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공사를 하면서 떠올린 '무소유'

4. 공사 일지

by 다나 김선자



이천이십 년 팔월 삼십일일

살롱 공사를 위해 열 평 남짓한 공간을 완전히 비웠다. 미술서적 일부와 깨지기 쉬운 도자기들은 싸서 차곡차곡 박스에 넣고 나머지 책들은 옮긴 책장에다 양면으로 그대로 갖다 꽂았다. 그리고 책장 전체를 비닐로 감싸 덮었다. 이삿짐처럼 모두 박스로 포장할 시간이나 에너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먼지로부터 취약하나 어쩔 수 없이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을 택했다.

짐을 모두 끄집어내 놓으니 산더미 같다. 이 조그만 공간에 들어앉았던 것들이 뜻밖에도 많다는데 놀랍다. 짐을 다 옮기고 나자 텅 빈 썰렁한 공간은 짐이 들어차 있을 때보다 더 좁아 보인다. 분명 착시현상이다. 내가 걸을 때마다 마룻바닥은 헐겁다고 쓸쓸히 메아리친다. 그동안 한쪽 긴 벽면을 차지했던 수많은 책들이 그 안의 사연들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우리 살롱에는 고급은커녕 가구 자체가 많지는 않다. 오로지 책과 도자기, 그림들 그리고 각국을 여행하면서 들고 온 소품이 대부분이다.

결혼 전 당시,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가진 재산은 책과 여행이 전부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성년이 된 남편은 독립하여 아프가니스탄으로 첫 배낭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여러 나라의 수많은 도시를 오가며 여행을 했었다. 결혼 전에는 여름 바캉스 때마다 한 두 달씩 배낭 하나로 아예 여행지에서 살다시피 했었단다. 특히 십여 년간 연속적으로 아시아 여행을 즐기던 그는 한국인 나보다도 동양의 문화와 나라에 관한 지식과 정보가 더 많았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내가 아시아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창피스럽게 여긴 적도 있었다. 그렇게 여러 곳을 다니면서 하나 둘 들고 온 것들이 우리 살림의 일부를 차지한다. 이 소박하나 풍요로운 살롱의 소장품에는 남편이 여행한 나라들이, 그의 세계가 그리고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책은 우리 살림살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짐이 더 이상 늘어나는 걸 방지하는 차원에서 베스트셀러나 일반 소설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사지 않은지가 이미 몇 년 되었다. 수시로 선별해서 치우기도 했지만, 아직은 버릴 수 없는 서적도 많다.

책을 좋아하는 남편은 책과 함께 휴식한다. 나는 책 속에 빠져있는 그에게 가끔 질투심이 생겨 "당신 곁에는 책이 있는데 왜 나랑 결혼했어"라며 유치하고 어이없는 표현을 일삼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그를 더 존중하고 사랑한다.

살롱을 비우기 위해 짐 정리를 하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은 바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다. 살림살이가 많을수록 정리 정돈도 힘들다. 평소 다양하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물건이 차지하고 있으면 불편하다. 더구나 많은 가구나 물품으로 좁아진 공간은 내 사고를 옹졸하게도 만든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채울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순간 내가 다짐한 것은 '이제부터 물건을 집안에 들이기보다 밖으로 더 많이 내보내자. 쌓아두기보다는 버리자. 최대한 간소한 살림을 꾸리자'라고. 버릴 줄 알아야 나눌 수도 있는 것이다. 소박한 공간은 마음의 여유로움을 주고 비물질적 검소한 삶은 내 정신을 맑고 풍부하게도 한다.

사실 오래된 것들을 제대로 사용도 않으면서 쌓아놓고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혹시나 나중에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추억이 담긴 것인데 어떻게 버려? 버리고 후회하면 어쩌지?라고 미련 같은 여러 이유나 마음가짐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도 이번 공사에서 그 활용에 효용을 톡톡히 경험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너무 긴 시간 동안 흉측한 모습으로 불편하게 자리를 차지했던 보상일 뿐, 더도 덜도 아니었다.

"두 사람이 여행가방 두 개로 일 년을 살았는데..."라던 동창 언니의 말처럼, 없으면 또 없는 대로 살아가는 방책이나 대책도 마련되는 법이다.

