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

노르망디에서 2.

by 다나 김선자



노르망디 바닷가 작은 도시 옥또 슈흐 메르(Hautot-sur-mer)를 말할 것 같으면 마치 바다에서 불쑥 솟아오른 것도 바다가 푹 꺼져서 내려앉은 것도 같은, 그 이름이 의미하듯 바다 위 높은 곳에 위치한다. 크레(craie:백악:조개류 따위의 유해가 쌓여서 된 석회질의 흰 암석)로 된 낭낭 절벽은 수백만 년 동안 파도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갈아먹어 드러낸 민낯이다. 전면 시원하게 트인 대서양이 발치에, 수평선은 멀리서 하늘까지 맞닿아 있고, 바다 끝 영국이 보일 듯 말 듯 가까이에 있다. 회 맑은 암벽이 해변을 따라 성곽처럼 둘러쳐 바다와 육지를 가른 천인 단애의 요새, 백묵으로 무늬를 그은 망사 커튼이 내려친 듯 신비로움을 더한다. 가히 장관이다.


드 갈랑도 씨 댁이다. 우리는 약속시간에 제대로 맞춰 도착했다. 긴 롱제르 귀퉁이를 돌아 대문 안에 주차를 한다. 이미 활짝 열려 있는 대문은 우리를 위해 열어 두었음이 분명하다. 큰 뜰에는 가늘고 보드라운 미색 억새풀이 내 허리만큼 자라서 듬성듬성 엎드려 있거나 누워있는 모습이 흡사 대서양 파도가 출렁이는 듯 또는 휘리릭 영국 처녀의 긴 금발머리가 바닷바람에 뒤엉킨 것도 같다. 우리의 도착 소리에 기 아저씨는 큰 미소를 지으며 말라서 펴지도 못하는 허리 껴에서 앞뒤 열심히 노 젓듯이 양팔을 흔들며 나온다. 우리는 볼인사를 나누면서 어제 이어 또다시 밤새 안녕을 묻는다. 그리고 집에서 가져온 분홍 포도주 한 병과 내 텃밭에서 출발 전에 따온 오이 2개를 들고 들어갔다.


마뉴엘과 기 부부는 남편의 아주 오래된 친구다. 두 분은 남편보다 상당한 연배지만 친구가 되는데 나이 따윈 아무런 제약이지 않다. 드 갈랑도 씨 부부가 남편 A와 연을 맺게 된 동기는 A의 철학 선생이었던 프랑소와의 인연이 우선한다. 젊은 시절 기와 프랑소와는 같은 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다. 지금이야 사라졌지만 그 시절은 군 복무가 의무였었다.

귀족 출신이라는 공통점과 예술, 철학에 관심이 많은 두 사람은 자연스레 대화가 통하면서 서로 친숙하게 되었다.(프랑소와는 외가 쪽만 귀족이라 그의 성 앞에는 귀족을 칭하는 드가 붙지는 않는다). 그 이후 하이데게리안(독일 현대 철학자 하이데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적 관심사로 기와 내 남편도 친구가 되었고 화가라는 끈끈한 동료애가 마누엘과 내 남편 사이 사우 관계를 맺었다. 그리하여 내 남편과 갈랑도 씨 부부는 그 누구보다도 두터운 절친이다. 이제 그들은 나에게도 점점 빠져들며 좋아지는 약초 같은 존재다.


기 아저씨의 건강은 많이 호전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노르망디 집으로 돌아온지는 채 한 달도 넘지 못한다. 드 갈랑도씨 부부는 매년 겨울이 끝날 때와 시작 즈음, 한해에 두세 번 파리 아파트에서 두세 달 가량 지내면서, 그동안 미뤘던 전시들을 골라 빠짐없이 보고, 아들 부부와 친지들과의 두터운 정과 해우를 나누다가, 완연한 봄이 되면 노르망디로 돌아온다. 그런데 올봄에는 파리에서 차갑고 쓰라린 나날을 보내다가 녹음이 짙었어야 옥또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산책을 좋아하던 기 아저씨는 혼자서 파리 시내를 걷다가, 영문 모르게 길에서 쓰러져 한동안 병원신세를 졌었다. 입원은 했지만 특별한 병명도 나오지 않을뿐더러,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자신이 쓰러진 그 순간의 기억만 완벽하게 지워졌다. 사건에 대한 동기나 원인, 까닭도 모른 무의식 상태가 혹시 그의 뇌에 원치 않는 문제점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마뉴엘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퇴원 후, 그래서 마뉴엘이 강력히 요청하여 계속 파리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정밀검진을 받고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남편을 간호하던 마뉴엘이 스트레스로 인한 피부 알레르기가 발병하여 치료를 받느라 노르망디행 출발이 무한정 지연된 것이다.


