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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Sep 26. 2017

크루즈 승무원 일기

9월 25일 리스본, 포르투갈

9월 25일 리스본, 포르투갈 – 실망시키지 않은 포르투갈!

6시 30분 출근. 해도뜨지 않았다. 일출이 7시24분이었으므로. 어둠 속에 배가 정박했고, 어둠 속에 출근을 했다. 일찍 출근했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많다. 10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겠다. 시내까지의 거리는 3km. 4km는 택시를 무조건 타야 하겠지만 3km는 오랜만에 운동한다 생각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30-40분 정도 걸었을까 시내의 광장에 도착했다. 바로 옆에 바다가 붙어 있어 사람들이 여유롭게 앉아 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 바닷가에서 모래로 만들어 놓은 악어 등 동물 친구들도 만났다. 트램[1]이 유명하다고 하기에 나도 타려고 보니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다. 그리고 중요한 건 다 앉아서 탈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 반은 서서, 반은 앉아서 만원버스 마냥타고 있다. 시내 곳곳에 트램이 참 많았는데, 트램 마다만원이었다. 난 그냥 걸어 다니기로.


근처에 있는 교회로 향했다. 언덕이다. 인도도 좁다. 하지만, 차들이 대부분 잘 양보해줘서 무리없이 다녔다. 교회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는데, 예배 중이었다. 보통은 예배나 행사 중이면 개방을 하지 않는데, 자연스럽게 예배를보고 있었던 점은 굉장히 인상깊었다. 방해가 될 세라 잠시 서 있다가 찬송가가 끝난 틈을 타 나왔다. 우리 크루즈 말고도 저 멀리 대형 크루즈가 세 척이나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시내에는 단체로 관광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이럴 땐 모르는 곳을 가는 것보단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사람들이 교회를 지나 더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길래 나도 따라 올라가 보았다.일단 성공. 전망이 좋구나.


예전 회사 크루즈도보인다. 크루즈 한 척 만을 가지고 있는 지금 회사와는 달리 15여척의 크루즈 선을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 크루즈 회사. 자세히 보니 저기에 있는 배는 바로 칼로가 승선해있는 배가 아닌가! 나폴리 이후 바쁘기도 하고,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못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잠시 얼굴이라도 보는 건데 너무 아쉬웠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은데. 지난 크루즈 때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노르웨이의 베르겐에서 하루 이틀 차이로 기항지가 어긋나 만나지 못했다. 급하게 연락해 봤지만, 연락이 안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전날 기항하고 점심시간에 출항했다고 한다. 아쉽 아쉽. 


칼로와 연락이 닿지 않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냉장고 자석과 도자기 골무를 샀다. 점심을 먹을까 했는데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오늘같이 메스 문 여는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는 날에는 아침을 먹고 출근할 수 없기 때문에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해준다. 난 단 한 번도 메스에서 아침을 챙겨먹은 적은 없지만, 이렇게 리셉션으로 준비해주는 아침은 꼭 챙겨 먹는다. 일본인들이 많아 항상 오니기리[2]를 준비해주는데, 무슨 맛으로 먹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배가 고프지 않아 성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성까지는 또 언덕이다. 전망은좋겠네. 생각을 하며 힘차게 걸어 올라갔다. 성 근처에부터줄이 길었는데 표를 끊는 줄이다. 혹시나 해서 앞에까지 가서 확인을 하고 줄 끝으로 가서 섰다. 갑자기 두브로브니크의 케이블카 줄이 생각나서 걱정했는데 줄은 금세 줄어들었다. 안에 보니 카운터가 4군데나 있고, 안내하는 분이 있어 관광객들은 많았지만 효율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었다. 성은 굉장히 넓었다. 거의 360도로 리스본을 바라볼 수 있는 점이 가장 좋았다. 사람들도 흩어서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나도 돌의자에 가만히앉아서 눈에 들어오는 모습을 잘 담아두었다. 저 멀리 우리 배도 보이고, 방금 갔다 온 광장도 보인다. 날씨도 좋고,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성벽도 올라가고, 더 있고 싶지만, 구경을 하다 보니 배가 고파서 갈게. 리스본 시내 모습 구경 잘 했어! 고마워!


골목 사이에 있는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싶었는데, 무엇을 먹을지 정하지는 못했었다. 뭔가포르투갈다운 걸 먹고 싶은데. 지난 번엔 포르투갈식 샌드위치(치즈와소스에 듬뿍 담긴)를 먹고 완전 감동했는데, 이번에는 뭘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곳 저곳 레스토랑 메뉴를 보고 다니다가, 그림메뉴는 없었지만 포르투갈 전통 생선 요리를 하는 곳이 있어서 들어갔다. 전통 생선요리가 4가지나 되었는데, 제일 위에 메뉴를 추천해줘서 주문했다. Fried fish 어쩌고. 사실 Grilled 를 먹고 싶었지만 난 귀가 얇으니까. 맥주도 한 잔 시켰다. 빵과 치즈, 햄을 가져다 주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감동했다. 버터 대신 치즈 스프레드와 생선 스프레드가 있었는데, 처음 먹어보는생선 스프레드도 정말 맛있었다. 메인 요리로 나온 생선 두께가 얼마나 두꺼운지. 난 얇은 생선 튀김 같은 것을 예상했는데, 두꺼운 생선 두 덩이가얇은 튀김 옷에 튀겨졌고, 그 주위를 감자와 양파가 감싸고 있던 메인 요리. 내 입맛에는 조금 짜긴 했지만, 그래도 맛나 맛나. 


배도 채웠으니 또 걷는 거다. 디저트로 와인을 한 잔 마실까, 아이스 커피를마실까 고민하면서 다시 광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발길을 옮기는 도중에 오크 선물 가게에서 와인 마개를사고, 생선 통조림 가게에서 아까 먹었던 스프레드를 잔뜩 샀다. 그렇게 쇼핑을 하니 괜히 힘들어져서 택시를 타고 돌아갈까 하다가 음료수 하나 마시면서 걸어갔다. 메뉴 이름도 신선한, 서프라이즈 레몬 에이드를 서프라이즈 하게 마시면서 돌아왔다.

 많이 걸어서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날씨가 환상이라 기분 좋은 하루!


      

[1] 트램 : tram. 도로 이에 레일을 만들고 그 위를 주행하는 노면전차로, 리스본 곳곳에서 볼 수 있다. 

[2] 오니기리 : 일본식 주먹밥으로, 삼각김밥과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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