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라틴가의 서점

by 다나 김선자



일주일 넘게 지속적으로 내리던 비는 그치고 만개한 목련꽃 같은 해가 찾아왔다. 휴일처럼 유쾌한 날씨다.

프랑스 16개 시, 도에서 제3차 봉쇄령이 내렸다. 오늘 밤 자정부터 4주간 실시된다. 앞서 몇 주간 코로나 19 발생률이 증가세를 보이던 지역으로 파리를 비롯한 일 드 프랑스도 당연히 포함되었다. 외출은 자택에서 10km 내에서만 허용된다.

우리는 때마침 봉쇄를 앞두고 파리 시내를 나갔다.

하루도 마다하지 않고 내리던 비, 격리 생활이나 다름없이 지냈기 때문에 분위기 전환이 절실히 필요했다.

정부 방침과는 별개로 이미 일기예보를 보고 정해 둔 외출 날이다.

볕살은 따스하나 그늘진 곳에서는 찬바람과 더불어 온몸이 으스스 움츠러들도록 춥다.

겨울 옷을 입고 나오길 천만다행 잘했다. 자칫 햇살이 반갑다고 얇게 걸치고 나왔더라면 낭패를 볼뻔했다.

봄이 오다가 멈칫 십여 일 전부터 제자리걸음이라 꽃들도 부르르 떨고 있다.


파리 북역을 거쳐 생-미셀(Saint-Michel) 역에 내렸다.

역 지하 플랫폼마다는 여행객이 사라진 거리가 참으로 여유 자작하여 비로소 사람이 살만한 도시 같다. 사람들과 좌우 부딪치지 않고서도 느긋이 걸어갈 수 있어 좋다.

코로나 19 발생 이전 생-미셀 역은 베르사유 궁전을 가려는 사람들로 통행이 불편할 정도 인산인해를 이루어 그들과 부딪히지 않으려면 지그재그형으로 걸어야만 했었는데, 예상과 달리 한산한 통로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우선 생-미셀 분수 앞 광장에 있는 지베르 죤 서점 앞으로 다가갔다. 폐업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을 매체로 통해 들고서 이 역사적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서점 문은 열려있으나 내부는 책 한 권 보이지 않고 사무 집기류들만 어수선하게 나뒹군다.


생-미셀 광장에 자리한 지베르 죤(Gibert Jeune)은 대로에 있는 지베르 죠셉(Gibert Joseph)과 착각할 정도 동일로 인지되는 서점으로써 그 맥락을 같이한다. 이 두 서점은 가족경영으로 파리 역사상 꽤나 유서 깊은 대표적인 서점이다. 이 거리를 걷다 보면 누구에게나 금방 눈에 들어오는 인물상이 담긴 노란색, 흰색, 짙은 남색의 커다란 간판이 특징이다.

프랑스 파리 학문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고등학교와 대학이 밀집된 라틴 가(quartier Latin), 파리 6구의 생-미셀 광장과 대로에 위치하여 일찍이 소로본 대학과 더불어 특별히 상징성을 지니고 문을 연 지베르 죤.

전형적인 파리 고옥 건물인지라 내부가 넓지 않은 관계상 생-미셀 광장을 중심으로 둑길, 대로에 각각 흩어져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가 파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넓고 크다. 생-미셀 지역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베르 죤과 지베르 죠셉을 떠올릴 것이다.

비록 전문 서적만을 취급하는 서점은 아닐지언정, 다종 다양한 서적들이 두루 겸비된 통상적인 서점으로써, 파리지앵뿐 아니라 외국학생들에게도 편리해서 손쉽게 드나들던 곳이었다. 내가 파리 도착한 초창기에 가장 자주 찾은 서점이기도 하지만 남편 역시도 자신의 삶 전반을 통틀어서 기억되는 오래된 서점이란다.


이 두 서점의 근원은 1888년 생-미셀 둑길 23번에서 그 모태가 되는 지베르 죤(Gibert Jeune)이 처음 문을 열어, 2015년 부친의 작고 후 두 아들에게 남겨져 지베르 죤과 지베르 죠셉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생-미셀 광장의 지베르 죤 두 군데가 문을 닫지만 다행히도 둑길의 23번과 27번은 영업 중이다. 그리고 지베르 죠셉은 광장에서 생-미셀 대로를 따라 소로본 대학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학교 길(rue des écoles)과 뿌리 길(rue racine)을 사이에 두고 음악과 미술 용품점 및 문구점 그리고 서점이 각각 나란히 있다.


지베르 죤과 지베르 죠셉, 이 두 서점과 문구점은 파리에서 나의 학생 시절을 통틀어 심심찮게 애용하던 곳이다. 어학 시절부터 시작하여 학기가 바뀔 때마다 공책과 펜은 물론 새로운 수첩을 줄기차게 바꾸기도, 불어 사전과 어휘사전, 문법책 등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 후 대학에서 논문을 쓸 때도 가림 없이 드나들며 필요한 서적을 찾아 뒤지거나 미술 잡지들을 훑고만 나오기도 수없이 했었다. 여기서 구입했던 공책들은 물론 예술 철학과 미학 서적들이 내 책장에 꽂혀서 지금도 색이 바래어 가고 있다.

