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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Sep 18. 2017

크루즈 승무원 일기

9월 15일 헤라클리온(이라클리온), 크레타섬, 그리스

9월 15일 이라클리온, 그리스 – 멋쟁이성벽

크레타 섬의 이름도 어려운 이라클리온에 기항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승객들의 하선 허가[1]가나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나의 오늘의 목표는 올리브오일과 꿀, 냉장고자석과 도자기 골무를 사는 것.


 다행히 시내까지걸어서 갈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기항지는 시간에 항상 쫓기는 크루들에게는 정말 고마운 곳이다. 왔다 갔다 시간이 걸리면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터미널에는 Welcome Peace Boat 라는 플랜카드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피스보트[2]가 이제껏 95회 세계일주를 했지만 처음으로 기항한다는 이라클리온. 승객들이 하선하면서 즐길 수 있도록 선착장에 전통 춤을 준비해주었다. 이처럼 기항지에서는 크루즈 선들을 위해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해주기도 한다. 여수에서도 사물놀이와 곱게 한복을 입은 무용수들의 공연을 감상했었다. 다른 나라들도 처음 기항하거나 오랜만에 기항하거나 하면 환영의 의미로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해준다. 이런 이벤트는 더욱더 기억에 남는 법. 더 환영 받은 느낌. 그 따뜻한 느낌.


터미널에서 나오자 바닥의 노란색 선을 따라가면 시내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닷가 성벽 같은 것이 나의눈을 사로잡았다. 저기를 꼭 가겠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과연 그 성벽이 보였다. 이미 많은 단체 관광객들, 개인관광객들이 성벽을 향해 걸어가거나, 나오고 있었다. 나도 부지런히 걸었다. 멀리서 보니 이 성벽 때문인 건지 아닌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경계로 바다의 모습이 확연히 달랐다. 바닷물 색깔도 그렇고, 비교되는 잔잔하고도 거친 파도.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참으로 맑다.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닷가 저 멀리 산이 보였다. 조금은 벌거숭이 모습이긴 했지만 시퍼런 바다와 잘 어울린다. 바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성벽 건물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니 올라갈 수 있나 보다.


 입장료 2유로를 내고 큰 건물 형태로 된 성벽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안은 생각보다 컸다. 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굉장히 단단해 보였고, 적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작은 창문이 곳곳에 나 있었다. 그 사이에는 공격할 수 있는 포들도 있었다. 역사적인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유물로 보이는 항아리, 돌덩이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한 공간에서는 바닷속 깊은 곳에 있는이 물건들의 발굴 당시 모습이 담긴 비디오가 상영 중이었다. 곳곳에 직원들이 배치되어 관광객들을 도왔다. 그렇게 아래층을 둘러보고, 위로 올라갔다. 톱니 바퀴처럼 생긴 성벽이 가장자리를 감싸고 있었다. 내가 정말좋아하는 스타일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전망을 볼 수 있는 곳! 기분이 너무 좋다. 사진을 정신없이 찍었고, 셀카봉,미니 삼각대로 사진도 찍었다. 그리스 대형 국기도 게양되어 있길래 찍고. 물론, 바람이 넘 세차게 불어 머리카락 휘날리며 였지만. 다른 곳은 이제 안 가봐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더 있고 싶었지만, 나의 미션도 있고, 배도 고팠다. 


 들어온 입구 쪽으로나와 조금 걸어 올라가니 벌써 시내 진입이다.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방금 보고 온 성벽 냉장고 자석과 크레타 섬이 그려진 도자기 골무를 샀다. 이제는올리브오일을 살 차례. 작은 올리브 오일 세 개를 샀다. 샐러드두 세 번 해 먹을 정도의 크기. 올리브오일로 만든 비누도 몇 개 사고. 나를 위한 꿀도 샀다. 미션 성공!


 살 것도 다 샀고, 이제 밥을 먹을 차례. 밥 먹을 생각을 하니 배가 고프다. 뭘 먹을까 싶었는데, 어제 먹었던 지로스(gyros)를 또 먹어 보기로 한다. 당연히 맥주 한 잔과 함께. 사실 어제 먹은 것이 훨씬 맛있었지만, 오늘 것도 맛나게 먹었다. 더워서인지 맥주가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둘러 보기로결정한 유적지를 향해 나 나름의 방향 감각으로 한 10분쯤 걸어갔는데.망했다. 착각했다. 도저히. 도저히.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갈 자신도 없다. 이럴 땐 방법이 있지. 택시. 택시가벤츠다. 5분 후 터미널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도 항상 먼저 캐빈에 들어가는 법이 없다. 난 모 그렇다. 캐빈은언제라도 있을 수 있는 곳이지만 이 기항지는 언제라도 다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날씨가 더우니 터미널에서 아이스 까페 라떼를 시켜 마시며 더위를 식혔다. 자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이라클리온. 다음에 또 만나요!


      

[1] 배가 입항했다고 해서 바로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국 이민성에서 각종 문서를 검토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면심사, 여권직인 등 각국마다 다른 이민절차를거친다. 그 이후에 모두 통과가 되면 승객들과 루들의 하선허가가 난다.상대적으로 유럽은 이민국 절차가 빠르고 간편한 편이다.

[2] 피스보트 : Peace boat. 세계의 평화와 인권 증진, 지구 환경의 보호 등을 목적으로 1983년 설립된 일본의 NGO 단체이다. ‘평화를 실어 나르는 배라는 뜻’으로 세계일주를 통하여 관광 뿐 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한다. 피스보트가크루즈 선인 오션드림호를 장기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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