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사는 충분한 이유

비알라 작품전에서 고대 작품까지

by 다나 김선자



전시를 보러 갔다.

갤러리 떵쁠롱(Templon)에서 끌로드 비알라 전시가 있다.

거기서 친구들과도 겸사겸사 만나기로 했다.

아주 오래간만에 가지는 일정들.

일찍 감치 집을 나섰다.

오랫동안 좀 더 몰입하여 작품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코로나 시대라고는 하지만 바깥세상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어 보였다. 재택근무 때문인지 파리 북역 플랫폼과 전철 안이 코로나 19 이전보다 약간 덜 붐빈다는 정도. 길에는 여전히 사람들로 다름없이 분주하다. 오히려 카페, 레스토랑, 백화점에 있어야 할 사람들까지 모두 밖으로 나와서 물결친다.

오직 마스크를 쓴 사람들과 길가의 테라스 카페가 없다는 점이 커다란 변화다.

카페가 사라진 파리는 그 또한 매력을 잃은 도시 같다

갤러리에 도착했다.

의외로 전시장에는 적잖은 사람들이 몰려있어 깜짝 놀랐다. 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물론 프랑스인들에게 상당히 사랑받는 작가 작품 전시회이기야 하지만 갤러리에 이렇게 많은 관람객이 모여있는 것 또한 처음 본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미술관 전체가 문을 닫은 탓에 미술 애호가들이 갤러리로 몰린다는 말도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파리지앵들의 예술사랑만큼은 으뜸이다.


끌로드 비알라(Claude Viallat, 1936~ )

그는 프랑스 현존 작가로서 프랑스 남쪽 도시 님(Nîmes)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 70년대 프랑스 미술에서 전통적인 재료에 대한 갱신으로 새롭게 일어난 <Supports/Sufaces 슈뽀흐/슈파스> 운동의 설립자(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정해진 기존 규격의 캔버스를 벗어나 불규칙적인 형태와 추상적 표현이다.

작품의 특징은 각종 여러 문양과 색상, 다른 재질의 피륙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스펀지 수세미 모양 형태를 반복적이게 자국을 낸다. 그 크기와 형태가 서로 다른 천을 다양하게 이어 붙이는 작업이다. 거기에는 주로 군용 텐트, 파라솔, 커튼, 식탁보, 이불이나 침대 시트 등 다종 다양한 용도로 폭넓게 쓰였던 것들이 재활용된, 그것들은 작가의 작업실에서 새로운 삶으로 되살아났다.

작가는 피륙에 부수적으로 붙어 있던 여러 가지 용도의 끈이나 매듭 같은 장식용 액세서리까지도 당시 상태 그대로 활용했음을 보게 한다. 마침내 그것들은 거기서 또 다른 세계의 중심 역할을 하기도, 다른 감각적인 포인트를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작가는 작품에 사용된 각가지 천들의 재질, 문양, 두께, 색상과 그 쓰임새, 용도,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다채롭게 조합해서 활기차고 다이내믹한 예술적 생명을 불려 일으켰다.

이 작품들에는 그의 고향 도시 님(Nîmes)처럼 지중해 영향을 받은 남쪽의 강렬한 태양과 쾌적한 날씨를 닮아 거친 듯이 정열적이며 태만한 듯 자유롭고 풍성한 색채의 따뜻함이 있다.


나는 작가와의 아무런 인간관계가 없으나 한, 두 가지로 미루어 추정컨대, 그는 풍부한 성품에 열린 사고의 정신적 소유자라고도 생각한다. 그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 잘 드러나듯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우리는 그의 작품을 손꼽히게 좋아해서 전시를 가능한 빠짐없이 쫓아다니면서 본다. 몇 년 전 나와 남편은 남쪽 도시 몽펠리에 파브르 미술관(Musée Fabre)에서 열렸던 끌로드 비알라 전시를 보러 갔었다. 그때 전시를 보고 크나큰 감동을 받아 기분 좋게 돌아왔다.

그런 후 얼마 지나서 내 남편은 자신의 개인전을 앞두고 전시용 카탈로그를 여러 사람에게 두루 보내면서 끌로드 비알라 작가에게도 보냈었다. 파블로 미술관 전시에서 받았던 감흥을 적은 짤막한 메모를 첨부하여. 그런데 뜻밖에도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사인을 한 그의 작은 세리 그래픽 소품 한점도 동봉되어 있었다. 그것을 나는 카탈로그에 대한 보답이라 여기기도 했지만 다시 한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전시를 앞둔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하듯 초대장을 보내는 건 통상적으로 하는 일이라 남편은 그다지 답장을 바라지도 않았었다. 특히나 그와 같이 유명한 대작가의 회답은 더욱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받는 애정만큼이나 수많은 작가들로부터 전시 카탈로그가 얼마큼 보내오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그러한 모든 예측을 뛰어넘어 그는 답신을 했다. 우리는 그의 품격에 또 한 번 놀랐다. 권위적이거나 거만하지 않고 겸허한 소탈함이 좋았다. 그의 대담이나 책자 등 여러 매체를 통해서 우리는 진즉 그의 성향을 다소간 인지는 하였으나 이렇게까지 겸손하면서 성실한 면모를 가진 작가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역시 대가다운 우아한 대담성을 가진 작가였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격언과도 일맥상통한 행동이었다. 그럼으로써 나는 그의 작업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훌륭하다는 걸 다시금 느꼈으며, 결과적으로 훌륭한 작가는 영혼까지도 순수하다는 걸 거듭 깨달았다.


