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봄이 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리 있나 했었다. 흔치 않은 영하권의 강추위가 뒤늦게 찾아와서 일주일 동안 기승을 부렸었다. 사월 같은 이른 봄, 재잘거리는 새소리에 현옥 되어 밖으로 나가보았다. 겨울 내내 비가 와 질척거릴 뿐 아니라, 언감생심 추위 때문에 나가지 않았던 뒤뜰에서 어느새 튤립, 수선화 싹들이 칼날처럼 고개를 내밀었다. 더욱 반가운 것은 먼저 와서 기다리던 노란 크로커스가 그 너머에서 뱅 시레 웃고 있다. 보라색은 청명한 종소리를 울리며 봄소식을 알린다. 홍매화도 어김없이 연지를 바르고 빨갛게 나풀거리며 달려온다.
작은 붉은 목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팔짝팔짝 가벼운 뜀박질로 넘노닐고, 까치 한 마리가 보리수나무에서 사선을 그으며 잽싸게 단풍나무로 옮겨 앉는다. 파란 덩굴 나뭇잎은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정중히 손 흔들며 인사한다.
평온한 일요일 아침, 우리도 일찍 감치 어여차 기지개를 캐고 잔 달음질로 장터에 나갔다.
통닭을 살까 생선을 살까 망설이다. 생선을 사기로 했다. 며칠 전 벨기에 사는 친구가 중국식 도미찜을 했다는 말도 들은 바 있으니 내친김에 일 킬로그램짜리 신선한 자연산 도미 한 마리를 사들고 왔다. 족히 4인분은 될 듯했다.
냉동 생선이야 언제든지 먹지만 머리와 가시까지 고스란히 붙어있는 생선은 가끔 별미로 먹는다.
어떤 요리를 해서 먹을까 남편과 곰곰 궁리한 생각들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상상으로 집에 도착했다. 마침내 그릴에 구우려고 봉지를 열어보니 이런 생선 대가리가 없다. 배를 가른 흉측한 몸통만이 덩그러니 누워있는 상태가 상스럽기까지 해서 참으로 볼썽사나웠다. 그새 고양이가 뜯어 물고 갔을 리도 없고, 무참한 몰골은 어떻게 된 것인가?
분명, 생선가게 주인이 똑같은 말로 "대가리는 어떻게 할까요?"라며 반복해서 세 번씩이나 물어 "머리는 그대로 두세요"라고 정확히 같은 말을 세 번 답했었다. 그런데 주인은 말귀가 먹었는지 묻고 들는 것이 허투인지 농락인지 이토록 도미 대가리를 모질게도 뭉뚱 잘라 놓았다. 그처럼 함부로 할 바에야 질문은 왜 했으며, 과연 우리 의향이 필요했던지 의문이 안 갈 수 없고, 도대체 그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 직업성이라고는 생선 비늘크기도 안 되며, 성의가 상실된 꼴불견 같은 장사꾼이지 않은가?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마치 미식가들의 일요일 정찬에다 소금 범벅을 만들어 놓은 것만 같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신선한 생선을 찾게 되는 이유는 맛이 가장 우선이겠지만, 시각적인 면도 중요한 큰 요인이다. 큼직한 도미가 통째로 접시에 담긴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미각을 자극하고 군침 돌게 하는 풍성한 차림새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커다란 두상을 끔찍하게 잘라낸 모양새란 전혀 미학적인 요소가 배려되지 않아 꼴사납다.
더군다나 나는 <어두육미>라는 말을 준수하듯이 생선 대가리를 쪽쪽 발라먹는 걸 좋아한다. 옛말을 빌리자면 '고등어 대가리 하나로 밥 한 그릇을 비웠다'는 말인즉슨 먹을 것이 풍요롭지 못했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말이건만, 내게는 그 또한 버릴 수 없을 만큼 맛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도미 대가리로 한 끼니를 거뜬히 해결 가능할 수도 있을 정도다. 실질적으로 그토록 맛이 좋아 버릴 게 없다.
한국에서 바다 낀 도시에 살던 젊은 시절, 나는 생선회를 비롯해 여러 신선한 생선들을 아쉽지 않도록 두루 즐겨 먹다가, 프랑스 와서부터 그렇지 못한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고, 그것은 내 그리움 중 하나가 되었다. 냉동 생선으로 내 예민한 미감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모자람도 많다. 그리하여 내가 평소 바라고 원하는 것은 머리까지 통째로 구운 생선을 자주 밥상에 올려 보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신선하고 맛있는 생선을 먹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바닷가 도시가 아니면 더욱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꿩 대신 닭'으로 별도리 없이 냉동생선을 먹는다. 편리한 면도 있을 뿐 아니라 값 또한 보통의 수용될 수 있는 정도라 맛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손쉽게 찾는 편이다.
