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에서 1.
"Alors 여보세요"
"Alors 여보시오"
기 드 갈랑도 씨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안녕 기"
"안녕, 어때, 잘 지내지, 덥지 않니?"
"덥지만, 참고 있어요. 거기도 덥죠? 두 분은 어떠세요. 잘 계신가요?"
"그래 좋아, 근데 노르망디(Normandie)는 언제 올래?" 다짜고짜로 물으신다.
"하하, 아니래도 바다가 그립고요. 수영도 하고 싶어요. 노르망디? 가면 좋죠, 알랑도 즐거워할 걸요"
"그럼, 낼 어때? 내일 올래?"하고 느닷없이 툭 던지신다.
너그러움을 듬뿍 담아 참으로 압축된 기 아저씨다운 표현이다. 농담처럼 가볍게 즉흥적으로 내뱉는 것 같지만 그의 진정성과 참마음을 상대방이 부담 없이 듣고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사실은 그의 인정 많은 우아한 말솜씨며 기법이다.
양측 의견을 수렴하여 몇 통의 전화상 의논 끝에 내일 13시에 노르망디 옥또 슈흐 메르(Hautot-sur-mer)에 있는 갈랑도 씨 댁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작년 여름처럼 당일로 갔다 오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여 우리는 1박을 하기로 했다. 갈랑도 씨 댁에는 뮤리엘과 라파엘이 숙박하기로 오래전에 예정되어 있어 우리는 급하게 갈랑도 씨 댁에서 멀지 않은 궤에르(Gueures )에 있는 지뜨(gîte: 일종에 펜션)를 예약했다.
자동차로 노르망디를 향해 출발한다. 오전 10시 15분, 예정보다 15분 늦었지만, 도로 사정상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제시간에 도착할 것이다.
기상청은 오늘 파리 기온이 근래 없는 최고 42도를 육박한다고 예고했다. 38도였던 어제도 더워서 밤잠을 설쳤는데, 어제보다 4도가 더 높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도 싫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덧창 문을 닫아서 햇볕을 차단시키며 물을 자주 마시기라고 지속적으로 권한다. 노르망디 지방은 다행히도 파리와 일드프랑스 지역보다 기온이 항상 몇 도 씨 낮아 오늘 같은 날 피서지로 안성맞춤이다.
고속도로를 진입하기 전, 우리는 파리 북쪽 지역 국도를 달려 작은 도시들을 거쳐 농촌길을 지난다. 시간 단축이나 편리함은 없어도 차량이 많지 않은 이 길을 달리는 걸 좋아한다. 밋밋하지 않은 시골 풍경이 결코 밉지가 않다. 이미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wy dit joli village>(예쁜 마을), 그 이름에 걸맞게 아기자기 정다운 마을을 가로지른다. 북쪽 파리 근교에서 흔치 않게 상태가 잘 보존된 회 밝은 석회 암석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랑스럽게 뽐낸다. 주변 들판에는 수확철인 밀밭과 긴 옥수숫대가 숲을 이루고 노란 해바라기 밭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져있다. 야트막한 언덕과 넓은 구릉으로 물결치듯 구불거리는 광활한 평원지대가 단조롭다거나 막힘 없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들판 사이를 가로지르는 일 차선 도로가 완만하게 오르내릴 때마다 노란 밀밭 저 너머마다 작은 숲이 틈틈이 쉼표처럼 나있고, 숲 뒤편 언덕 위에는 어김없이 마을이나 작은 성이 보인다.
이 고장을 지날 때마다 나는 언제나 인상주의 작품들을 떠올린다. 내가 프랑스에 도착해서 처음 남편과 자동차를 타고 파리 근교 도시를 지날 때의 그 인상은 잊을 수 없다. 앞, 뒤와 좌, 우가 산으로 막혀 지평선을 찾아보기 힘든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게 언제나 화집으로만 보던 인상주의 그림들이 내 앞에서 실제로 펼쳐져 있었다. 그 한없이 드넓고 아득한 장엄함에 벅차고 먹먹했던 순간, 우수에 젖던 기억과 감동. 그 이후에도 사시사철 이 곳을 지나칠 때마다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역시 대가가 있기에 이 아름다운 경치를 좋은 인상으로 표현할 수도 있으며, 아름다운 환경이 대가를 낳기도 하는구나'라고 혼잣말로 되뇌기도 했다.