우리가 도착했음을 듣고 휴식을 끝낸 마뉴엘이 식당으로 들어선다. 서로 볼인사를 나눔과 동시에 시작되는 우리들의 한정 없는 수다가 이미 식탁 위에 주르륵 늘어놓은 음식 가짓수만큼이나, 또는 마뉴엘 아뜰리에 펼쳐져 있는 스케치북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끝없는, 수다 같은 논쟁을 대화처럼 수다를…!


식탁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어제 예약한 게에르(Gueures)에 있는 지뜨(gîte; 일종의 펜션) 주인과 오후 4시 30분에 만나기로 되어있다. 우선 지트에 짐을 풀고, 수영을 즐긴 후,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서 다시 오기로 했다. 내일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으니 오늘 꼭 수영을 하고 싶었다. 바다수영은 우리가 노르망디에 온 여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해수욕은 기 아저씨가 우리보다 더 좋아하고 즐기지만 지금은 건강상 함께 할 수가 없다. 회복이야 됐다지만 아무래도 연세가 있는지라 예전 같은 체력을 장담할 수도 없으며 아직은 세심한 조심이 필요하다. 작년만 해도 다 같이 바다에 들어갔었는데 불과 일 년 사이 '이것이 인생이다 C’est la vie!'라는 문장이 입가에서 절로 머문다.

평소 기 아저씨는 바닷물이 14도 아래로 떨어지는 한겨울 날을 제외하고는 거뜬히 수영을 즐기던 그였다. 그렇게 단단하고 강인했던 그도 건강과 나이 앞에서는 호언장담은 커녕 이제 결코 젊지 않다고, 유수같이 흐르는 세월을 깨닫는 시점이다.

'가는 세월에 장사가 없다'라는 우리의 옛 속담이 저절로 떠오르게도 한다.


갈랑도 씨 댁을 출발하여 바로 옆 동네인 게에르에 도착한다. 지트는 마을의 작은 국도변에서 뒤쪽으로 살짝 물러나 샘물이 흐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 야트막한 언덕 아주 조용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이 무성하게 자란 나무 밑을 따라 차량 한 대가 겨우 기어서 들어가는 폭 좁은 길이다. 오른쪽으로는 초원 같은 정원에서 한 마리 늘씬한 갈색 말이 어거정 거리며 한가하게 노닐고, 작은 성이라고 할 법한 저택이 나무 사이로 슬쩍슬쩍 내비친다. 오솔길 왼쪽으로 두 번째 집은 지트 주인이 살고 우리가 예약한 지트는 세 번째다. 이 막다른 골, 좁은 길에서 차량이 마주치기는 극히 희박할 것 같다. 천만 다행히도.


지트 대문을 들어서니 널따랗게 펼쳐 있는 잘 깎은 잔디정원 끄트머리에 나지막한 언덕배기 수북이 심어놓은 꽃나무들 사이에서 유난히 발랄하게 미소 짓는 파란 보랏빛 수국이 생기 차다. 역시 노르망디는 수국의 나라다. 지트는 갈랑도 씨 댁과 같은 롱제르(longère)라는 노르망디에서 흔히 보는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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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제르 (노르망디 전통 가옥)


롱제르(longère)는 주로 단층의 긴 일자 구조로, 모든 문들은 마치 경주 마들이 박차고 나올 듯 마당으로 향해 나있다. 그 옛날 농가로써 밀짚을 이어서 만든 높고 넓은 지붕을 쇼미에르(chaumière)라고 부르는데, 그 지붕 아래 큰 다락을 만들어 보온 기능 겸 겨울 동안 농부들의 한해 수확물 보관 창고로도 사용되었다. 롱제르 지붕은 단층이라 더욱 그리 보이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나 넓고 높은지 마치 큰 우산 아래 파묻힌 소녀의 모습 같기도 아니면 큰 삿갓을 씌워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아마도 비와 바람과 습도가 많은 지방에 알맞은 구조이며 효율적인 생활공간으로 옛 농부들 삶에서 얻은 경험의 지혜 이리라.


귀족들의 성이나 지주들 저택은 곧고 올바른 질 좋은 나무들이나 돌과 멀리서 온 대리석으로 건축되었지만, 농가들은 근방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지었다. 이 농가의 벽면에 나열된 나무기둥들은 대체로 자연 그대로의 비틀어진 모양이 활기차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준다.

이것은 프랑스 북쪽 지방의 건축방식으로 꼬롱바쥬(colombage) 양식이라고 한다. 벽 사이사이에서 지줏대 역할을 하면서도 나무기둥들 사이에 흙과 밀짚을 섞어서 지은, 필요에 따라 세로나 가로, 사선으로 잇대은 긴 막대 나무가 벽 표면에서 하얗게 칠한 회백색과 함께 쾌활하고도 유쾌한 모습을 뛴다.

