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손님 진이 씨

by 다나 김선자



해밝은 햇살이 창을 뚫고 와장창 들어온다.

파란 하늘도 거침없이 내민다.

살랑거리는 대나무, 시샘하던 꽃바람이던가.


진이 씨의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처음 한동안은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기도 했지만, 어느새 조금씩 기억 밖으로 사라졌었다. 포기였는지도 모른다. 외국생활이 오래되다 보면 그 지낸 시간만큼 사람에 대한 포기도 쉽다. 특히나 한국인일 경우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여기기가 일쑤다.

이곳 프랑스 한국 교민사회는 정착해서 사는 사람보다 유학생이나 주재원이 많다. 그들은 결국 일정 기한이 되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관계를 서로가 친밀히 맺기도 쉽지 않은 판국에 우연히 만나 어느 정도 친숙하고 정이 들 즈음 본의 아니게 아쉽지만 헤어져야 하는 날을 맞는 것이다. 이런 항 다반사 형편이라 이별도 여러 번 반복되다 보면 익숙된다.

사실 미련을 가져보았자 후회와 번민만 생긴다. 그리움만 깊어지고 길어진다는 것도 잘 안다. 더 나아가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상황에 대한 이해와 수용도 빠르다. 그래야만 현실 삶이 더불어 용이해진다.

미련이나 그리움 따위 붙들고 있어 보았자 외국 생활에 걸림돌만 될 뿐. 따라서 그것들을 접는 속도만큼 외로움도 슬픔도 반비례된다. 간혹 이별이 두려워서 또는 상처로 남을까 유독 한국사람들과 거리를 두던 사람도 보았다. 그 또한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외로움의 인과관계이며 슬픔의 지렛대가 될 뿐이리라.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더 커 보이듯이 이별의 아픔도 남은 자의 몫이라면 현실에 대한 빠른 수긍이 바로 최선이며 적응력이다.


오후 3시에 찾아오겠다고 했다. 일찍 전화를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집 공사와 여러 가지 일로 바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오직 그녀의 뜻하지 않은 소식이 반가울 따름이다. 지난밤 꿈속에서 귀인을 만나더니 바로 그녀였던가?


진이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아주 우연이었다. 지난해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가 단골로 가는 정육점에서였다. 남편과 나는 중심가 정육점에 주문한 성탄절 가족 정찬으로 먹을 양고기를 찾으러 갔었다. 십여 명이 서있던 줄 가운데쯤에 있었다. 갑자기 내 등 뒤에서 들려오는 한국 말소리에 깜짝 놀랐다. 환청인가? 설마?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또다시 들려오는 짤막한 대화 소리에 그때서야 한국어라는 걸 똑바로 알아차렸다. 순간 생각했다. 누군가 한국에서 또는 프랑스 지방 아니면 유럽 이웃나라 사는 교포가 여행을 왔나? 의아한 마음으로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두 여성분이 바로 내 뒷줄에 나란히 붙어 서 있었다. 이 동네에서 이십여 년 살아오면서 단 두 번째로 만나는 한국사람이었다.

나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어머, 한국분이세요?"하고 요량 없이 튀어나왔다. 솔직히 예상 밖으로 나온 즉흥적 반응이었다.

"예, 그런데 한국 분이시군요?" 그녀들도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여행 오셨어요?"

"아뇨, 이 동네 살아요"

"어쩜, 언제부터 살았어요?"

우리는 주변의 민폐를 불구하고 정육점 좁은 공간 안에서 삽시간에 주고받은 말이었다.

사실, 내가 바깥출입이 잦지 않은 탓에 몇 집 건너에서 7년 동안이나 살았던 수이 씨도 모르고 지내다 비로소 이사 가기 직전에야 그녀를 만났던 적도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경아 했다.

대화중에 내 차례가 돌아와 주문한 고기를 찾아들고 나는 얼른 계산대를 거쳐 가게를 빠져나왔다. 남편에게 불어로 간단히 상황 설명을 하는데 그녀들도 금세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나누고 바야흐로 여기 서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진이 씨는 프랑스인 남편과 4년째 이 동네에서 산다는 것과 부모님은 파리 서쪽 근교에 사시는데 성탄절을 함께 보내려고 오셨다는 것.

