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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Sep 28. 2017

크루즈 승무원 일기

9월 27일

사진을 찍으러 야외갑판으로 올라가니 저 멀리 배 전방에서 기술자 크루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 불꽃이 튀는 것으로 보아 용접을 하시는 듯 하고, 옆에서 나는 듯한 요란한 철에 부딪히는 망치소리도 들린다. 오늘은 야외갑판에 전기기술자 분들도 일하느라 계신다. 이 배가 잘 항해하기 위해서는 묵묵히 이렇게 일해주시는 분들 덕분이다. 이번 크루즈 때는 승객 캐빈 관련하여 일하시는 기술자분들을 가까이에서 접하는 업무를 하니 아빠 생각이 가끔 난다. 아빠께서도 전기기술자셨는데 하면서. 물론, 크루즈에서 일하신 것은 아니고. 한 회사에서 28년, 그 전에도 일을 하셨으니 완전히 베터랑이시겠지. 위험할 수도 있는 힘든 이 일을 평생을 하신 거겠지. 그 전까지는 아빠께서 해오신, 하신 일에 관심이 별로 없었으므로 반성도 하며 아빠 생각을 한다.

배에서 일하는 크루들은 보통은 8개월에서 10개월 정도 배를 탄다. 나같이 싱글인데다가 남자친구도 없는 사람이야 단순히 보고싶은 친구들 생각, 맛난 음식 생각 뿐이지만 가족이 있으신 분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이 든다. 배에서 일하는 크루들 수도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우리 배는 3.5만톤. 보통 대형 크루즈 선들은 10만톤에 육박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크루즈는 22만톤이다. 이렇게 말하면 크기가 그리 쉽게 가늠할 수가 없는데, 직접 보지 않고는 쉬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얼마전 바르셀로나에서는 대형 크루즈 선 4대가 나란히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승무원인 나도 그 크기에, 광경에 놀라웠으니까. 우리 배는 승객 최대 1400명 탑승가능이다. 승무원은 350여명. 예전에 일했던 크루즈는 11만톤급이라 승객 최대 3700명에 승무원 1000여명이었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수에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가 크루즈 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터. 사실 세계 어딜 가도 우리나라처럼 크루즈 터미널이 좋은 곳이 없다. 특히, 부산은 신공항 온 줄. 터미널 뿐만 아니라 인프라를 잘 구축해서 투자하고 있는 크루즈 산업이 많이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램이다. 크루즈 크루들 근무환경도 좀 개선되고 ㅎㅎㅎ

오늘은 아무렇게나 다이어리에 적어 놓은 그동안 지출내역을 엑셀에 옮기고, 지난 크루즈 때 노트북을 안가지고 승선해서 손으로 끄적였던 노트를 꺼내 문서화 작업을 시작했다. 이제서야-_- 꺼내 보았다; 정말 그냥 끄적 끄적 한거라 정리를 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이번 크루즈의 목표는 모두 문서화 작업을 마치는 것인데 될지 안될지는 미지수 ㅋㅋ 아니면 모. 한국 가서 하지모 ㅋㅋㅋ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크루들만 갈 수 있는 6층 후방에 나가 바람을 쐬었다. 보르도 기항을 하기 위해 무슨 강으로 들어와서 양 옆으로 육지가 보였기 때문에. 시간도 마침 해가 진 후라 쫌 멋진 모습. 오랜만에 좋구나. 크루 전용 구역이라 들어가고 나오는 문에는 8개의 손잡이가 있는데, 나갈 때는 손잡이가 닫혔는지 열렸는지 육안으로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 보인다. 표기로 되어 있는데 열림표기(기호로 되어 있음)를 착각해서 8개 다 잠궈 놓고는 문을 열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그럼에도 그 순간 생각나는 건 혹여나 나의 이 모습을 브릿지나 세큐리티가 CCTV 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신경 쓰였다는 것 ㅋㅋㅋㅋㅋㅋ 태연하게 7층으로 올라가-_- 승객 구역으로 가 다시 크루 전용 구역 4층으로 내려왔다는 에피소드. 괜히 나에게 화가나 다시 6층으로 올라가 문을 확인해보니 8개 문이 아주 단단히 잘 닫혀 있었음 ㅋㅋㅋ 그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남… ㅋㅋㅋ

오랜만에 크루바에 가서 코로나 한 병을 시키고 인터넷을 할까 했는데 마침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책이라도 읽을까 싶어 책장을 둘러보는데 처음보는 한국어로 된 책이 있다. 판사님이 쓴 책인데 마침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과 만난 경험의 책이었다. 1/4 정도 읽었는데 마음이 아파서, 주책 맞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마침 코로나도 비웠길래 책을 덮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다시 읽어봐야지…

한국에서는 마시지도 않는 맥심 커피가 생각나는 밤. 문득. 쌩뚱맞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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