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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Sep 20. 2017

크루즈 승무원 일기

9월 19일

기항지에서의 여파가 오늘까지 이어졌다. 여전히 종아리는 아프고, 몸이 피곤하다. 정말이지 이번에 한국에 가면 보약이라도 지어 먹어야겠다. 엄마는 항상 어린애가 무슨 보약이냐고 말씀하시지만, 엄마 딸도 30이 넘었다우. 오늘은 그냥 바쁜 하루. 내 손에서 해결 가능한 바쁨은 언제나 환영이다. 오후에 기항지 설명회가 있었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조금 바뀌었다. 11시부터 1시까지.

어제 짠 리조또의 영향인지 아니면 몸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 밥을 너무 잘 챙겨 먹어서일까 속이 좋질 않았다. 더부룩. 2시간 푹 자고 와야지 생각했는데. 망했다. 오늘따라 캐빈 청소해주는 친구가 침대 시트와 담요를 모두 바꾼다며 시트를 모두 벗겨 놓았다.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왜 하필 오늘 ㅠ 고맙지만. 왜 하필. 하하. 어.쩔.수.없.이. 책을 하나 가져가서 크루바에 앉았다. #민들레 112호, 덕후 전성시대. 책을 읽으라고 하는 하늘의 계시인가보다. 요 며칠 기항지 여행 하느라 책 한 장을 보지 않았구나… 반성 반성. 그렇게 책을 조금 읽고 11시 반이 되어 점심을 먹으러 갔다. 분명 점심은 금식을 하며 속을 달래려고 했는데…. ㅎㅎ 점심을 먹고 캐빈에 가 보았는데도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크루바에 가서 민들레를 마저 읽었다. 짧은 꼭지였지만 ‘어젠 밭을 갈고 오늘은 바느질을 했지만’ 꼭지가 기억에 남는다. 자립에 관한 이야기. #민들레 덕후가 추천합니다. #대안교육잡지 #민들레 발을 담그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발가락 하나 겨우 걸쳐 놓고 있는 민들레. 모두 보고 싶습니다. 돌아가면 뵈어요!

아주 잠깐의 낮잠을 자고 업무로 복귀 했다. 10분이든 20분이든 잠깐의 낮잠은 언제나 달콤하다.기항지 설명회에 가서 오늘도 어김없이 동시통역을 들었다. 이어폰 색깔이 분홍색이라 너무 튀는 감이 있지만;;; 유니폼은 까만색이므로;;; 승객들이 너무 많이 참석해서 자리가 없어 내내 서서 들었다. 40분을 서 있으니 다리가 아프다. 안 그래도 종아리가 아픈데ㅠ 그래도 승객들이 먼저니까. 앞으로의 기항지는 나폴리.바르셀로나.리스본.보르도. 이름만 들어도 참 설레이는 곳들.

내일 당장 나폴리 기항. 가서 피자를 먹고 오겠어요! 세계 3대 미항이라는데, 직접 확인해보겠어요! 나폴리가 고향인 친구가 예전에 나폴리 엽서를 보내준 적이 있다. 내일은 비슷하게 나폴리 사진을 찍어 다른 배에 승선해 있는 그 친구에게 보내줘야지. 94회 기항지를 돌 때 하루 이틀 차이로 기항 날짜가 어긋나서 만나지 못함ㅠ

오늘 하루 종일 양 옆으로 이탈리아 땅이 보였다. 어디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땅이 보이는 건 좋다. 혼자가 아닌 느낌? 혹은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느낌? 망망대해에 홀로 씩씩하게 항해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인 것도 좋지. 그래서 나는 옆에 벌크선이든 작은 배이든 함께 항해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더라. 대부분은 홀로 항해한다. 앞뒤 좌우를 살펴봐도 이 바다 한가운데에 우리 배 하나 뿐.

전달 사항도 많고, 리셉션 정산에도 문제가 있고 해서 8시정도 마침을 예상했는데 10시가 훌쩍 넘어서야 끝이 났다. 씻고, 일기를 쓰며 오늘을 돌아보는데, 흠. 평범한 하루였군. 싶다. 아까 읽던 민들레를 마저 읽고 자겠어요. 나폴리 피자와 함께 내일 돌아오겠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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