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모자라서 아쉬원 본 적이 있는가
무식하게 용기 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잘 몰랐기 때문에 용기가 있었고, 당당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어학연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글로만 접해서는 쉽게 와 닿지 않았다. 그저 실패담을 많이 읽으면서 ‘나는 절대 저렇게 하진 말아야겠구나.’ 하며 마음속으로 마음을 굳건히 가질 수 있었다. 어느 것에 중점을 둘 것인지는 확실했다. 영어만, 영어만 생각하자고. 외국인 친구 사귀는 것도 잠시 미루고, 여행도 잠시 미루고, 영어에만 집중하자고 그렇게 생각했다.
여름학기, 가을학기 이렇게 두 학기 수업을 들었다. 여름학기는 기간이 짧아서 4과목, 듣기, 쓰기, 읽기, 말하기 하루에 총 6시간씩 공부했고, 가을학기는 좀 더 긴 기간 동안 하루 4시간씩 공부했다. 다녔던 대학교 부설 어학원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무슨 협약을 맺은 학교였는지 같은 반 친구들의 대부분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서 학생들을 선발하여 어학연수 1년, 학부과정 4년, 수업료, 생활비, 항공료 등 전부 정부지원으로 온다고 하였다. 그 다음 많은 나라는 한국인 4명, 일본인 1명, 중국인 1명. 내가 다닌 어학연수의 모든 레벨이 이렇게 사우디아라비아 친구들을 많아서 불편한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100% 남자라는 점, 종교를 이유로, 다양한 의견의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점,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발음 등 그래도 한국인이 10명인 것보다는 낫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란 거. 제대로 된 공부란 걸 미국에 가기 전까지 해 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수업만 들어도 100점 잘 맞고,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곧잘 들었는데, 중학교에 들어 가서부터는 늘어난 교과목, 떨어진 집중력과 공부에 대한 흥미로 시험 성적도 좋지 않았고, 공부라는 것을 신경 써서 하기는 했지만, 성취도 면에서는 그리 높지 않았다. 더구나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같은 걸 봐도 어차피 객관식이기 때문에 열심히 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그저 적당히 과락만 면하면 되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운전면허 시험도 70점 턱걸이로 합격했다. 그래서 무언가를 확실히 하는 것보다는 대충 필요한 정도로만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대학생활에 대한 설렘 또한 자유에 있었으니, 대학생활도 먹고 노는 것=대학생이라는 것에 충실했기 때문에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쯤으로 치부해 버린 지 오래였다. 장학금과 성적 올 A 받는 친구들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생애 처음으로, 많은 돈을 벌어서, 간 미국이기에 1분 1초라도 헛되이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내가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그동안의 노력에 대해 뭔가 얻어 가야 한다는 압박으로 내 생활은 긴장과 영어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영어에 미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어학연수를 하기 전에 본 레벨테스트를 보고 충격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총 4개의 레벨 중 2번째 레벨을 받았는데, 내심 3번째 정도의 실력이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2번째 레벨 수업 반은 정말 be 동사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데로 그래도 영어를 그만큼 공부했는데 중간은 하겠지, 문법은 다 알아, 회화가 안되지, 나의 영어 실력을 착각했기에 충격은 더욱더 컸다.
생각을 해 보자. 부푼 꿈을 안고 미국에 도착해서 첫 시간에 배운 것은 I am a student. 의 am 이었다!
내가 be 동사나 배우자고 이 미국에 온 걸까.
내가 be 동사나 배우자고 미친 듯이 일하며 돈을 모은 걸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 시간낭비를 한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영어 공부에 좀 더 매진하고 왔어야 했을 까. 아니면 서울에서 학원을 다니는 게 더 나았을 지도 몰라. 하며 자책을 했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실망도 아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 때문에 괴로웠다. 뭔가 큰 것을 기대한 것 같다. 미국에서 수업만 잘 들으면 영어가 뿅 하고 잘 해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럴 줄 몰랐으니까 미국에 왔겠지. 하며 애써 나를 위로했다. 어쩌겠는가. 현실을 마주하니 두렵다고나 해야 할까.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까. 이미 엎질러진 물,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처음부터 제대로 하자고, 오히려 잘 된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정말이지 잠을 잘 때 빼고는 모두 공부에 매진했다. 학교에 가려고 버스를 타면 타고 가는 데로, 화장실을 가면 화장실을 가는 데로, 샤워를 하면 샤워를 하는 데로, 밥을 먹으면 법을 먹는 데로 점심시간, 점심을 먹으며 떠드는 시간이 아까워 샌드위치나 바나나로 간단히 점심을 먹었고, 그 시간에도 시간이 아까워서 도서관에 가서 오전에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영어를 공부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영어 공부만을 생각했다.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도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걸 미쳤다고 말하는 걸까. 당연히 한국에서 하던 게으른 습관을 그대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고생하면서 번 돈으로 왔는데, 이런 쉬운 문법을 배우고 있는 자체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이마저도 놓아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것 같다. 특별함도 없었다. 그저 꾸준히, 매일매일 예습, 복습 특히 복습에 치중하여 수업시간 내용을 모두 습득하려고 노력했다. 무엇인가를 꾸준히 매일매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대단한 일인지 그때야 알았다. 시험을 보면 모두 맞는 것이. 티쳐가 어제 배운 내용 이야기를 하면 모두 알고 있는 것이. 작은 성취감들이 더욱더 나를 자극하였다. 내가 100% 로 모두 알 때까지 자꾸 보았다. 모르는 단어가 하나도 없을 때 까지 계속해서 읽고, 찾아보고, 쓰고 외우고 이해했다. 한글로 시험지를 만들어서 스스로 시험을 치면서 내가 아는 것, 모르는 것, 안다고 착각하는 것 들을 분류해 나갔다.
