 전혀 무겁지 않거든" 우리는 그렇게 복층을 만들어 반듯하게 누워서 여러 별자리를 찾기도 했었다. 그는 내 팔을 잡고 긴 손잡이가 달린 큰 서양 냄비(큰 국자) 또는 큰 곰자리라고도 부르는 북두칠성을 가리켜 보이기도 했었지. 또한 빠르게 떨어지는 유성을 따라 "여기에, 저기도" 나지막이 환호성을 지르며 우리는 부지런히 눈동자를 굴려서 찾고 또 쫓았다. 네 개의 팔을 휘저어가면서 그 수를 헤아리기도 누구의 것이 더 크고 빛나는지 비교하기도 했었다. 그해 팔월의 밤에는 별똥별이 참으로 많았다.
그 이후 삼사 년을 이어서 여름 바캉스마다 우리는 세벤느를 찾았다. 어느 해에 파리로 돌아오던 날, A는 자동차를 우회하여 아르데쉬 지방의 선사시대 유명한 <발롱 아치형 다리, Vallon Pont d’Arc>를 내게 보여주었다. 오늘 우리가 달리는 주 목적지도 이 자연적인 소산 <발롱 아치형 다리, Vallon Pont d’Arc>가 있는 <아르데쉬 협곡, gorges de l'Ardèche>이다.
곳곳에서 프랑스 남쪽 (midi) 분위기가 물씬 난다.
지리적으로 깊숙이 자리한 전형적인 작은 시골마을 이정표를 따라서 지나는 곳마다 발길이 적어 조용하고 평화롭다. 다행히도 아직 본격적인 바캉스철은 아닌 듯하다. 어느새 우리는 소도시 라르졍띠에르(Largentière)에 도착한다. 우리의 종착지에 거의 다 달았음을 뜻한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이곳에서 식료품 장을 봐야 한다고 들었다. 라르졍띠에르시는 현재 지역 경시청(sous-préfecture)이 있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 작은 그야말로 시골 소도시다. 하지만 중세 때는 은화를 만드는 납의 생산지로 화려했었던 중심도시였다고 한다. 도시 규모가 현재 시각으로 보아서는 작으나 건축물의 구조나 형태에서 그때의 풍요로움을 엿볼 수 있다. 강기슭에서 구릉을 따라 테라스식으로 건축된 도시는 언덕바지 서 있는 성당을 비롯하여 높은 돌집들과 등성마루 우뚝 선 고성이 보인다. 도시를 둘러싼 성곽은 세월을 덧입고 중세도시 특유의 미로 같이 좁은 골목길에 돌계단 그리고 아치형 대문과 작은 창문들이 아직도 운치 있는 마을로써의 매력을 뿜어낸다. 우리는 라르졍띠에르에서 다리를 지나 건너편 언덕으로 다시 올라간다. 해발 약 300미터에 우리의 숙소가 있는 아주 작은 옛 도시 몽트레알(Montréal)이다. 마을 중심지에 이르니 사방으로 전망이 확 트여 전형적인 시골의 향취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래로는 라르졍띠에르가 보이고 저 멀리 아르데쉬(Ardèche) 지방이 드넓게 투시도를 펼친다.
오전 10시에 집을 나서 내달린 지 10시간 만에 도착한 몽트레알(Montréal). 조용하고 아늑한 시골 풍경에 결코 지겹지 않은 여정이었으나 몸은 어지간히 지쳐있다.
마을 중심지 공터에는 세월을 느끼게 하는 키 큰 플라타너스가 널따랗게 그늘을 만들어 지친 여행자의 몸을 식혀주고 긴 가지를 자유로이 늘어뜨려 우리를 반가이 끌어안는다. 라르졍띠에르 보다 더 작은 마을 몽트레알은 중세 때 납 생산지였던 라르졍띠에르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이중적 방어태세로 만들어진 위성도시다. 중세부터 르네상스 형식에 이르기까지 작은 성을 비롯한 돌집들이 기하학적으로 이루어져 겉에서는 그 안의 형태를 감지할 수가 없을 정도 오목조목 아기자기하다.
집주인 대리인 소피가 아르데쉬에서 생산된 적포도주 한 병을 안고 집에서 만들었다는 작은 병에 든 무화과 잼과 시원한 물병을 들고 와서 돌집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자동차가 진입할 수 없는 비좁은 골목에 아치형 건물을 지나 대문 앞에 이르니 꽃이 지고 없는 붓꽃과 선인장, 진분홍 서양 채송화가 돌담들 사이에서 축 늘어져 더위를 식히고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파란색, 분홍색 수국들이 친절한 소피와 닮아 함박미소 짓는다. 바닥에서 뒹굴며 노닐던 까맣게 익은 무화과들, 올리브 열매와 포도는 푸르게도 잘 매달려 있다. 마당 한편에서는 시프레(cyprès) 나무가 돌벽에 기대어 침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이층으로 된 돌담집은 옛 구조와 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채 부분적 복원되었고 내부는 현대식으로 꾸며져 편리한 살림살이가 부족함 없게 모든 것이 깔끔하게 갖추어져 있다. 남쪽(미디, midi)의 풍성한 햇살과 더불어 미디 태생인 소피는 물러가고 우리도 짐을 풀었다. 긴 노정에 긴장된 몸을 풀고 가벼운 차림새로 갈아입은 후, 우리는 포도주가 아닌 얼음을 동동 띄운 우조(ouzo, 그리스 술) 잔을 마주 놓고 마당의 탁자에 앉았다. 더위에 지친 돌집과 그 외 모두가 우리를 지그시 보듬으며 환영한다. 우리도 그들을 위해, 우리의 바캉스를 위해, 미디를, 아르데쉬와 몽트레알을 위하여, 또한 그 모든 것을 위해 축배를 들었다. 돌담집 마당의 하늘에서 미디(midi)의 희미한 초승달이 크게 미소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