우리 동네 생선가게는 일주일에 두세 번 밖에 문을 열지 않는다. 이유는 모른다. 따라서 날짜를 맞출 수가 없어 가끔만 찾게 된다. 값도 비싸다. 그러나 맛은 있다. 물론 대형 슈퍼마켓에서도 신선한 생선코너가 있지만 신선도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맛과 품질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싱싱한 생선을 사러면 매장에 입고되는 날짜를 제대로 맞춰 가야 한다. 생물은 시간이 신선도를 지배하고 좌우한다. 특히나 싱싱한 생선 고르는 법도 잘 모른다면 나처럼 몇 번의 실수 끝에 더 이상 발걸음이 뜸해질 수밖에 없다. 신선도가 떨어져 맛까지 없는 지겨운 생선은 더 이상 먹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왜 이토록 신선한 생선이 귀하고 그 값도 비싼지 그 이유를 서 네 가지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첫째 환경적인 요인을 들 수 있겠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위험하고 어려운 악 조건 속에서 수익마저 불규칙한 직업은 대체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삼디 기피 현상 이리라. 그래서 어부들의 수효가 명백하게 낮다. 둘째 비싼 인건비가 생선 값을 올린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는 대형 선박들의 영역 확장과 전매권은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소형 어선들의 운행을 점차적으로 가로막은 셈이었다. 넷째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중해 연안의 물고기 수효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하여 마구잡이식이나 어획물 보호 차원에서 강화된 법규는 당연히 연안 어선들의 운행을 더 어렵고 힘들게 만들었고, 자연스레 멈추게 된 결과라고도 생각한다. 따라서 그 자리를 대형 원양어선들이 점령하여 시장에서는 냉동생선류가 독점하고 있는 양상이다.
몇 년 전 프랑스 남쪽 도시 마르세이유를 갔다가 들은 이야기는 부이야베스(Bouillabaisse, 지중해 연안지방의 전통 음식으로써 생선 수프의 일종. 마르세이유의 상징적인 음식임)를 먹으려면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은 필수이기도 하지만, 2인분 예약은 쉽지도 않다고 했다. 왜냐하면 예약을 받은 후 배를 띄워 어획하므로 예약 손님이 많지 않으면 취소되기가 십상이라고 했다. 일인당 가격도 만만찮았다. 모든 레스토랑이 다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먹기를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남편은 말한다. 한국의 어느 바닷가 도시를 가더라도 크고 작은 항구가 있으며, 거기에 정박된 수많은 어선들을 보면서 어류 시장의 다이내믹함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고. 반대로 프랑스 바닷가 항구에서는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기잡이 배를 보기란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물다. 차라리 취미를 위한 돛배나 요트를 보는 게 더 용이하다.
그리고 한국의 바닷가 도시라면 활기찬 어시장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살아 꿈틀거리거나 헤엄치는 생어를 쉽게 만날 수도 있다. 반면, 나는 프랑스 바닷가를 돌아다니면서도 여태껏 어시장을 구경하지 못했다. 그 대신 바다 낀 유럽 나라 곳곳에는 먼 옛날 어촌 마을들이 남아서 어부는 없지만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도미 배속에다 떵, 소즈, 월계수 잎을 넣고서 통째로 그릴용 큰 쟁반에 담아 당근, 양파, 슈 브뤼셀을 곁들이고 그 위에 후추와 올리브기름을 친다. 레몬, 감자, 토마토를 곁들어도 좋다. 우리는 집에 있는 재료만으로 응용했다. 그리고 섭씨 200도 그릴에서 15분 정도 익힌 후, 다시 백포도주를 살짝 끼얹고 15분가량 더 익혔다. 미처 놓친 레몬은 빠졌지만 훌륭한 도미 맛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맛을 내는 데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기본적인 재료가 중요하다.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에서 훌륭한 요리가 탄생된다.
생선 머리를 발라가며 먹는 재미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역시 신선한 도미 맛은 냉동 생선에서는 결단코 비교 불가능함을 재차 확인했다. 또한 대형 슈퍼마켓의 도미와도 견주어 우월한 감칠맛이 돌았다. 우리는 입을 모아 말한다. 음, 아무렴 이 맛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