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M과 G

비로소 그홀레(Groslay)에 왔다

by 다나 김선자


비가 그치면 날씨는 차가워진다. 행운이 찾아온 듯 며칠째 밝은 해가 떴다. 그동안은 보이지 않았던 집안의 먼지도 얼굴에 늘어난 잡티까지도 안경 도수를 꼭 맞춰 낀 듯 또렷이 보인다.

날씨가 차갑다.

부엌 창 너머 바라보이는 맞은편 나지막한 언덕에는 서리가 내려앉아 A의 머리카락만큼이나 희읍스름한 들판에 엊그제까지 노랗던 과수나무들이 은은한 아침 햇살을 받아 불그스레 자줏빛 가지만 남겼다. 흰 습자지를 펼쳐놓은 듯 뿌옇고 희미하게 아련 거리는 햇살과 함께 앞집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가 어느새 한 폭의 아침나절 겨울 정경을 본다.


M은 건강상 이유로 몇 번의 날짜를 미루고 바꾸더니 결국 오늘 오후 5시에 방문할 것을 확정했다. 지난번 우리 전시회에 불참석한 M과 그녀의 남편 G는 작품을 보러 전시장 대신 작업실로 오겠다고 노르망디에서 출발 전부터 우리 집 방문을 예정했다. 그들이 노르망디에서 파리로 올 때마다 우리 작업실에 들렀다 가는 것은 해마다 있는 일이다.

작업실은 집과 같은 공간에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신중하고 깊이 있게 작품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이 M의 생각이다. 사실 우리도 그 말에 동감하지만, M의 독단적 성격에서 나온 것이라는 바도 모르지 않는다.


M도 그림을 그린다. 그녀의 삶은 온통 그림과 함께 한다. 그림을 위해서 노르망디를 떠나지 않고, 파리를 오고, 프로방스로 떠난다. 그리고 그림을 위하여 여행을 한다. 그녀는 평생을 그 어떤 작가들보다 더 강한 집념과 아집으로 그림 작업을 하며 그림을 위해 살아왔지만 한 번도 공적인 자리에서 전시회를 가져보지는 않았다. 그녀가 전시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추측건대 그녀의 유별나고 독특한 외고집 성격과 유년기의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가정사가 내포되어 있지 않나 하는 우리를 포함한 그들과 가까운 친구들의 생각이다.

M과 G는 A의 절친한 46년 지기 친구들이지만 그녀의 가정사만큼은 특히 그녀의 부친에 관한 이야기는 그 누구도 M과는 금기로 여긴다.

M의 아버지는 50년 60년대 프랑스에서 유명한 화가다. 나는 그의 작품을 파리 퐁피듀 미술관에서 보았고, 리스본의 현대 미술관에서도 보았다.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에서는 그의 회고전을 갖기도 했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크게 감흥을 얻지는 못했지만 거기서 M의 어릴 적 모습과 그동안 몰랐던 그녀의 가족관계를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M은 그녀의 배우자인 G의 건강 정밀검진을 받으러 몇 주 전에 노르망디에서 파리의 아파트로 왔다. 그들은 일 년에 두세 번 파리에 와서 일 이 개월씩 머물다 간다. 그동안 미루었던 일과 친지들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은 시내를 걷고 산책하고 전시를 보러 다닌다. 수일 전부터 우리는 전화나 메일로 자주 연락하면서 좋은 전시나 영화, 책 등을 추천하고 여러 좋은 정보를 공유하고는 있지만, M은 심하지 않은 목감기를 이유로 외출을 삼가고 그홀레(Groslay:우리 동네 이름)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우리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놓지를 않았다.

이대로 발이 묶인 채 언제까지나 있을 수는 없기에, 어제는 A가 엄중하게 결단을 내려 '더 이상 미루면 아쉽지만 약속은 없었던 것으로 취할 것이다'라고 하자, 이 단호함에 M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우리의 바지춤을 놓고 외출할 용기를 내었다. 사실 M은 모든 게 독특해서 그녀와 약속을 하고 일을 도모하는 것은 예측불가다. 유별난 그녀의 성격에는 남편인 G도 어쩔 도리가 없다.