여름철 드넓은 들판 끝자락에서 지평선이 새파랗게 하늘을 갈라놓고 지평보다 하늘이 더 넓게 넓게 펼쳐진다.
하얗게 둥둥거리며 유랑하는 뭉게구름 때로는 새털구름, 양떼구름들, 저 높이 연회색 밝고 얇은 구름까지도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떠다닌다.
그리고 가을, 겨울, 봄철 단조로운 풍경은 니콜라스 드 스타엘(Nicolas de Staël)의 미니멀한 반추상적 작품이 되기도 한다. 압축과 간략함으로 마치 색종이를 오려 붙인 듯 색깔마다 터치 하나하나 그 질감에 의해서 밀밭, 옥수수밭, 유채밭이 되고 초원이나 숲도 된다. 늦은 여름이나 초가을 해 질 녘에는 지천이 황혼에 물들어 우리까지도 온통 연분홍색으로 익어버리는 풍경. 따라서 이 고장의 모든 계절이 작품이고, 대가들의 영감을 통해 그들의 화폭 안에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고장이다.
남편 A는 노란 밀밭을 좋아한다.
"수확 전이나 후 밑동까지 흐트러짐 없게 어쩜 저리 한결같이 단조롭게 가지런하기도 할까? 어느 하나 돌출 없이 모두가 일률적으로 자라고 단호하게 잘렸는지?" 그 간결함과 명확함이 좋단다. 그야말로 여행자의 기분이라 더 멋지게 보이는 것이지 않을까?
수확이 끝난 밀밭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새까만 상체를 잔뜩 구부려 밑동 아래 떨어진 낟알을 줍는다.
어느새 남편은 생기 차게 촉촉한 혈색으로 바뀌어 마구마구 원기가 돈다. 여행은 언제나 즐겁고 신난다.
여행! 떠난다는 것, 장소를 옮기어 이동함을 말한다. 어떠한 목표나 목적지를 가지게 되고 낯섦에 대한 기대와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나 새로움이라는 발견과 앎을 내포한다. 이것은 신선하고 즐거운 일이다.
진부한 일상의 삶에서 반복적인 리듬을 끊고 잠시 벗어나면 모든 것들이 새롭게 전환됨을 느낀다. 긴장되었던 호흡은 가벼운 숨결이 되어 신선한 리듬으로 육체와 정신을 휴식케 하며 비로소 우리의 시각 기관과 두뇌에서는 활력이 솟아난다. 흐렸던 것들이 명확해지기도 이성적인 객관성도 생겨난다. 그동안 경직된 감각이 불가항력적으로 열리어진다. 따라서 평소에 비껴 나 보이지 않았던지, 보지 않았던지 또는 못한 건지 안 한 건지, 아님 생각조차 할 여유 없어 예상 밖 우리에게서 멀리 밀려났던, 우리를 벗어나 피해 갔던 수많은 것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아름다운 운명처럼 우연히도 다가온다. 여기에 여행이 존재한다.
톨게이트에 닿았다. 창문을 열자마자 아스팔트를 달군 맹렬한 열기가 내 뺨을 할퀴며 후다닥 밀고 들어온다. 38도를 알린다. 차량이 평소보다 서너 배는 많다. 우리처럼 모두 피서를 떠나는 것일까?
지금 달리는 이 노르망디행 고속도로는 주말을 제외하면 차량이 드문 할 정도로 한적하다. 그래서 늘 여행길이 가벼웠다.
우리는 노르망디 중심도시 루앙(Rouen) 시를 지난다. 기온이 37도로 떨어졌다. 시간대를 따지자면 점점 더워져야 하지만 1도가 떨어졌다는 건 바다가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그동안 도로는 한산해졌다. 많은 차량들이 큰 항구도시 르 아브르(Le Havre)나 모래 해수욕장이 있는 도빌(Deauville)과 아래 노르망디 방향으로 빠져나갔다.
우리의 목적지는 위 노르망디에 속한 디에프 시를 생활권에 둔 아주 작은 마을 옥또-슈르-메르다.