이같이 꼬롱바쥬 양식은 돌이 귀한 프랑스 북쪽을 비롯한 벨기에나 독일 등지에서 흔하게 보는 건축양식이기도 하다. 노르망디 중심도시 루앙이나 북동쪽 알자스 지방의 콜마르 도심에는 이처럼 예스러운 전통적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그 자취로써 아름다운 관광도시로도 유명하다. 북쪽 지역 우중충하게 자주 흐리고 우울한 날씨에 이처럼 생기 있는 음악의 곡조 같은 건축물은 인간의 주거 역할도 하지만 일상의 삶을 활기 넘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더 멋지고 잘 어울리는 것일까?.

현재 롱제르의 쇼미에르 지붕들은 마뉴엘과 기 아저씨 집이나, 여기 지트처럼 편리한 기와나 아르도와즈(ardoise; 청석 돌판)로 바뀌어 노르망 지방의 가옥 특색이 되기도 했다. 내부는 현대식으로 개조하여 전형적이고 운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주택이 되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쇼미에르 지붕도 멋과 전통을 좋아하는 소수만의 기호가 되었다.


꼬롱바쥬 양식 (루앙)


어찌어찌한 이유로 주인과 이해가 엇갈렸다. 우리의 아날로그식 삶과 주인 마담의 디지털식 사고의 스마트함이 서로의 시간을 비틀었다. 그래서 영문도 모른 채 정원에 놓인 비치의자에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한참 동안 주인을 기다렸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조급 해지는 마음, 나타나지 않는 주인에 대한 원망스러움을 섞어 조금씩 짜증이 나려고 하는데, 남편이 남겨놓은 음성메시지를 듣고 주인 마담은 집이 아닌, 먼 거리에서 달려왔단다.

지트는 사진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넓고 편리한, 전형적인 분위기를 잘 살려 감각적이게 꾸며졌다. 꼬롱바쥬를 변형하여 개조한 살롱에는 휘우듬한 나무 모양새가 사춘기 소년의 휘청이는 걸음처럼 한층 더 자연스럽고 그윽한 멋스러움이 있다. 현관문 앞 잔디 위에서는 야외용 식탁이 기분 좋게 우리를 기다린다. 흡족했다.

우리는 짐을 와다닥 풀었다. 잠시 빗방울은 그쳤지만, 잔뜩 흐린 하늘이 우리를 위협하며 비를 거둘 뜻이 없단다. 비가 더 내리기 전에 얼른 수영을 하자고 후다닥 바닷가로 달려갔다.


이 흐린 날에도 주차된 많은 차량들은 우리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인가 보다. 빈자리를 찾아 길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해변가로 내려가는데, 멀건 하늘에서 왕방울 같은 비가 듬성듬성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설마 하는 마음에서, 낙천적인 생각으로, 아니면 너무나 절실하고 긴요해서인지 여하튼 바다 쪽으로 계속 계속 뛰듯이 걸어가는데, 우리의 재빠른 걸음이 얄미운지 어이없기라도 한 것인지 왕방울보다 더 크고 굵은 몽돌 같은 빗방울이 머리 위로 우두 우두둑하더니 두두둑 떨어진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몸을 가린다. 그렇게 잠시 하염없이 소원한 마음으로 섰다가, 겨우 포기하는 용기를 내었다. 수건을 뒤집어쓰고 자동차로 향해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간다. 하늘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자동차에 얼른 올라탔지만, 남편은 자포가 영 안 되는지 운전대를 꺾어 해변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세운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같은 뜻임을 표정으로 읽는다. 그리고 살짝 미소 지으면서 공감에 동의한다. "그래 들어가자!"

더 거세진 빗방울과 아스팔트의 열기에 수증기가 된 희미한 물안개가 좋은 가림막이 되어 우리는 자동차 안에서 엉거주춤 수영복으로 후다닥 갈아입었다.

그리고 비 내리는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 시원하고 신난다. 참으로 좋구나.

먼저 온 우리 같은 몇몇 사람들이 둥둥 파도 위에서 미친 듯이 휘청거린다.

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내 연약한 몸이 더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밀물을 끝으로 썰물이 시작되었는지, 마구잡이로 출렁이는 파도가 내 작은 몸뚱이를 제멋대로 휘몰아친다. 울렁댄다. 몸을 가눌 겨를이 없도록 파도를 제대로 탄다. 두려움이 삽시간 몰려오면서 움츠려 든다. 나는 얼른 바다에서 튀어나왔다. 물 밖도 싸늘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땀과 비에 젖었던 몸은 이 짧은 시간에 탄력을 되찾았다. 내 팔다리 언저리에서, 살갗에, 모래알 같은 가시가 마구마구 돋았다. 바르르 떨면서 빗물로 몸을 씻어 소금기를 지운다. 자동차 안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도, 내 재채기도, 땀내 나는 옷가지 속에 파묻히면서 웃음이 난다. 모든 것이 영연 하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매서웠던 무더위는 어디로 달아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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