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대신 나바항다노

나바항다노(navarind'agneau)

by 다나 김선자



설날, 한국으로부터 오복 주머니가 날아왔다. 비록 카톡으로 받았지만 반갑고 기뻤다. 우리의 전통 명절 음력설이라고는 하나 먼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 사는 내게 특별할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간만에 나간 파리 한국 슈퍼마켓에서 무심코 떡국용 떡 한 봉지를 담아 왔다. 살 것이 많아 이것저것 주섬주섬 담다가 설에 대한 향수로 집어 들었던지, 아니면 무의식 중에 설날임을 인지했던가 보다. 물론 떡국을 끓일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떡라면용으로 쓰일지도 모르겠다.

설음식 하면 일반적으로 떡국이 먼저 생각나겠지만, 나는 떡국보다 오히려 차례를 지낸 후 탕국과 각종 나물을 넣고 큰 양재기에 쓱쓱 비벼서 먹는 제삿밥을 더 좋아한다. 이 비빔밥과 함께 솥에서 쪄낸 조기에 생선전, 그리고 고기산적 등을 상에 그득히 올려놓고 가족들과 빙 둘러앉아 더불어 먹는 맛을 다시금 진하게 느껴보고 싶다.

여태껏 내가 설날이라고 떡국을 끓어 본 적은 없다. 남편이 잘 먹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지만, 나 역시 별미 삼아 있으면 한 끼 먹을 정도지 번거로움까지 무릅쓰며 일부러 끓어 먹을 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한국음식은 매운 것만 제외하면 웬만큼 잘 먹는 남편도 떡국만큼은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히 좋아하지 않는다. 씹을 때 이빨에 들어붙는 떡의 질감이 싫단다. 프랑스인들이 국 종류를 잘 먹지 않는 습성도 한몫을 했던 것이리라. 왜? 그들은 국 대신 포도주를 마시기 때문일까?


설날, 내게 주는 선물이었을까? 남편이 소매를 걷어 올리고 요리를 시작했다. 나바항 다노 (navarin d'agneau, 양고기 나바항)다.

이것은 나베(navet, 순무)에서 유래되어 나바항으로 익살스럽게 파생된 명칭과 아뇨(agneau, 양고기)를 덧붙여 나바항 다노(navarin d'agneau, 양고기 나바항)라 부른다. 프랑스 전통음식 중 하나로써, 양고기와 순무, 당근, 감자 등의 기본재료에다 봄철 밖으로 먼저 나온 채소들을 부가하여 요리한, 이른 봄에 즐겨 먹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음식이다.

따라서 고 칼로리 양고기에 칼로리는 적고 칼륨과 미량 원소, 비타민 C가 풍부한 순무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함으로써 환상적인 배합과 조화를 이룬 음식이고 볼 수 있겠다.

순무는 우리나라의 무과에 속하는 종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프랑스 북쪽을 비롯해 영국, 스코틀랜드 등 기온이 낮고 비옥하지 못한 토양에서 재배되는 뿌리 식물이다. 지금은 감자에 밀려 왕좌를 빼앗긴 모습이나 여전히 많은 요리에 사용되며 오늘날에는 동물 사료에도 이용된다.

내가 순무를 처음 접한 것은 영국 고전 소설을 읽으면서였다. 그 속에서 마치 가난의 상징처럼 추운 날, 칙칙한 잿빛 하늘 아래 순무를 캐거나 지겹도록 먹는 대목이다. 당시에는 그 구절이 막연히 이해되었지만, 이후 내가 순무를 먹어보고 나서는 소설 속 상황 판단의 분별력과 해석 또한 또렷했으며 더욱 생생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아마도 나는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읽고서도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봄까지 기다리지 않고 겨울철에도 나바항 다노 한 솥을 끓어 놓고서는 매일 야채만 첨가하면서 여러 날 먹기도 한다. 그럼에도 먹을 때마다 기막힌 맛은 물론이고, 시간상 요리에 전념하지 못할 여건일 때는 참으로 간편하다. 또한 봄날 햇살 드는 테라스에서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초대해서 먹어도 금상첨화다. 요리법 또한 복잡하지 않아 그저 그만이다.

나바항 다노는 라구(ragoût, 스튜)의 일종으로 포-토-푸(pot-au-feu, 소고기 스튜)와 유사점은 있으나 전혀 다른 종류의 고기라 그 맛도 역시 다르다.