M은 유난히도 민감하고 허약한 체질이며 독단적이고 자기중심적 성격에 섬세하고 순수한 마음과 감수성을 가진 70세가 훌쩍 넘은 소녀 같은 할머니다. 이렇게 그녀의 까탈 지고 극단적 성향은 장점일 때도, 더 많은 단점임에도 틀림없지만 마냥 미워하고 비난만 할 수도 그렇다고 좋다고 하기에 역시 무리가 없지 않지만, 그마저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성격인지라 감수해야 하는 오랜 친구다.


A는 맛 좋다는 몽모헝시 불랑제리 (Boulangerie:빵집)에서 피스타쉬(pistache/피스타치오 열매) 케이크를 샀고 간단한 저녁식사를 위한 이것저것을 준비한 후 주차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들을 기다렸다.

도착을 알리는 M의 수선스러움이 들린다. A가 밖으로 마중을 나가고 나는 창문으로 시선을 내밀어 M과 G가 캐리어 가방을 끌고 배낭까지 들고 오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 또한 처음 보는 광경이 아닌 아주 익숙되어 버린 풍광이다. 불과 10킬로도 채 안 되는 거리에 겨우 저녁나절 몇 시간 머물다 가는데도 이 정도의 짐가방이라면 그녀의 외출은 결코 간단할 수가 없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노르망디에서 파리로 오기 위해 두 달 넘도록 가방을 싼다고 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가진 외아들 L 결혼식 참석 여부도 수십 번의 번복 끝에 비로소 참석했다고 그녀의 아들 L가 말하기도 했다. L는 덧붙여 "그렇지만 M은 황금의 마음을 가졌다/pourtant elle a un coeur d'or"고 말했다. 그렇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별나고 까칠한 성향을 가진 그녀는 때때로 표현조차 직접적이고 거칠다. 가끔 친구들은 그녀의 송곳 같은 직설에 양쪽 귀를 닫아버려야 하던지, 한쪽 귀로 듣고 반대쪽으로 흘러 버리던가 그것도 아닐 때 어이없어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다가도 그녀의 맑고 청명한 눈을 보면 타고난 성격일 뿐이지 나쁜 의도는 아니라는 그녀의 순수성을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주 오래전 내가 M을 잘 모르고 A의 친구들과 조금씩 알아가던 시절에 M과 나는 한때 소원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M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작은 오해가 있었다고 짐작만 할 뿐이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었다. 어쩌면 그녀의 야릇한 성격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의 소극적인 성격과 어설픈 불어 소통에서 오는 장애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모두 일수도, 아닐 수도 그냥 거리상 자주 보지 못한 소원함과 그녀의 성격을 잘 몰랐던 내 일방적 오해일 수도, 선입 견 일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나는 그녀가 추천한 영화 허우샤오셴(Hou Hsiao-Hsien) 감독의 <카페 뤼미에르/café lumière>를 본 후,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코프스키(Andrei Tarkovski)의 <거울/le Miroir>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다른 예술적 감각과 기호가 M이 가진 많은 결점을 덮어버리고 독특한 개성으로 발한 결과로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녀의 독단적이며 뾰족하고 묘한 성격이 섬세한 예술적 감성과 기질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나 또한 어느 정도 유사한 면이 없지 않기에 그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도 천천히 조금씩 우애가 쌓아졌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 M과의 대화중에 '왜 너를 좀 더 일찍이 알지 못했을까?' '왜 우리가 더 빨리 만나지 못했을까?'라는 그녀의 직설적이지만 친절하고 우정 어린 따뜻하고 두터운 표현도 있었다.

우리말에 "아무리 가족이라도 자주 만나야 정이 들고",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문화나 인종을 떠나서 어디에서나 통하는 인간 사 이치인가 보다. 자주 만나지 않아 서로의 성격이나 상황을 잘 모르고 그래서 신중하게 또는 그 반대로 나온 행동이 자칫 어색하게도 또는 거리를 두는듯한 외면함이나 모멸감으로 느껴지고 서운했을 것이다. 그 간극이 길었지만 인간사 가끔은 시간의 흐름이 필요할 때도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V와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