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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Sep 29. 2017

크루즈 승무원 일기

9월 28일 보르도, 프랑스

9월 28일 보르도, 프랑스 – 걷고, 걷고, 보르도

긴 하루다. 리셉션이 아침 6시 30분에 문을 열고 밤 11시에 문을 닫았다. 이렇게 긴 오픈 시간은 처음이다. 그래서 쉬는 시간도 덩달아 9시간이나 생겼다. 보통은 쉬는 시간이 나눠지는데, 나는 깍두기 같은 존재라 스케쥴짤 때 굳이 다른 이들과 맞출 필요가 없다. 따라서 9시간쉬는 스케쥴이 나왔다. 시간이 너무 많아도 걱정이다.


아침에 출근하니 밖이 깜깜하다. 아직 해뜨기 전이라. 쉬기 전에 야외갑판에서잠깐 본 보르도의 모습은 옛 건물들이 멋지게 강을 따라 들어서 있는 모습(강에 정박해 있다. 지난 크루즈 때 세느강을 따라 루앙에 정박한 것처럼. 세느강과 비교한다면더 좁고 수심이 얕은 느낌). 간간히 높은 교회 건물도 사이 사이에 보이고. 느낌이 좋다.


정박한 곳에서 5분 정도 걷다 보면 워터 미러, 물 거울이라고 하는 곳이있는데 저 멀리 있는 멋진 건물들이 물에 반사되어 또렷하게 밑에 하나 더 생긴다. 멋지다. 아이들은 물이 좋은 지 옷이 젖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잘 뛰어 논다. 우유니사막 같은 곳. 오늘은 쉬는 시간이 많으니 지도에 의존하지 말고 발길 닿는 곳으로 가자 생각 했다. 조금 걷다 보니 그랜드 극장이 나왔다. 밖에 공연 일정이 붙어있었는데, 낯익은 이름이 있어서 반가웠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님의 11월 공연. 괜히 자랑스럽다. 


그렇게 번화거리도 걷고, 상징적인 문들도 보고, 성당들, 멋진 옛 호텔 등 많은 곳을 가보았다. 아기자기하기도 한 곳이라골목 골목을 왔다 갔다 참 오래도, 많이도 걸었다. 달팽이 요리에와인을 마시고 싶었지만, 메뉴들이 다 프랑스어로 적혀 있기도 했고, 먹으려고결심한 순간부터 레스토랑이 없는 골목을 들어섰는지 한동안 배회했더니 배도 고프고, 힘들어서 포기포기. (사실 나름 고르고 골라 한 레스토랑에 앉았는데 바쁜지 메뉴판도 안 가져다 주고, 다른 테이블도 나처럼 기다리길래 일어서서 다시 배회) 난 소심하니까. 마음을 바꿔 좋아하는 거 먹자 싶었다. 수제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진한 IPA와 소고기 버거를 먹었다. 아. 꿀맛이구나. 사실 비주얼 보고 엄청 실망했는데, 빵이 오묘하게 너무 맛났다.


점심 먹고 또다시 골목 골목 구경하다 지쳐서 캐빈으로 돌아왔다. 잠시 휴식. 내가 방전되었으므로. 잠시 충전 겸 낮잠. 꿀잠 자고 나와서 겨우찾아낸 기념품 가게에서 엽서와 냉장고 자석, 도자기 골무를 샀다. 역시 프랑스. 물가 후덜덜. 보통 다른 나라에서 엽서 2-3개, 냉장고 자석, 도자기골무 사면 5-6 유로인데. 여기는 11유로.

보르도는 와인산지라고 하는데 파리와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관광객들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시내 거리에도 관광객들보다는 현지인들이 많은 느낌이었다. 기념품 파는 곳도 찾기 힘들었다. 관광 엽서도 담배파는 편의점에서 조금 팔고, 일반 서점에서도 일반엽서들 사이에 끼워 조금 팔고. 내가 오늘 겨우 찾아낸 기념품 가게 같이 냉장고자석, 그 지역 관광상품, 관광 컵, 도자기골무, 기타 일반적인 관광 상품 파는 곳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찾아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밤 11시에 리셉션 문을 닫고, 정리하고, 마감까지 하니 11시 40분. 잠시 데크 7의 전방 크루 전용 구역에 야경을 보러 갔다. 저 멀리 다리가 빛나고 뾰족한 교회와 성당들에 불이 밝혀져 있다. 멋지다. 여기 사람들은 이 야경을 매일 본 단 말이지. 부럽다.


근처 다리가 배가지나갈 때는 다리 자체가 위로 올라간다고 하는데 (보통의 경우처럼 중간에서 갈라져 들어 올려지는 형태가 아니라 엘리베이터 올라가듯이 다리가 올라간다고 함, 이야기만 듣고, 관광엽서에서 봄) 새벽 1시가 되어가는 지금, 30분은 더 기다려야 출항을 하고, 다리까지 가는 시간도 있으니  오늘은 아쉽지만 자기로 한다. 어제 자정에 도착할 때 누가 사진을 찍었다고 하니 내일 사진으로.


오늘 하루 종일 두배로 수고한 내 두 다리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제 쭉 뻗고 쉬게 해 줘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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