나는 지금까지 먹어 본 육류 중에서 양고기를 으뜸으로 친다. 내가 한국에 살던 시절만 해도 요즘처럼 양고기를 흔하게 먹기는커녕 가까이 가보지도 않았었지만, 프랑스 와서부터 그 맛을 알게 되고 자주 먹게 된 이후로는 내가 가장 즐겨 찾고 선호하게 된 육고기가 되었다. 돼지고기보다 소화력 증진에도 나쁘지 않을뿐더러, 닭고기나 소고기보다 감칠맛이 더 있다. 무엇보다 민감한 내 위장에 아직까지 먹고도 탈 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양고기는 여러 나라에서 긴 세월 동안 먹어 왔으며, 다양한 전통 요리법이 있다. 그중 인도의 양고기 카레나 쿠스쿠스(couscous, 으깬 밀을 쪄서 만든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주식)와 함께 먹는 타진(tajine,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 스튜 종류의 요리) 등도 일품이며, 프랑스에서는 통째로 그릴에 구워 담백하게 고기 맛을 즐기는 지고 다노(gigot d'agneau, 양의 다리)도 있다. 하지만 고기 맛을 정통으로 더욱 풍미 있게 먹는 세계인의 맛이고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숯불에 구운 갈빗살이 제격이다. 특히 포도 나뭇가지나 코코넛 껍질로 지핀 숯불에 구우면 최고의 맛이라고도 한다. 거기에는 바깥공기를 맡으면서 먹는 자연의 냄새와 분위기가 함께 어우러져 내포된 맛일 것이다.

오늘의 나바항 다노(navarin d'agneau), 이 역시 남편의 마음과 정성이 가득 든 가운데, 다양한 재료와 향료가 첨가되어 그 향미는 최상의 요리가 되었다.


나바항 요리에 사용되는 양고기는 여러 부위로 선택 가능하지만 특히 어깨나 목이다. 이 부분은 불 위에서 오랜 시간 끓어도 풀어지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기름지고 담백하여 졸깃해서 맛도 좋다.

우리는 긴 목살 부분을 샀다.

요리법은 먼저 준비한 양고기를 큼직하게 토막 내어 큰 냄비에 담아서 기름을 살짝 두르고 채 썰은 양파와 함께 노릇노릇하게 지져둔다. 다시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썰은 토마토와 양파 그리고 다진 마늘을 넣어 걸쭉하게 죽처럼 저어가며 소스를 만든다. 이 토마토소스를 양고기가 든 큰 냄비에 붓고 재료가 잠길 정도 물을 부어 익힌다. 이때 각종 허브 종류와 향신료를 첨가한다. 남편은 월계수 잎, 떵, 통후추와 더불어 아시아 맛을 덧붙이고자 추가로 카레 가루를 조금 넣었다.

고기가 연하게 익을 때까지 푹 끓인 후, 식혀서 기름기를 걷어내고 그 위에다 크게 토막 낸 순무, 당근, 감자, 양파, 그리고 완두콩 등의 푸른 야채를 첨가해서 다시 익혀준다.


남편은 나 못지않게 요리를 잘한다. 물론 오랫동안 독신으로 산 경험도 한몫을 톡톡히 했겠지만,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음식을 접한 덕분에 응용력이 없지도 않다. 또한 그의 직업에 따른 감각을 살려 색상 배합의 시각적인 효과까지 배제하지 않고서 고상하고 풍요로운 맛을 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옛말처럼 카레 덕분에 연한 투명 빛 노란색이 흰 접시에 살포시 내려앉아 마치 유리창으로 봄햇살이 드리워진 것 같다. 이 깊고 섬세한 맛.

카레가루와 각종 향신료 덕분에 양고기의 냄새도 제거되고 더불어 토마토의 달큼하고 풋풋한 향이 적당히 곳곳으로 배여 들어 고기도, 야채도 담백하면서 부드럽고 향긋하다. 이렇게 다른 재료들이 혼합되어 각자 고유의 맛을 살리면서도 서로가 어울려져 내는 풍류가 있다.

나는 먹는 내내 "와우, 와우"를 연발하며 "으음 맛있어, 음 맛있어" 포도주잔이 흔들리도록 소리가 잇달아 터져 나왔다. 내가 여태 먹어 본 양고기 나바항 중 최고였다.

그렇게 정염을 다해 먹는 동안 어느새 남편의 접시는 속살같이 말갛게 청소가 되어 있다. 나는 농담으로 "당신 접시는 바로 정리대에 갖다 꽂아도 되겠다"

"하하, 역시나 빵의 효력은 뛰어나지"

우리는 바게트 빵으로 각자의 접시를 뽀얗게 핥아서 먹는다. 한 방울의 고기 국물까지도. 그렇게 말끔히 처리했다.


설날, 나는 떡국 대신 최고의 나바항 다노를 먹었다. 남편이 준비한 식탁에서. 요리 과정에서 응당 배여 들게 마련인 냄새를 내 온몸에 덮어쓰지 않고서. 그래서 맛이 더욱 기막힐 뿐 아니라 최상의 기분까지 누렸다. 그에게 받은 새해 선물이었다.

역시 한국에서 날아온 오복 보따리의 효력이었을까?



Navet-blanc-à-collet-violet.jpg 나베(navet, 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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