대작가의 이번 전시 작품들에서 보이는 새로운 형태라면, 두 다른 큰 조각의 천을 조합한 가운데 그 사이에 빈 공간을 두면서 또 다른 천을 이어 붙여 마치 다리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떤 작품에서는 견본(샘플용)용으로 엮인 천의 묶음을 흡사 상점에 걸려 있던 그 자체로 옮겨 놓은 듯이, 그러나 적격 적소에서 이어 붙이거나 나열시켜, 때론 상표명까지 붙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천을 배접 한 주변에는 풀인지 물감인지가 하얗게 번져있을 뿐 아니라, 신발을 신은채 꾹꾹 눌러 밟아 마치 세부적인 것들을 간과한 듯 그 자국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 또한 그의 작품에서 과정이고 그 역시 일부분이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섬세함이나 정교한 미가 아니라 감각의 풍부함이고 강한 유연성이며 조화와 자유로움이다. 자칫 무성의하다거나 등한시된 소홀함으로 잘못 오해를 낳기도 하겠지만, 그 착각만큼이나 거기에서는 재료의 질감이 주는 감각과 더불어 방법의 풍성한 느낌을 우려 나게도 한다.

우리는 작품에 따라 신발 밑창 자국이 달라진 걸 보면서 "도대체 몇 켤레의 신발을 놓고 작업을 했을까" 라며 순수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작가의 젊은 시절 또 하나 에피소드는 전시할 작품을 차곡차곡 접어서 커다란 여행가방 안에다 포개어 넣고서는 갤러리에 끌고 와 풀어놓았다고도 한다. 미루어보건대 형식을 벗어난 그의 소탈함은 어제오늘에 생겨난 것이 아닌 듯하다.

작가는 80세가 넘은 지금도 매일 작업실에서 하루에 한 점씩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의 열정을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도착한 친구들과 전시장을 다시 한 바퀴 더 둘러보고서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센 강을 따라 걸었다. 포근한 봄날에 강둑길에는 수많은 인파들로 출렁된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에 비친 희끗한 햇살이 자분자분 속삭이듯 눈부시게 어른거린다. 갈 곳을 잃은 젊은이들도 빈틈없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종알거리며 봄나들이에 한창이다. 피크닉을 즐기는 이들도 많았다. 우리도 마른 목을 축일 겸 노점에서 비싸게 산 맥주 한 병씩을 들고서는 모스크바 크렘린 광장의 젊은이들처럼 걸어가면서 마셨다. 강 둔치에는 우리가 앉을만한 자리도 없이 북적거렸다.

긴 강둑을 걸어서 차도로 올라와 볼테르 둑(quai Voltaire) 대로 쪽으로 빠져나왔다. 앞서 걷던 남편과 라파엘이 께보흐끼앙(galerie Kevorkian) 골동품 갤러리 앞에 멈춰 섰다. 멋진 작품이 많아 지나다닐 때마다 항상 멈춰서는 갤러리다. 우리는 다 같이 서서 진열장에 전시된 페르시아 도자기와 그리스 로마 두상 조각 등을 유리창 너머로 한참을 보다가 안으로 들어가서 보자고 했다.

페르시아 세밀화를 비롯해 9세기경의 도자기 그리고 기원전 5세기경 황소 조각상까지 박물관 못지않게 훌륭한 작품들을 감상했다. 여주인도 우리의 관심에 흥미가 돋았는지 안에서 나오더니 점원을 대신하여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1920년부터 한 세기가 되었다는 갤러리. 언제나 매일반 눈요기만으로 만족하면서 갤러리를 나와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를 건너 루브르 둑(quai du Louvre) 길을 따라 걸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몇십 년 전에 사용했던 인상적인 무늬가 새겨진 커튼 천을 포장해서 끌로드 비알라 작가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작가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남편의 마음은 그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예술적 이미지가 떠올려주기를 바랐다.

우리는 무척 오랜만에 훌륭한 전시를 보고 좋은 영감을 받고서는 다시금 작업실로 향하여 활기차게 작업에 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느끼면서 시각을 넓히고 감각을 키우야 한다는 걸. 끊임없이 사고하고 꾸준히 행해야만 한다는 것도. 그리고 집중을.


아름다운 향기를 맡고서야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숨통이 트이는 것도 같다. 예술이 없는 파리는 상상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파리는 다채로운 예술이 꽃피는 곳이다. 그 싱그러운 향취가 흐르는 유적 한 도시. 그래서 숨결도 유연하다.

미술관이 문을 닫은 지금은 그 호흡이 다소 약해졌으나 그래도 가끔 이렇게 만나는 멋진 전시와 예술품이 있다면, 충분히 내가 파리에 사는 이유가 되지 아닐까!



8255.jpg 끌로드 비알라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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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9.jpg 끌로드 비알라 작품 전시 모습/갤러리 떵쁠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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