디에프(Dieppe) 시는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 도시로써 19세기 초 가장 최초의 철로가 파리-디에프 간에 놓였다. 주말이나 여름철에 파리지앵들은 마차가 아닌 기차를 타고 쉽게 바다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디에프를 포함한 근접 마을로 파리지앵들의 별장이 쑥쑥 생겨났고, 해안을 따라 경치 좋은 아래 노르망디 쪽으로도 쭉 확산되었다. 오늘날까지 노르망디 곳곳에는 파리지앵들의 별장이 있고, 19세기부터 20세기 초 집중적으로 생겨난 고급 저택들과 전통가옥들로 더불어 초원과 노목들 사이에서 여유롭게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자랑한다.
노르망디 지방은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하여 넓게는 위 노르망디와 아래 노르망디로 나뉜다.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센강의 길목이라 파리 분지와 더불어 광대하게 함몰된, 거기서 퇴적암이 쌓여 만들어졌다. 따라서 석회석과 백악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평야와 야틈한 고원지대 대부분이 지평선에서 마치 파도치듯 가볍게 구불거리는 풍광을 이룬다. 바다를 낀 자연경관은 더욱 멋지다.
노르망디 지방은 인상파 화가들의 고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가 들라크르와(Delacroix)는 이 디에프행 기차를 타고 와서 자주 야외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그 이후 모네( Monet)를 비롯한 많은 인상파 화가들이 파리, 노르망디를 오가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었다.
작년 여름 우리가 수영을 했었던 바로 그 지점에서 인상주의 화가 모네가 대서양과 절벽을 그의 캔버스에 담은 작품도 있다. 또한 입체파 화가 브라크(Braque)가 생을 마감한 오프란빌(Offranville)에 브라크 생가도 있다지만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십여 년 전, 근처 바항쥬빌-슈르-메르(Varengeville-sur-mer)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생 발레리 성당(Eglige Saint Valéry) 묘지에서 그가 잠들고 있는 무덤과 성당 유리창에 그의 작품 비트라이(vitrail;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감동을 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노르망디는 대서양의 영향으로 매우 습하나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화한 날씨로 농사가 잘 되며 언제나 푸르른 목초가 가득하여 젖소나 말을 키우는 방목지나 목장이 많다. 젖소의 우유를 짜서 만드는 까망베르(Camembert: 치즈 이름)와 사과를 원료로 만든 노르망디 시드르(Cidre: 도수가 낮은 사과술)가 지역 특산물로 유명하다. 아주 풍요로운 지방이다.
나는 노르망디를 여러 번 왔었지만, 솔직히 사과밭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제대로 보지를 못했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농업이 산업화되면서 많은 소작농들이 사라지고 대형 농장으로 탈바꿈했다. 이 과정에서 소농으로 할 수 있었던 여러 다양한 농작물 수가 자취를 감추고, 기계화로 쉽게 재배할 수 있는 밀이나 옥수수, 해바라기 등으로 대체되었다. 이때 수많은 사과밭도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따라서 그 옛날 노르망디 지방의 특유한 풍경인 엉 쉬망 크로즈(un chemin creux)와* 에(haie)를** 포함하여 오밀조밀한 보까쥬 노르망(bocage normand)이*** 함께 사라졌다.
땅을 홈처럼 파서 양쪽 지대보다 낮게 만든 엉 쉬망 크로즈라고 부르는 길과 나무를 심어 생울타리 에는 개개인의 소유지의 구획 역할이기도 하지만 바다가 근접해 바람이 많은 지역으로 바람막이 구실을 하기도 했었다.
이것은 노르망디 지방의 전형적인 풍경으로 통틀어 보까쥬 노르망이라고 부른다.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 오랜 옛날의 노르망디를 보지 못한 내게는 남아있는 이 보까쥬 노르망(bocage normand) 풍경만으로도 참 독특하게 평화롭고 고아한 풍취다. 이 같은 내 생각에 남편과 마뉴엘, 기는 어쩌면 절반만을 동의하지 않을까?.
*un chemin creux : 홈을 파듯이 만든 양쪽 지대보다 낮은 길을 말함.
**haie : 생울타리 즉, 바람이 많은 지역이라 바람막이로 들이나 농장의 각 구역마다 나무를 심음.
***bocage normand : 전형적인 노르망디 풍경을 일컬음.
브라크가 살았었다는 소도시 오프란빌(Offranville)을 지나가는 중이지만 그의 생가 방문은 이번 참에도 미루고 다음 기회를 위해서 남겨둔다. 사실 시간적 여유가 없다. 나는 작년에 이 부유층 마을을 지나갔던 기억이 또렷해서 낯설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목적지에 거의 다 왔음을 시사한다. 이 곳을 지나 언덕을 돌면 옥또-슈르-메르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이 시골 조그만 도시 오프란빌에 포숑(Fauchon)이라는 식료품점이 있었다. 포숑은 최상류 층 고객만을 자랑하는 값비싸고 호사한 식료품점으로써 파리에서도 중심지 사치품의 명가 마들렌(la Madeleine) 거리 오직 한 군데 있다. 그만큼 이 동네가 부유층 파리지앵들의 별장이 많음을 뜻한다.
