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보다 더 어려운 인간관계
외국에 나가서, 무조건 한국인들과는 어울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어울리지 말아야지 말고, 조심해야겠다. 는 생각. 특히 워킹홀리데이와 같은 경우는 소위 말해서 한국 사람이 더 등쳐먹는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사람들이 사기를 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한국에도 모두 좋은 사람만 있지는 않듯이 어디를 가든지 간에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한국인들과 어울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잘못되어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어울리는 것은 자유이되, 배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내가 같은 반의 모든 친구와 어울리지 않고, 어울릴 수도 없듯이 외국이라고 다른 점은 없기 때문이다.
첫 외국생활에 그리고 넉넉한 경제형편이 아닌 생활이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하고 그렇게 어울리지 못했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한가하게 방과 후에 우아하게 커피 마시며 수다를 떨 시간은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난 영어 공부하는데 미쳐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각기 다른 이유로 미국에서 인연이 닿아 만나긴 했지만, 대부분이 최소 2-5년 정도를 생각하는 장기체류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에 대하는 태도라던지, 생활이 나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고, 굳이 이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모든 이와 원만한 관계를 지내되, 가장 마음이 맞았던 미요꼬 일본 친구 하나로도 난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특정 종교로 이루어진 한인사회에 좋지 않은 기억도 있었다. 나는 종교가 없다. 개개인이 가진 종교를 인정한다. 바꾸어 말하면 종교가 없는 나도 인정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어느 한국인 이웃분께서
‘언제부터 우리 ** 나올 거야?’ 라고 하시며 당연하게 말씀하셨다. 종교가 없다고 말씀드려도 소용없었다. 그 이후로 계속된 권유. 급기야는 ‘이모가 내가 ** 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했다. 모든 지역이 그렇진 않겠지만, 내가 있던 지역에는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한인 사회가 꾸려지고, 그 작은 사회 안에서도 소문 등이 돌았다. 안 그래도 이웃(이라고 해도 차로 10분)분께 특정 종교에 대해 강요를 받아 기분이 좋지 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나중에 들은 거지만, 1시간이 나떨어져 있던 정말 작은 시골에 사는 우리 이모에게, 나는 한국 아이들하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렸다고 한다. 그냥 그들과 학교를 같이 다니는 사이에서 친한 사이로 발전하지 못한 것뿐인데 뭐 어떻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국 사람들이 몇 없었기도 없었지만, 굳이 한국 사람을 피한 것이 아니라 나와 소통할 수 없는 사람과 지내지 않은 것인데,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데로 생각하기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좋은 이야기도 남을 통해서 들으면 언짢은데, 좋지도 않은 이야기를 그렇게 돌려 들으니 상당히 언짢았다.
처음에야 이모 집에서 지냈지만,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 타고 다니며 왕복하는 일이, 그리고 자영업을 하시는 이모를 수업 이후에, 주말에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와드리는 일은 학업과 함께 하기에 지쳐갔다. 더욱이 이모께서 갓난 손자를 보셔야 하는 상황이 되자, 더 이상 이모 집에서 지내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학교 근처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외국인 학생담당 사무실에 요청을 하고, 세 집을 소개받았는데, 지리적 위치가 가장 가까웠던 집을 보고 바로 결정했다. 30분 정도 버스를 타야 했고, 한 번 갈아타야 했지만, 젊은 부부와 3살 4살 남매가 함께 사는 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하느라 살갑게 지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난 차가 없었기 때문에, 또 멀리 살았기 때문에, 결정적으로는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에 공부하기에는 최적의 환경, 하지만반대로는 사람 사귀기에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렇게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던 나와 다르게 결석을 밥 먹듯이 하고, 숙제는 다 베껴서 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집에 인원은 두 명인데 차가 각 한 대라서 불편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이해했어야 하는 걸까. 방과 후에 쇼핑 가는 것을,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하며 수다 떠는 것이 나와 안 맞는 것이었을 뿐인데, 한국 사람들하고 안 어울린다는 이야기나 돌고. 많이 속상했다. 내 눈에는 그들이 왜 미국까지 와서 외화를 낭비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 너희는 부자니까 라며 내가 스스로 선을 그었던 것도 같다. 그래도 나이 있는 언니들 이내가 안타까웠는지 많이 데리고 다녀주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마음은 썩 불편했다.
아쉽게도 한국인들과의 인연은 닿지 않았지만, 일본인 친구 미요꼬가 내겐 있었다. 이 친구도 일본에서 돈을 벌어서 학부까지 바라보고 미국에 온 케이스로 친 언니와 살고 있었지만,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나와 같이 버스를 타고 다녔고, 항상 돈에 스트레스 받았고, 가장 중요한 사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이러한 비슷한 면에 서로 끌려, 너무나 친하게 지낼 수 있었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기쁜 일이 있어도 모든 일을 나와 함께해 주었다. 난 이렇게 친구 라 말할 수 있는 이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