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이예(œillet)
꽃을 사려던 건 아니었다. 실내화분을 사러 갔다가 그만 카네이션 두 다발을 사들고 왔다. 5월도 아니고 어버이날도 아닌데 왜 하필 카네이션인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다만 밋밋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어서였다. 우중충하고 흐린 겨울날 생기발랄 내게로 와서 잠잠한 나를 깨워주길 바랐다.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또한 사랑스레 귀엽고 이쁘면서 값도 저렴했다. 하기야 꽃 사는데 애써 계절까지 따질 필요가 있을까? 기분 따라 움직이면 그만이다.
보라색이나 노란 후레시아를 살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너무 비쌌다. 내 젊은 시절 좋아했던 후레시아 꽃이란 은은한 향기에 값도 수수했는데 글쎄 아니었다. 이른 봄도 아닌 이월 하얀 겨울 언저리 맺은 봉오리라 그리도 비싼가? 그러고 보니 프랑스에서는 단 한 번도 후레시아가 내 집으로 들어온 적이 없다. 프랑스인들은 튤립을 더 좋아한다. 아무튼 한 다발을 들었다가 그 빈약한 송이에 놀라 되레 놓아 버렸다. 봄이 오면 사자고 움찔했던 마음까지 추스르며.
기웃기웃 망설이다 여러 생화들 가운데 초롱초롱 활기찬 눈동자를 똑 닮은 빨강과 분홍색 카네이션이 시선에 멈췄다. '그래 이걸로 하자' 생각하며 물통에서 빨간 꽃다발을 빼 들었을 때, 화분을 보러 갔던 남편이 돌아와 하얀 안개꽃 한 다발을 뽑아 들고서는 함께 섞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는 과감히 거절했다.
빨간 카네이션과 하얀 안개꽃, 이 아름다운 조화가 내게는 보기 싫을 정도로 지루하게 느껴진다. 내 유년과 젊은 시절 지겹도록 보아온 형식과 관념의 상징적인 꽃이고 배합이다. 나는 이 두 종류의 혼합된 꽃을 보면 그 강요된 억압이 떠올라 진저리 난다.
어버이 날과 스승의 날, 해마다 오월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빨간 카네이션과 하얀 안개꽃, 이 규정된 날, 짜 맞추어놓은 기획, 그 장식적인 조합이 왠지 모르게 차갑게 느껴진다. 달갑지 않은 추억이다. 딱히 나쁜 기억이나 잊을 수 없는 악몽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형식적인 그 자체가 싫다.
왜 하필이면 이 두 종류의 꽃을 어른들께 선사했을까고 이제야 궁금증이 생겨나 그 이유를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꽃말이 감사라는 빨간 카네이션과 깨끗한 마음의 하얀 안개꽃. 그래서 그 상징성을 담아 정성으로 가장했던 것이었던가?
사실, 내가 어버이를 위해 이 꽃을 꽂아 드리고 안겨드린 기억은 거의 없다. 구태여 기억을 짜내자면 생화가 아닌 가짜 플라스틱 카네이션을 꽂아 드렸던 적과 더 어릴 때는 색종이를 올려서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꽃을 어머니께 꽂아 드린 정도다. 그러므로 나는 불효자식인가? 하지만 나 역시 그 누구 못지않게 내 부모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존경과 감사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스승의 날마다 이 생화를 사야 하는 억설 같은 의무감, 제 의지가 아닌 응당한 숙제처럼, 더구나 꾼 적도 없는 빚을 갚아야 했던 기분. 이 강박관념으로 찾아드는 존경의 날, 그게 싫었다.
고백건대 나는 학교, 공부, 선생님 이러한 단어들 앞에서 솔직이 즐겁고 흥미로운 추억이나 기억도 많지 않다. 그것들에 큰 관심도 재미도 느끼지 못한 채 그 가장자리에서 맴돌다 지나온 것 같다. 오로지 의무적으로, 남들과 비교하며, 졸업장을 위해 학교를 다닌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다닌 가방끈이 모순적이게도 참으로 길다.
그래서인가 그러한 기념적인 날은 가없이 귀찮고 싫었다.
빨강과 분홍색을 섞어서 꽃병에다 꽂고 보니 이 앙증맞게도 귀여운 송이들이 흡사 교실에서 초롱초롱 반짝이는 어린 꼬마 학생들의 티 없이 맑은 눈동자를 닮았다. '저요 저요'를 외치며 선생님 질문에 번쩍번쩍 손을 치켜드는 것도 같다.