남편은 포숑에 관한 하나의 코믹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970년 초 파리에서 마오쩌둥주의(maoïste: 모택동주의)를 신봉하는 극좌파 학생들이 파리 마들렌 거리에 있는 포숑(Fauchon)에서 고급 식용품들을 훔쳐 HLM(서민층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그 시절 일반 서민들은 포숑이 고급 식료품점이라는 사실조차 잘 몰랐다. 더 이율배반적인 점은 이 운동에 동참했었던 이들 대부분이 부유계층 자녀들이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들은 '포숑(Fauchon: 식료품점 이름)' 단어 끝에 복수형 s자를 붙여 '포숑(fauchons)', 즉 '훔치다'라는 '포세 (faucher)'의 일인칭 복수형이 '누 포숑(nous fauchons) 우리는 훔치다'이므로 이같이 자가당착 풍자적인 해석을 했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식료품점 포숑(Fauchon)'과 '훔친다는 포숑(fauchons)'의 발음도 모두 동일하다.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논리는 기발하나 참으로 웃지 못할 모순된 행위이지 않은가?
Offranville오프란빌 성당의 뾰족탑이 보인다. 건축 시공자들이 실수로 비틀어 놓은 듯이 참으로 유별나고 독특한 양식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마도 시공자들이 졸았었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남편의 쾌활한 농담에 "실수에서 창조가 나오는 거지, 우연의 법칙이라고, 들어 보셨는지요 하하" 나도 막무가내 한수 거든다. 우리가 농으로 기분 좋게 즐기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내가 잘 모르는 첨탑의 양식이므로 남편의 상세한 설명이 뒤따랐다.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프랑스 전역에서 73개의 이 같은 비틀어진 모양의 클로쉐 또르(Clocher Tors: 꼬인 종탑)라는 양식이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실수가 아닌 건축가적 면밀함으로 예상을 고려하고 주도해서 나온 새로운 표현의 기법이었다.
(사진 Laurent VDBK)
그리고 내 남편의 기발한 유머 감각은 가히 으뜸이다. 그의 재치는 적재적소에서 쑥쑥 바로 튀어나온다. "당신은 코믹 배우가 되었으면 출세했을 텐데... 아쉽네"라고 내가 가끔 말할 정도다. 따라서 그가 있는 곳은 언제나 햇살처럼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덕분에 내 삶도 한결 가벼운 것도 사실이다.
오프란빌(Offranville)을 막 지나자 좁다란 길 좌우 가장자리에서 하늘 쪽으로 높이높이 곧게 뻗은 가로수가 나란히 길게 줄지어 서있다. 그야말로 세월을 입은 고목들이 숲으로 지붕을 이어 시원한 자연 터널 같다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남편은 대성당 같다고 한다. 참 절묘한 표현이다. 그렇다, 이 노목 아래를 지나가는 순간, 나는 대성당의 고색 창연히 높고 우아한 원형 돔 아래 웅장하게 우뚝 솟은 대들보 사이를 걸어가는 듯이 장엄함을 느낀다. 서늘하다. 나뭇잎 사이로 빵 부스러기가 떨어지듯 반짝거리는 양각, 마치 대형 아치형 스탠드 글라스 창으로 스며든 빛 같다. 저 너머에서 파란 하늘이 둥글게 길을 열어 놓았다.
드디어 옥또-슈흐-메르(Hautot-sur-mer) 마을에 다 닿았다. 우회전으로 엉 쉬망 크로즈(un chemin creux) 길에 들어섰다. 두세 집 건너 마뉴엘과 기 드 갈랑도 씨 부부가 사는 롱제르(longère) 가옥이 보인다. 길 따라 길게 등을 지고 서있는 롱제르는 마치 골목의 요새 인양 노르망디의 수수하고 박소한 전통 가옥이다. 아님 소녀의 요염함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