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공사 중
몽모홍시 벨뷰(Bellevue:아름다운 전망) 아파트에 세 들어 산지가 벌써 한 달, 두 달 반 계약을 했는데 어쩜 연장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파트에서 자고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날마다 오반을 준비하러 공사판이 된 그홀레 집으로 향한다. 점심은 여전히 우리 집에서 먹는다. 평소에 생필품을 사거나 산책 삼아 다닌 노정이 출근길이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돌담길을 매일같이 걸어서 간다.
이 인정스런 오솔길은 무례하게 넓거나 인색할 만큼 협소한 너비가 아니라 양방 오가는 사람들과 부딪칠 염려 없고, 요즘같이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시기에도 적당한 간격을 유지할 수 있어 서로에게 폐단도 없다. 또한 양쪽 헤지당스(résidence, 낮은 층수의 아파트) 공원에는 종탑처럼 솟아오른 큰 나무들과 돌담길 위로 우거진 가지들이 돔(dome) 지붕마냥 하늘을 가리고 있어 그야말로 대성당 안을 걷는 듯하다.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덕택에 오늘같이 한여름 따갑게 내리쬐는 뙤약볕을 피할 수 있을뿐더러, 세우나 는개를 피하기에도 손색없다. 더구나 매끈한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길이 아니라서 한량없이 정겹다. 자갈 모래흙으로 된 땅은 겨울 우기철 질척거리지 않아 산책길로서도 그만이지만, 차량을 피해 몽모홍시 중심가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이렇게 겨우 삼백 미터쯤 거리를 걸을 때마다 매 순간 색다른 감흥으로 젖어들면서 사철 다양한 모습 따라 느끼는 심상도 다르다. 특히 겨울철 돌담 사이 파릇파릇 생기롭게 자란 이끼들과 가을철 넙적한 플라타너스와 마로니에 이파리가 떨어져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 겹겹 쌓인 길을 걷을 때는 레드카펫을 걷는 행운도 만난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좋아 일부러 발길 짓을 몰아쳐 걷노라면 바삭바삭 내 걸음에 뒤엉켜 달아나는 낙엽들. 내 귓전에서 경쾌하고 간결한 아름다운 곡조가 되기도, 가슴속 치밀어 오르는 감정은 글월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또한 초봄의 보드라운 여린 새순과 여름철 녹음은 그 웅장함이 대성당에 걸러있는 한 폭의 엘 그레코(El Greco) 그림을 연상케도 한다.
이 산책길에는 항상 남편과 둘이서 걷다가 요즘 들어 나 혼자 걷는 날이 많아지자 마치 새로운 감정들로 솟구쳐 천천히 음미하며 사색에 잠겨 걸어간다.
하루는 팔월의 아침나절 햇살이 유난히 좋은 날, 땡볕을 피해 가며 부지런히 오르막을 걸어서 골목 어귀 그늘 아래 닿았는데, 나무 잎사귀에 부서져서 쏟아져 내린 햇살이 눈부시게도 해맑고 아름다워 빛나는 환희와 희망처럼 와 닿았다. 흡사 긴 돌담길을 따라 내 달리는 흰 얼룩말을 보는 듯도.
혼자이기에 가능한 이 감정을 오래오래 담아 두고 싶어 때마침 들고 있던 테블리 피시를 꺼내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어찌 실제와 비교를 할 수 있겠는가? 여러 장을 연달아 찍었으나 도무지 그 감정만은 온전하게 실지를 못했다. 대신 내 가슴에다 꼭 담았다.
남쪽 테라스 확장과 동시에 다락같이 낮은 이층 천정을 높이는 지붕 교체와 실내 장식 공사를 시작하여 방이 없어진 우리는 집을 떠나 이웃 동네 벨뷰 아파트 지붕 밑 오층에 세를 들었다.
몽모홍시(Montmorency) 중심가, 이십여 년 동안 바게트(길쭉한 빵)를 사러 정육점과 과일, 채소가게, 슈퍼마켓 그리고 약국이나 치과, 혈액검진, 우체국 등 수시로 드나들던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권이지만 거주자가 되기는 처음이다. 불과 걸어서 20분 남짓한 거리지만 사는 것과 들리는 것에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산다는 것은 단순히 스쳐 지나는 방문객이 아니라 소속되어 밀착된 일체감을 가지는 주거인이 된다는 것이다.