학교와 도서관을 가거나, 친구를 만날 때도 시시로 이 대로를 옆집 드나들듯 걸어 다니며 눈에 담았던 곳. 어떤 날은 이 책, 저 책을 심심파적 눈으로만 찍기도, 때론 좋은 문구나 새로운 제품이 있는지 문구점을 기웃거리기도, 이따금 펜 하나 공책 한 권을 사들고 기분 좋게 나오기도, 그것도 아니면 하릴없이 쓱 들어갔다 괜스레 한 바퀴 휙 둘러서 나오기도 하던 너무나 편안한 장소였다.

또한 누구에게는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때론 약속시간을 맞출양으로 그것도 아니면 비를 피하여 잠시 들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남편과 나, 우리는 이 라틴 가를 좋아한다. 생-미셀 광장과 대로는 오늘날에도 파리에서 손꼽히게 즐겨 찾는 곳이며, 산보처럼 편하게 걷는 길이다. 그야말로 내가 살던 곳 다음으로 많은 발걸음을 옮긴 지역이기도 하다. 멀지 않은 곳에 갤러리 거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리에서 5구와 6구는 대표적인 학문과 문화의 거리다.

간단히 말해서 갤러리가 많은 6구는 삶과 영혼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곳이라면 5구와 6구는 철학, 문학이 활자가 되어 숨 쉬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 지역은 지식의 샘이고, 학문의 요람이며, 생각의 숲이자 삶의 안식처이고 표현의 마당이다.


며칠 전 남편이 지베르 죤이 폐업을 신청했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을 때 거짓말 같이 들렸다.

"설마 일시적으로 닫는 것이겠지"라고도 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안타깝지만 사실이야"라고 했을 때 나는 무척 슬펐다. 내 미묘한 감정들은 차가운 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개나리 꽃잎처럼 애달팠다. 프랑스에서 내 삶의 추억 한 도막이 잘리는 듯 쓰라린 마음, 찬바람에 시린 풍치의 고통 같았다.

내가 초창기 파리에서 목마름을 해소하던 곳, 내 꿈과 희망에 일조를 했던 장소, 라틴 가의 징표가, 생-미셀의 상징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내 먹먹한 삶이 외로움과 뒤섞였던 그때 그 시절의 길 위에서, 광장에서 함께 동행했던 지베르 죤.


이것은 나와 남편뿐만 아니라 파리의 대학을 다닌 학생이라면 누구나 기억되는 곳. 파리를 알고 라틴 가를 안다면 누구나 아는, 알 수 있는, 알 수밖에 없는 역사적이고 상징적이며 문화적인 심장, 그런 서점이 폐업에 들어간 것이다. 파리에서 지성의 산실로 지식의 샘물로 긴 세월 굳건히 맥을 이어온 서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단다. 파리의 비극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이 우리 역시도 책을 예전만큼 사지도 않을뿐더러 사더라도 인터넷으로 더 자주 산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전자책으로 쉽게 다운로드해서 읽는다. 그러니까 현대적 시스템을 갖춘 초대형 서점이 아닌 이상, 가족경영 지베르 죤 서점인들 심각한 경영난을 어찌 겪지 아니하겠는가. 긴박한 시대 변화와 흐름에도 견실히 지탱하여 유구한 한 세기 역사를 꽃피웠지만, 그도 현대화의 큰 파도의 거침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나 보다.


우리는 발걸음을 옮겨 학교 길(rue des écoles)에 있는 꼼빠니(Compagnie) 서점으로 갔다. 남편이 라틴 가에 올 때마다 꼭 들리는 서점이다. 사람들은 자가격리를 앞두고 서점을 찾았는지 평소보다 계산대 앞에 줄이 길다.

라틴 가는 내가 파리에서 공부할 때만 해도 서점이 참 많았다. 특히 소로본 대학을 끼고 광장 주변은 헌책방을 포함하여 철학, 문학, 수학 등 전문서적만을 취급하던 서점도 곳곳에 있었다. 따라서 지베르 죤과 지베르 죠셉 같은 일반 서점까지 합치면 어림잡아 세 집 건너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 둘 사라진 그 자리에 옷, 신발, 가방가게 그리고 카페나 음식점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것들이 과연 부족해서 생겨나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매우 안타까운 광경이다. 이 대다수가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 되어가는 듯해서 애처로울 뿐이다. 변화가 느리다는 파리마저도 하물며 라틴 가까지 그 이름을 무색하게끔 현대적인 욕망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꼼빠니 서점에는 세계 여러 나라 소설책과 시집들이 번역되어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우리는 차례로 눈에 담으며 활자의 숲을 거닐다가 아시아 국가별로 분류된 책장 앞에 섰다. 내가 올 때마다 빠짐없이 멈춰서는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읽었던 중국 소설가 <위하>의 <인생>부터, <제7일>을 확인하고, 한국 소설가 황석영, 김영하, 공지영 작가의 책도 보인다. 앞서 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 또한 올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중국과 일본 번역본들은 한 책장 전체를 빼곡히 장식했는가 하면, 번역된 한국 책은 한 책꽂이도 겨우 채울 정도다. 질과 내용을 떠나 양적으로나마 직시하여 이웃나라와 비교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초라한 현실에 나로서는 씁쓰레하고 아쉬운 마음도 숨길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 안타까움은 뒤안길에 두고 우리는 초연히 출입문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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