그녀의 부모님은 진이 씨가 아홉 살 때 프랑스로 이민 와서 벌써 38년째 살고 계신다는 것 등 자신의 신상을 쏜살같이 간단명료하게 전해주었다. 그리고서는 "아파트에 사세요?"라고 해서 나는 "아뇨, 주택에 살아요" 답했다.

"우리도 주택에 살아요. 뺨쁘룸 길에"

그렇게 서로의 연락처를 나누면서 성탄절 지나고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그녀가 먼저 전화를 하기로 했었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러 오겠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케이크 하나를 사다 줄 것을 부탁하고 그녀를 기다렸다. 실내화도 꺼내 놓았다. 프랑스 가정에서는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가는 게 보통이나 우리 집은 한국식과 프랑스식이 혼합된 곳이다. 따라서 충분히 양해가 될 경우나 오래 머무는 사람에게는 실내화로 갈아 신기를 권한다.


초인종이 울리고 내가 나가서 대문을 열었다.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정확히 보았다. 그야말로 초면이나 다를 바 없다.

"어서 들어오세요"

"지난번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이제야 얼굴을 제대로 보네요" 생소하다는 듯 진이 씨가 말한다. 그럼에도 이상하리만치 나는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첫 방문에서 많은 것을 들고 왔다.

"잊지 않고 찾아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인걸요, 빈손으로 오셔도 되는데 이토록 많은 것을..." 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벅찬 마음으로 그녀의 너그러움까지 듬뿍 담아서 기쁘게 받았다.

커피와 먹을 파이를 포함하여 대보름날 만들었다는 주먹만 한 약밥과 그녀의 어머니께서 담갔다는 김치와 구운 김 한 봉지 까지. 내게는 감사함을 뛰어넘어 향수까지 불어 일으켰다.

그렇게 우리는 다양한 주제로 대화와 수다를 넘나들며 저녁 6시 통금까지 함께 보냈다. 그녀는 개성이 넘쳤고, 젊었고, 활기가 넘치며, 프랑스와 한국의 좋은 문화를 그대로 모아놓은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프랑스 여성들에게서 보기 어려운 한국적 정서와 프랑스인들이 가진 자유롭고 거리낌 없는 표현이 우리를 더불어 편안하게 했다. 또한 그녀의 불어 구사는 당연히 모국어나 다를 바 없었고 하마터면 잊기 쉬운 한국어 또한 나보다 유창했다. 내 어눌한 불어나 한국말과는 반대로 진이 씨 언어구사력은 가히 그녀 말대로 그녀의 아버님께 물려받은 자산이었다. 두 문화를 모국처럼 잘 소화해서 다채롭게 사는 그녀의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다.


우리는 서로의 상황이나 처지가 다른 면도 많지만, 공통점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어서 쉽게 친근해졌다. 자칫 내밀하게 여길수 있는 이야기조차 포장하거나 꾸밈도 숨김도 없이 직설적인 그녀의 밝고 소탈한 성격이 참 좋았다. 위선적이지 않고 서슴없는 표현이 좋았다.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오후 나절을 산뜻하고 즐겁게 보냈다고 한다.


그녀는 부엌 공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조만간 우리를 초대하겠다는 말도 남겼다. 그때는 진이 씨의 남편과도 서로 안면을 익힐 기회가 되리라. 빠른 날에 좋은 이웃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불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으나 이렇게 서로 간의 교분이 급속도록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이 또한 외국에 사는 특권일 수도 특징일 수도 있다.

타국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친분을 가질 수 있는 넉넉한 이유가 된다. 비록 언젠가는 헤어질지라도.

코비드로 인해 친구들과도 편안하게 왕래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어려운 상황에서, 초봄날 살랑살랑 불어오는 꽃바람이 몰고 온 햇살처럼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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