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올 A, 과탑, 성적장학금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느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회는 지금도 잊지 못할 것이다. 두 번이나 경우를 해서 힘들기도 했는데, 긴장이 풀어졌는지 몸이 먼저 축 늘어졌다. 비행기 안에서 잠도 정말 많이 잤다.
미국 생활 내내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춰본 적이 없었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단 한 번도, 게으름을 피워본 적도 없었다. 언제나 단 한 번에 일어났다. 물론, 지금은 이리저리 최대한 늦게까지 침대에서 뒹굴다가 일어난다. 반성 좀 해야겠다. 그런 긴장이 풀어지니 몸이 너무 아팠다. 한국에 와서 일주일 정도는 그렇게 감기로, 몸이 아팠던 것 같다. 그래도 기분은 너무 좋았다. 이제까지 살면서 뭔가 해 냈다는 그 성취감, 그리고 잘 했다는 생각에 나를 토닥여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한 번 성취감을 맛보고 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그저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 어떤 것이 내게 온다 하더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앞으로 나의 생활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성적 올 A, 과탑, 성적장학금
어학연수를 마치고 들어와서 복학을 했다. 1년 반 동안의 휴학을 했다. 남자들이 군대를 가기 위해 2년에서 2년 반 정도 휴학을 한다고 친다면, 군대를 다녀온 것이 아닌 것 치고는 꽤나 긴 휴학이었다. 여자 동기들은 다 졸업을 했거나, 휴학을 한 동기들은 복학을 해서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었고, 내게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코스모스 졸업도 예상이 되고, 군대를 제대한 남자 동기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1, 2학년 때 나이 많은 선배들을 보면, 신기하게 바라본 기억이 있는데, 바로 그 나.이.많.은.선배가 될 줄이야.
이제는 조금 달라지자고. 그렇게 결심했다.
이제 복학생 언니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겠어! 흔히 예비역들의 자세가 되어 학업에 임했다. 남자 아이들이 군대를 갔다 오면 철이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군대 안에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상기하며 열심히 하는 것과 같은 심리였다. 어차피 여자 동기들은 거의 다 졸업했으니, 난 그저 나이 많은 복학생 언니답게 열심히 학업을 해야지 결심했다. 그러다가 문득 과탑을 해 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한 번도 해보지 못했고, 하려고 생각도 안 했던 과탑. 이왕 할 꺼면 올 A 받고, 과탑도 하고, 전액 장학금도 받아야지 생각을 했다.
과탑 8번의 기회 중 5번을 그냥 넘겼으니 남은 기회는 3번. 그 세 번 다 내가 해주겠어.라고 마음 먹었다.
항상 꿈은 있었다. 꿈과 목표는 다른 거겠지만. 꿈. 이룰 수 없어도 괜찮지만, 하면 정말 좋아 보이는 것 바로 올 A 맞기, 그리고 과탐 해보기, 전액 장학금 받기. 사실 올 A 를맞으면 과탑을 할 것이고, 전액 장학금도 받을 것인데, 따로따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Why not me?
미국 어학연수는 나에게 꿈이었다. 이루기엔 너무 힘들어 보이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것. 꿈. 하지만, 그것을 이뤄냈고, 더 이상 다른 것들이 꿈이 아닌 목표로 변하게 시작했다.
누구나 새해가 되면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간혹, 잘 되지 않는다면 3월에 또다시 봄이 옴과 동시에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그러다 날씨가 좋아서, 바람이 불어서, 꽃이 예뻐서 봄을 보내고 나면, 휴가의 계절 여름이 오지. 남들 다 놀러 가니 나도 거기에 동참 안 해줄 수가 없지! 산으로 바다로, 굳이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날씨가 너무 더워. 가을에는 단풍이 너무 예쁘고, 낙엽도 떨어지니까 그 구경도 해 줘야 한다. 겨울은 크리스마스, 새해 행사가 참 많다.
그러면 1년이 훌쩍 지내가고, 또다시 새해가 오지. 그러면 또 로테이션. 반복의 연속이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면 당시에는 잘 모르지만, 후에 돌이켜 보면 허무할 때가 많이 있다. 1년이 지났는데도. 바뀐 것이 없음을 느낄 때. 그러면서도 올해는 다를 꺼라라고 가지는 쥐똥같은 희망. 그 희망이 우리로 하여금 오늘을 살게 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이제는 조금은 변하고 싶다.
미국에서 공부했던 방법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우선, 수업시간에 잘 듣고, 이해하기, 예습은 힘들더라도 복습은 꼭 하기,
주말에 정리하면서 한번 쭉 보기. 등 정말 기본적인 것들에 충실했는데.
가장 먼저 영어를 공부하고 좋았던 건, 경제학과라 용어들이 참 많이 나온다. 함께 나오는 그래프는 덤. 항상 수요공급 곡선에서 S와 D 가 헷갈렸었는데, 더 이상 헷갈리지가 않았다. 굉장히 단순한 것인데, 무작정 외우기만 했으니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supply와 demand 이두 가지가 휴학하기 전에 항상 헷갈렸으니 기초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기초가 공부되고 나니 다른 과목들은 대체로 쉬웠다. 역시 기초가 탄탄해야 하나보다.
복학 후 1년은 정말 스펙 타클한1년이었다.
휴학 전에 들었던 기초과목들은 성적도 좋질 않아 다시 재수강을 했고, 그 기초과목 들을 기본으로 3학년 4학년 전공 심화 과목들을 공부해갔다. 수업시간에는 집중했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모든 부분이 다 이해가 가는 건 아니었지만, 노력했다. 예습은 못하더라도 복습은 꼭 했다. 이렇게 하니까 중간, 기말고사 기간에 따로 공부를 밤을 세서 할 필요가전혀 없어졌다. 공부가 원래 이런 건가. 공부 잘하던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단하네.
몇 년 전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이 꽤 흥행했다. 읽어는 보았지만, 기억은 잘 나질 않는 그 책. 공부가 가장 쉬웠다라. 저자처럼 인생 역경을 겪진 않았지만, 그 말에 100% 공감한다. 적성에만 맞다면 공부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공부를 하는 것은 시간을 배반하지 않는다. 공들인 만큼 성과를 낸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몸으로 체험하고 왔기에 기대도 되었고, 나이도 후배들보다 많으니 모범도 보이고 싶었고, 지루하기만 했던 수업시간도 즐거웠다. 더 이상 강의가 휴강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학과 생활도 웬만하면 참석하려고 했고, 다시 시작한 현악동아리 활동도 너무나 즐거웠다. 학교에서 주최하면 많은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였다. 취업동아리도 하고, 취업 캠프 도다녀오고, 연애도 하고. 무역구제 모의재판 경연대회도 학부 재학생들이랑 준비해서 나가 보고, 그렇게 정신없는 1년을 보냈다. 그렇게 복학 첫 학기에는 올 A+ 은 아니었지만, 과탑과 전액 장학금, 그리고 두 번째 학기에는 올 A+ 의 영광을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