나는 쇼핑하는 취미도 없고 소비 주의자는 더욱 아니다. 물질적 유혹이 아주 없지는 않으나 크지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구태여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충동적으로 사는 경우는 극히 희박하다. 꼭 필요하다면 이왕에 질 좋은 것을 사서 오래 간직하자는 주의이며, 살 능력이 안될 때는 대체로 참고 기다리거나 과도한 요구의 유혹에 빠지기 전에 애착을 떨쳐버려 지혜롭게 잊어버린다. 무엇보다 예산에 맞춰 값을 따져 물건을 고르고 사야 하는 수고 자체가 피곤하며 시간낭비라고도 생각한다. 또한 물건들이 자리를 점령하여 온기보다 짐이 되는 건 무엇보다 싫다. 짐들은 무거운 삶으로 내 작고 연약한 어깨를 누르는듯하여 도리어 힘겹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내 놓으니 의외로 많다. 공사가 끝나면 대대적으로 버려야겠다.




프랑스에서는 각 지역마다 매달 일회 날짜가 다르게 집안에서 장소만 차지하고 성가신 잡동사니 고물들을 대문 앞에 꺼내 놓으면 시에서 수거하는 날이 있다. 이때 가정에서는 다락에 잠들고 있던 묵은 것들, 창고에서 외톨이로 지내던 것들을 정리하는 대청소 날이기도 하다. 이렇게 집 밖으로 나온 쓸만한 물품들은 다음날 새벽 수거 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금방 사라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낡은 물건을 고쳐서 되파는 직업적인 사람이나 생계 수단으로 삼는 프랑스 집시들, 또는 동유럽 나라에서 원정 온 짐차들이 대다수 거두어간다. 이들은 지역마다 수거일을 용케도 알아맞혀 정기적으로 때로는 하루 저녁 한동네를 두세 바퀴씩 돌아다닌다. 물론 지나가던 이웃이나 행인이 소용에 따라 주워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다. 부유층 동네에서는 물건의 성질, 상태, 기능이 꽤나 양호하고 흥미로운 것들이 자주 나오기도 한단다. 때마침 수거 날을 하루 앞두고 내가 들고 나온 플라스틱 반찬통을 보고서 지나던 프랑스 젊은 집시부부는 대문 안에 있던 고장 난 식기세척기까지 모두 원한다. 그들의 눈은 예리하다. 그리고 공사판에서 나온 전기선도 몽땅 챙겨갔다. 덕분에 우리 마음도 한결 가볍다.

나에게는 짐스럽고 귀찮은 물품이지만 누군가에게 사용 가능하여 재활용이 된다면 그 역시 유익한 일이다. 아무리 거추장스러운 물건일지라도 필요한 누군가에게 유용한 관심거리라면, 이 또한 얼마나 보람된 시스템인가? 그러므로 버리는 사람도 오직 허무 망상하지만은 않으니 환경적으로나 도덕적 또는 정신적으로도 작은 위안을 삼지 않겠는가?

이렇게 수거한 물건은 직업인들의 손을 거쳐 깨끗이 잘 수선되어 가끔 고품 시장에서 싼값으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기도 한다. 프랑스인들은 고풍스러운 옛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 지역마다 골동품 가게나 고물 상점도 흔히 목격된다. 그리고 파리에는 유명한 관광지가 된 고가구 고물 시장도 있는가 하면 각 시마다 계절 따라 고물 시장이 마을행사처럼 열리기도 한다. 가을이 접어들자 내가 사는 이곳에도 브로깡뜨(brocante:고물상, 골동품상) 장이 곧 설 것이다고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이천이십 년 구월 일일

몽모홍시 광장에는 바캉스에서 돌아온 시민들로 다시 북적인다. 그들은 카페테라스에 앉아서 햇볕에 잘 태운 갈색 피부를 자랑스럽게 드러내 끝나버린 바캉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떠나려는 여름 끝자락을 아쉽게 붙들고 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지나가다가 언제쯤 나도 저렇게 한가로이 앉아 있을 날이 오려나? 하는 생각에 부럽기까지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공사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편처럼 관리 감독을 맡아 현장에 줄곧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남편을 위해 그리고 내가 먹기 위해 점심 한 끼 잘 차리는 것뿐이지만, 공사 중에 때때로 선택과 결정을 함께해야 하는 어렵고 민감한 순간들과 갈등의 시간이 있으므로 긴장된 복잡한 머릿속은 안정이 안된다. 가령 전기 스위치나 코드 위치와 개수, 타일 색이나 모양, 하물며 여러 사소한 부분까지도 내부 장식에서는 여자들의 의견을 수렴, 반영하여 결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집 공사라는 게 이토록 우리의 조용했던 삶을 온통 장악한다.

