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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나 상담일지'를 꺼내놓으며

by 선주

돌아보니 처음 취직한 것이 벌써 수년 전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정부에서 운영하는 청년인턴 제도로 작은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 뒤로 세 번 직장을 옮겼다. 꾸준히 한 직장에서, 한 직종에서 내 자리를 다지며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름대로 나에게 맞는 일을 찾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분투해 왔다.


그렇지만 지난 2018년 1월, 또다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30대가 되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꿈꿨으나 서른 하고도 몇 해를 보낸 지금, 나는 아직도 내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퇴사 후 반년을 놀면서 쉬고 읽고 생각하고 썼다.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은, 남이 하라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 무엇을 못 견뎌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며 나에게 일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기록해 보았다. 물론 생산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시간을 보내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이제 그만 일자리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조급해질 때도 있었다. "요즘 뭐 어떻게 지내냐?" "아직 일은 안 하냐?"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과 걱정 속에 위축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마음에 지지 않고 조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로 다짐했다.


그러다 문뜩 내 고민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만 아는 느낌과 표현으로 가득 찬 일기장의 글을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한 글로 다시 쓰고 있다. 다른 사람을 향한 글임에도 나의 기록은 여전히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이다. 또 이 글에는 일관된 삶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며 고민에 대한 명확한 결론도 아직은 내지 못했다. 이런 글을 내놓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애써 펼쳐놓는 것은 '나'라는 존재는 다른 사람들과 이어져 있고, 그래서 '나의 고민' 또한 누군가의 그것과 이어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생각이라도 꺼내놓는 이 작은 용기가 긴 대화의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또한 그 대화를 통해 새로운 길이 열리길 바라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와의 대화를 꺼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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