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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Sep 27. 2017

크루즈 승무원 일기

9월 26일

안개가 뿌옇게 낀 아침이다. 보통은 날씨가 너무나 화창한데 오늘은 오랜만에 뿌연 아침. 기온이 급 떨어져서 많은 크루들이 자켓이나 웃옷을 입고 있다. 허나 나는 그리 추운 것을 잘 못 느끼겠어서 평소와 다름없이 반팔 유니폼을 입고 출근 했다. 하긴 사무실에만 있으니 그리 춥진 않다.

오늘은 크루 드릴이 있는 날. 9시 반이 되자 긴급 방송이 나오고 한 시간 여 되는 시간 동안 평소와 다름없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훈련을 시작했다. 방화문 테스트도 하고. 사실 크루 드릴의 목적은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이라기 보다는 예상되는 긴급상황을 잘 훈련(연습)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긴급 상황 시에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크루들이 당황하지 않고, 자기 맡은 바 업무를 잘 할 수 있을 테니까.

드릴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약간(이 단어를 꼭 붙이고 싶다, 약간) 배가 고팠다. 어제 동료들이 리스본에서 사다 놓은 에그 타르트가 사무실에 한가득이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에그 타르트를 먹으며 스위트 하게 업무를 시작했다. 어제 너무 걸어서 그런가 요즘 너무 졸리다. 하아암~~

점심을 먹으러 캐빈으로 돌아오니 얼마전 타월을 빌려간 동생이 타월을 돌려주며 양갱과 국수를 캐빈 문고리에 걸어 놓고 갔다. 완전 감동. 나도 이런 거 받아보고 싶었엉.. 히히. 아껴 먹으려고 했는데… 아껴 먹으려고 했는데… 한 번 여니 멈출 수가 없었다… 양갱 안녕…

졸린 오후 근무. 며칠 전 일을 빡세게 해 놔서 그런가, 낼모레 보르도 기항지 준비를 더 이상 할 것이 없네. 오늘은 좀 쉬자. 내일은 그 다음 기항지 준비를 해야 할 테니. 사무실에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들이 많다. 승객들이 주시는 것도 있고, 각 기항지마다 간식 거리를 사 가지고 오는 것도 있고. 도쿄 오피스 소속 직원들이 승선하는 경우에 사가지고 오는 것도 있고, 외부 투어를 나갔다가 사가지고 오는 것도 있다. 아무도 정리를 안 하길래. 아니 정리를 해도 금세 어지러지니 내가 깔끔하게 정리해주겠어! 하고 바구니 칸 나누어 정리했다. 얘들아. 이제 우리 정리 좀 하고 살자!

다음 크루즈가 60일이던가 50일이던가. 오세아니아 크루즈다. 내 사랑 발리를 비롯해, 호주 몇 개 도시와 뉴질랜드까지 돌고 오는 크루즈인데 나에겐 옛 향수, 추억 여행 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의 크루즈다. 하지만, 좀 쉬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하루도 쉬지 않고 한중일 크루즈를 8개월 타고, 이번에도 중간 10일 쉰 것을 제외하면 8개월을 세계일주 크루즈를 타고. 11월 말에 내려 12월 말에 다시 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데스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고, 오늘 못 보면 몇 달 뒤를 기약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날로 약속을 잡고, 엄마빠와 가까운 데 여행도 가고, 몇 달에 한 번 있는 가족행사나 명절에는 나도 좀 끼고. 그런 생활을 당분간 해야 겠다. 그러고 싶어 졌다. 다음주면 벌써 추석 연휴던데. 나도 꿀송편 골라 먹고 싶단 말이다! (엄마는 꿀송편, 밤송편, 콩송편을 만드시는데, 나는 꿀송편 골라 먹기는 달인이다. 보기만 해도 딱 티가남 ㅋㅋ) 가끔은 이러한 사소한,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질 때가 있지. 향수병인가… ㅋㅋㅋ 향수병이라기 보다는 음식에 대한 갈망이겠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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