요즘 들어 두연히 드는 생각은 계절이 바뀌는 이때를 집 공사 때문에 맘껏 음미하지 못하고 지나는 것 같아 무척이나 아쉽다. 나도 카페에 앉은 사람들처럼 단정한 외출복으로 차려입고, 파리 시내 나가서 예전처럼 소로본 광장에 있는 파시오의 열린 카페 창가에 앉아 피자도 먹고, 룩셈부르 공원을 걸으며 말라가는 마로니에 잎사귀를 쳐다보면서 가을을 음미하고도 싶다. 또는 편안한 마음으로 생-딴느(Saint-Anne) 거리에 있는 일본 식당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 먹고 루브르 미술관으로 달려가 명화들 사이를 천천히 돌며 감상하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남편과 여유롭게 숲 속을 산책하며 알밤도 줍고 싶다. 이 모든 것이 안타깝게도 올해는 나와 함께 가까이하지 못한다. '인생살이 다 가질 수는 없다'(on ne peut pas tout avoir)는 프랑스에서 보편적으로 자주 사용되나 명언 같은 문장이 유언처럼 떠오른다.

우리는 부족하나마 일요일 점심마다 세든 전망 좋은 아파트에서 일찍 감치 적포도주 병마개를 따놓고 피자를 굽기도 한다. 또는 평일 오후 나절에는 나 혼자 아파트와 집을 오가는 길목에서 담장 너머 떨어진 어느 집 노와젯뜨(noisette:개암 열매, 헤이즐넛)를 주워 호주머니 속에 넣고 만지작거리며 햇살을 품어 오기도, 청명한 파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다보고 '하늘이 이렇게나 높다니, 오, 가을이구나!'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빗금 난 그늘을 밟으며 오는 게 내 유일한 가을맞이다.

작업을 손에서 놓은지도 몇 달, 앞으로 또 몇 달, 올해의 절반은 집 공사에다 전념하는 해가 되었다. 벌써부터 나는 내 작업실로 돌아가 작업과 더불어 사색도, 고민도, 괴로움도, 외로움도 하루빨리 거기, 내 자리에서 가지고 싶어 진다. 우리 집에서... 그리고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불 지펴 고기를 굽고 바깥 식탁에서 포도주를 잔에 따르며 점심식사를 즐기던 내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그렇게 내 집에서 안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자주 스멀스멀 찾아든다. 오늘도 터벅터벅 까칠한 발걸음으로 공사판 집으로 향한다.


이천이십 년 구월 이일

비로소 우리 집에서 먹는 마지막 점심이 되었다. 살림집 살롱과 부엌 공사로 더 이상 음식을 준비하여 조용히 먹을 수도 없게 되었다. 점심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얼른 끝내고 커피 잔을 다 비우기도 전에 후다닥 설거지부터 마쳤다. 그리고 서둘러 짐을 정리했다. 부엌살림은 먼지만 피할 겸 모두 진열장 안으로 집어넣어서 테이프로 문 틈 사이를 꼭꼭 막았고, 탁자와 냉장고는 한쪽으로 밀쳐놓고 비닐로 덮어 씌웠다. 부엌장은 어차피 새것으로 주문해 놓았으니 흠집이 생기던지 먼지가 쌓이던 그다지 문제 되지는 않는다. 더 나은 방안도 없을뿐더러 더 이상 옮겨놓을 마땅한 공간도 없다. 그동안 물건을 잔뜩 쌓아놓고 살았다고 생각지는 않은데, 작업실 물품까지 기필코 적은 것도 아니다. 다양한 재료를 응용하는 작업 성격상 쉽게 버릴 수 없도 없다. 넓을수록 좋다는 작업공간의 특성상 반드시 넓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일반적으로 보아서 결코 작지도 않은 집이건만 이토록 짐들을 꺼내 늘어놓으니 차지하는 자리가 엄청나다. 하물며 이러한즉 어떻게 '무소유'를 또다시 떠올리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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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모홍시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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