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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Sep 16. 2017

크루즈 승무원 일기

9월 14일 피레우스, 그리스

9월 14일 피레우스, 그리스 – 드디어 첫 유럽 기항지!

 일어났더니 춥다. 어젯밤 추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두꺼운 긴 팔을 입고 잤는데 몸은 괜찮은데 목이 아프다. 오른쪽 편도선이 부어서 상처가 난 듯 했다. 밤에 꿀물도 마시고 잤는데 감기 걸리기 바로 전 증상이다. 이제 막 유럽을 시작했는데! 이러기야! 충분한 수면. 긍정적인 생각. 풍족한음식물 섭취. 뭐가 불만인 걸까. 더 잘 먹고 해서 낫게해 줄게. 어서 건강한 나로 돌아와줘. 제발.


 피레우스 기항. 피레우스는 유럽의 관문과도 같은 곳이라 늘 유럽의 첫 기항지다. 지난 크루즈 때에도, 이번 크루즈 때에도. 기다긴 항해를 마치고 드디어 기항지에 도착했으니 승객들도 우리 크루들도 신이 난다. 더욱이 유럽 아닌가! 쉬는 시간 4시간. 스케쥴이 나오자 마자 쉬는 시간부터 확인한다. 5시간을 예상했는데 아쉽다. 지난번에 아크로폴리스를 봤으니 괜찮다. 아테네 시내에 나가서 그리스 아테네를 느끼고 와야지. 정신 없는 오전이 지나고 드디어! 쉬는 시간. 한 번 와 본 곳이라고 터미널이 낯설지 않다. 그리스에서의 유로환율이 좋은 편이기에 300불 환전을 했다. 세어보니 유럽 기항지가 총 11곳이네. 모자랄까? 흠.. 괜찮다. 나에겐 마법의 신용카드가 있으니까.


 지하철을 타고 시내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예쁜 성당이 하나 있어서 들러 사진도 찍고, 부지런히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편도에 1.4 유로. 괜찮은 가격이다. 지난 번엔 2층 오픈 버스를 타고 아크로폴리스까지 갔다가 구경하고 바로 돌아왔다. 시내는 이번이 처음. 지하철을 타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누군가 알려줬던 시내의 역에 내렸다. 내리자마자 잘 왔다는 느낌이 든다.


 역에서 나오자 마자 보인 수많은 기념품점들. 그래. 이런 곳이 관광지지. 배가 고프니 밥부터 먹어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바로 앞에 보이는 유적지 같은 곳을 먼저 들어갔다. 밥은 나중에도 먹을 수 있지만, 방문은 마지막일 수 있을 테니까. 언제 또 아테네에 와 볼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기둥이 있는 것이 뭔가 굉장한 것이 있을 것만 같다. 저 위를 올려다보니 지난 번에 갔던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작게 보이지만 그래도 멋지다. 저 위에서는 내가 깨알 만하게 보이겠지. 사람들은 이 멋있는 시내를 보며 감탄하고 있겠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여러 기둥과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배경지식이 없으니 사실 내게는 그냥 돌덩이같은 곳. 부끄럽지만 선방문, 후공부다.


 어제 이탈리아친구 칼로[1]가추천해준 지로스(gyros)를 먹으리라. 이 메뉴 이름이적힌 상점들 가운데 한 곳에 가서 지로스, 그리스 샐러드, 맥주를시켰다. 많은 듯 했지만 괜찮아. 나를 믿으니까. 맥주가 생각보다 큼. 그래도 괜찮다. 다 마셔버릴 테니까. 지로스는 그리스식 케밥 되겠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날씨가 더워 한국에서 공수해간 미니 휴대용 선풍기를 꺼내 쐬었다. 나만 시원하다. 음식이 나왔는데2유로의 지로스, 치즈 엄청난 그리스 샐러드도 5.5유로다. 대박. 생각보다깔끔한 음식이 나왔다. 배가 고파서 맛나게 먹었다. 샐러드가생각보다 많아(특히 치즈 덩이가) 정 안되면 싸서 가려고생각했는데 부끄럽게도 다 먹어버렸다. 나란 여자. 치명적으로매력적 이군. 샐러드에는 그리스에서 유명한 올리브가 씨와 함께 통째로 절여진 것이 5개 정도 함께 나왔는데, 미안하다.촌스러워서. 너무 짜서 못 먹겠다. 하나 먹고다 남겼다. 하지만, 그것만 남겼다. 모든 것을 클리어.


 기분 좋게 밥을먹고 난 후로는 부지런히 움직이며 돌아보았다. 물가가 싼 편이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사는 데에 부담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짐을 생각한다면 마구 사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냉장고 자석을 하나 사고, 엽서도 샀다. 나머지 기념품은 내일 이라클리온에서 사기로 했다. 이라클리온이 있는 크레타 섬의 올리브 제품들이 다 육지로 넘어오는 것이라고 기항지 설명회 때 들었기 때문이다. 


 관광객모드로 전환하여 이리 저리 구경한 다음, 지하철 역 근처 과일 가판대에서 무화과를 싸게 팔길래, 아주 잘 익은 무화과 작은 두 박스를 데려왔다. 무화과, 오랜만이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피곤한지 잠깐 졸았다. 체력이 바닥이 났다. 큰일이다. 오랜만에 햇볕을 너무 오래 쬐고, 너무 오래 걸었다. (너무 많이먹기도;;;) 지하철역에서 우리 배 까지는 20분이나 걸어야하는데 택시를 탈까 말까 하다가 그냥 부지런히 걸었다. 캐빈에 오자 마자 뻗었다. 허나 곧 근무시간. 


 저녁 10시 반에 오늘 일과를 마쳤다. 목도 아프고 몸도 무겁다. 윈다가 그릴치킨을 사 왔다면서 먹자고 했는데 몸은 자고 싶다고 말을 하지만 입은 먹고 싶다 했다. 먹고 자면 몸이 낫겠지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메스에서만나 큰 그릴 치킨 두 덩이를 먹었다. 따뜻한 것이 먹고 싶어 진짬뽕 컵라면도. 무화과와 포도는 디저트로.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1] 칼로 : Carlo. 예전 크루즈 코스타에서 함께 일했던 IT 오피서 이탈리아 친구. 지금도 코스타에서 일하고 있으며 유럽노선에승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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