또 어떤 아침은 간밤에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져 내려앉은 듯도, 밤마다 소리 없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펑펑 내리는 함박눈 같아도 보인다. 그리고 사랑스럽게 눈을 찡긋찡긋 매일같이 윙크를 쏟아붓는 것 같아 보기만 해도 마냥 즐겁다.
거기에서는 무수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행복한 공상의 세계가 열린다. 그 세상 가운데서 조용히 나를 초대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꽃을 산다.
카네이션을 불어로는 으이예(œillet)라고 부른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작은 구멍이라는 뜻도 된다. 이 명칭의 어원을 살펴보면 꽃의 중심부가 눈을 닮았다 하여 으이(œil, 눈)에서 파생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으이예를 우아한 품위와 격식을 나타내는 꽃으로, 특별히 정중한 자리에서 정장 차림 양복 윗도리 가슴 한쪽 단추 구멍에다 꽂았다고 한다. 지금도 간혹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특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생전에 으이예를 가슴에 즐겨 꽂고 다녔다고도 한다. 그는 젊어서부터 프랑스 귀족, 부르주아 살롱에 자주 드나들었으므로, 그 당시 으이예를 꽂고 사교모임 살롱 안을 스노브(snob, 속물)하게 서성이던 그의 모습 또한 상상케 한다.
또한 내가 아는바 으이예 꽃은 세라믹 디즈니끄(céramique d'Iznik)에 새겨진 장식 문양이다. 이 도자기에는 여러 다른 꽃들도 새겨져 있지만, 유독 으이예와 튤립 꽃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꽃봉오리 끝 부분 곡선의 활기찬 지그재그 톱니 형태와 화려한 색상이 마치 생명을 불어넣은 듯이 힘찬 기운을 주면서 매우 장식적이다. 또한 으이예의 원산지가 지중해 연안에서 생성되었다는 설에 밑바침 하면 적어도 상상에서 나온 꽃문양은 아닌 듯하다.
잠깐 여기서 이즈니끄 세라믹에 관하여 짤막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터키 지방 도시 이즈니끄에서 만든 세라믹으로 그 지역 이름을 딴 것이다. 이스탄불에서 새가 날아가는 직선거리로 90km 떨어진 동남쪽에 위치하며, 15세기 중엽부터 오스만 제국 술탄에 의하여 이슬람 스타일의 예술장식품으로 생산되었다. 대부분 꽃과 식물, 동물 문양으로 꾸며진 접시, 화병과 같은 식기류와 타일 세라믹 등이다. 이 제품을 만든 도공들은 아르메니아인과 그리스인으로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를 비롯한 인근 지역보다 뒤늦게 발생한 이 세라믹은 색상이 화려하고 생기가 넘쳐 장식적으로 더욱 돋보인다.
그리고 오늘날 이 멋진 세라믹 예술품은 루브르 박물관 이슬람관에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으며, 더 중요한 컬렉션은 파리 북쪽 근교 도시 에꾸엉시에 17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에꾸엉 성(château d'Ecouen) 즉, 뮤제 나쇼날 들 라 르네상스 아 에꾸엉(musée national de la Renaissance à Ecouen, 에꾸엉 르네상스 국립 박물관)에 화려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꽃문양 식기류 작품들이 절정을 이루며 진열되어있다. 이 방을 들어서면, 자그마치 오월의 꽃밭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이 들도록 넓은 살롱 삼면에서 울긋불긋 생기 찬 꽃들이 터져라 웃고 있다.
또한 내가 아는 선에서 리즈본의 외곽에 있는 깔우스트 굴벤키앙(Calouste Gulbenkian) 재단 미술관에 다수의 식기류 이즈니끄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특히 멋진 타일 세라믹을 맘껏 볼 수 있다.
두 다발의 카네이션을 꽂은 지 며칠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생생한 것이 모두가 방긋이 더 크게 눈을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 역시 그들과 눈을 맞춘다. 다른 생화부케와는 달리 내 곁에서 의외로 잘 견디고 자라주어 그의 꽃말 따라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
문득, 다음번에는 그토록 싫었던 조합의 하얀 안개꽃을 섞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묵은 편견 자락을 털어내어 깨끗한 마음으로 정화시키는 계기를 삼아. 하얀 안개 꽃말같이.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카타르시스가 되었다. 이제는 그 두 종류의 융합된 꽃을 꽂아도, 꽂고 싶다는 마음까지 생겨난 것이다. 훨씬 더 멋지게 어우러질 것이라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목적이며, 따라서 글을 쓰는 최상의 희열이 아니겠는가? 최고의 성공이라고 감히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