고작해야 한 마을이나 다를 바 없는 옆 동네로 몸만 옮겼을 뿐인데 마치 바캉스를 즐기는 기분마저 든다. 아니 그런 마음으로 호기를 누리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십 년간 살면서 처음으로 남들처럼 몽모홍시 중심가 카페 르 세발 블랑(le cheval blanc, 흰 말)에 앉아서 백포도주 마시는 여유도 누렸다. 옆에 붙어있는 르 디스크 블루( le disque bleu, 담배 이름)에서 빠스띠스(pastis)도 마셨다. 다음에는 다른 카페까지 들러 볼 생각이다.
몽모홍시 이 작은 광장에는 카페가 다섯 군데나 있다. 그만큼 찾는 손님이 많다는 뜻이고 언제 보아도 그렇게 느껴진다. 오늘날 현대화 물결로 파리 근교 작은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드문 전형적인 프랑스 전통 마을 분위기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뒤섞여 빈부격차 크게 두지 않고 어울려진 모습은 매우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워서 아름답다. 따라서 일상적 삶의 생동감이 있다. 상점이 문을 닫는 일요일 오후부터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들이 활기차며, 노 시장이 들어서는 일요일 아침은 생기가 넘쳐 발랄하다.
세든 우리 아파트에서 동남쪽으로 이 광장이 내려다 보이며 그 너머 멀찍이 파리 에펠탑, 몽파르나스 고층건물, 새 법원이 모형 같아 보인다. 남서쪽으로는 시원스럽게 일 드 프랑스가 펼쳐져 있다. 그 가운데 히뽀드홈 덩강 경마장(Hippodrome d'Enghien:엉강 경마장)도 가까이서 눈 안에 들어온다. 이렇게 펼쳐진 분지를 바라보면서 나는 우리가 몇 년간 바캉스를 보냈던 그리스의 뿔리트라 마을에 앉아 있노라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저 기다란 센 강 유역 푸른 자줏빛 지평선이 반사광으로 말미암아 수평선으로 하물며 그리스 바다 같은 착각도 일으킨다.
자유로운 생각에서 꿈이 있고 상상 속 떠오른 즐거운 환영은 힘들었던 하루의 위안을 안겨 주기도 씻어내리기도 한다. 무심함은 휴식이고 삶의 힘도 된다.
우리의 저녁은 아름다운 전망이 보이는 식탁에 앉아서 저 멀리 지나가는 열차를 바라보기도, 목요일 저녁 경마장이 열리는 날은 우주선 같은 휘황찬란한 불빛을 보고 망원경을 꺼내 들기도, 하늘의 구름이 몰려왔다 가는 형상에 창문을 닫을까 말까 중얼거리기도, 저녁놀이 붉게 물드는 시간 아뻬로를 마시며 가로등이 하나둘 켜 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하루의 피로를 씻기도 한다.
금요일 저녁은 맞은편 시나고그(synagogue; 유대교 회당)에 예배하러 가는 유대인들 모습을 지켜보기도 또는 장이 서는 날 오전, 수요장과 일요장을 비교하며 그 규모나 차이에 어린 호기심이 발동하여 과연 장바구니 든 사람들이 얼마나 몰려드나 그 수를 살펴도 본다. 이 모든 대수롭지 않은 소재가 우리의 대화 속에서 잔잔히 녹아든다. 마치 파한처럼.
집 공사란 크든 작든 힘든 일이다. 세간살이를 몽땅 엉성하게 쌓아 둔 거나 다름없이 대공사가 시작되었으니 얼마간 고생스럽더라도 현실을 인정하고 어차피 익숙되어야 한다. 사실 일이 두려워 수년 동안 미루적 미루적거리다 차라리 이사를 갈까고 매매 나온 집들을 둘러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집은 찾지 못했다.
결국은 '3개월가량 고생해서 남은 생을 편안히 살자' 그리고 또한 '시작이 느리면 늦어진 만큼 안락한 시간도 줄어든다' 생각하여 스스로를 격려했다. '십 년 투자해서 30년 미래를 더 잘 살아보자'며 담대한 마음으로 내 편하고 쉬운 보금자리를 남겨두고 프랑스 유학을 결정했을 때와 같은 각오였다. 주문 같은 내 안의 다짐으로 용기를 고무시켰다. 그리고 여행 온 기분으로 저녁나절 잠시라도, 최대한 호기회 삼자고, 남편과의 단합도 있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고취시키는 방법과 지혜로써.
오늘도 나는 몽모홍시에서 그홀레로, 우리 집에서 세든 아파트로 출퇴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