이렇게 공부를 했으니 시간이 모자라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예습 복습 시험 준비도 완벽하게 했지만, 그래도 내 가 한국에서 가져간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책과 책들이 놓여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어쩔 수 없이 펴면서도 나중에는 습관이 되어 다른 생각은 나지 않을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예습과 복습을 완벽하게 했다고 해도, 따로 가져온 책들을 100% 아는 것이 아닐 테니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많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해야 할 것은 많기만 했다.
시간이 모자라서 아쉬워 본 적이 있는가.
가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울 정도. 내게 48시간이 있었으면 하고 처음으로 바래보았다. 공부하기엔 24시간은 너무 짧아. 해도 해도 할 게 너무 많아. 이대로 만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몇 개월 후에 엄청난 성장을 할 거라는 기대도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는 데 한 몫했다. 잠도 자긴 해야지. 잠도 자고 공부도 하고, 안 잘 수도 없고. 공부하기엔 24시간이 너무 짧다.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열정을 가지고 무언가에 매달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나도 미국에 가기 전까지 이러한 경험을 해 본 것은 아닌데, 나 또한 무언가에 열정을 가지고 해 본 경험이 많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때는 2시 3시에 자는 것이 얼마나 아까운지, 최소 6시간 이상은 자야 한다고 믿기에. 그래야 오후에 나른하지 않아 낮잠 자는 것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어쩔 수 없이 잠을 청한다. 오늘은 영어로 꿈꾸게 해주세요 하면서. 하루에 6시간의 수면시간은 유지하면서 나머지 18시간 은공부하는 데 할애했다. 그렇다 보니 하루하루 실력이 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선생님 말씀이 하나도 어렵지 않아. 오히려 한국에서 어렵게만 느껴졌던, 헷갈렸던 문법들을, 표현들을 이제는 내가 설명할 수 있게 까지 되어 버렸다.
나만의 휴식 방법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1년 365일을 이렇게 공부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쉽게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본인만의 재충전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나만의 원칙이 있었다. 이를테면 일주일에 하루, 금요일 방과 후에는 절대 공부하지 않았다.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썼다. 이 시간 만큼은 공부 생각을 다 잊고, 보내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뒤에 베이글 이야기가 나올 테지만, 나를 위한 선물로 맛난 크림치즈를 곁들인 베이글을 사서 방과 후에 먹고, 그 이후 시간은 근처 대형 쇼핑몰에 간다 던지, 친구와 수다를 떤 다던지, 학교 컴퓨터실을 이용하여 인터넷을 한 다던지 집에 가기 전까지는 무조건 나만의 활동을 하였다.
아예 공부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아예 내려 놓아야 한다. 계속 생각을 한다면 쉬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차가 없었기 때문에 버스를 이용해서 학교를 다녔는데, 한 달 권이 훨씬 저렴해서 한 달 정기권을 구입해서 다녔다. 그러니 모든 버스가 이 정기권만 있으면 공짜. 이렇게 이 정기권을 가지고, 조금 멀리의 쇼핑몰이나, 공원에 놀러 가기도 하고, 아니면 친해진 일본인 친구와 늦게 까지 남아 수다를 떨기도 하는 등 나름의 원칙을 정해 지치는 것을 방지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 주말에는 알람을 맞추지 않고, 원하는 시간까지 늦잠을 잤다. 긴장하며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를 조용히 복습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공부했다. 그러다 머리를 좀 식히고 싶으면 근처 공원에 홀로 산책을 가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원칙이 내가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금요일을 기다리며, 늦잠을 잘 수 있는 주말을 기다리며, 주중에는 나의 모든 힘을 다해서 공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