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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Oct 10. 2017

크루즈 승무원 일기

10월 9일

배는 여전히 흔들리는 오늘. 오늘은 나만 바쁜 날, 결제내역서 출력하는 날이다. 크루 드릴 하는 날이었는데, 날씨를 이유로 취소되었다. 이런 적은 또 처음이다. 나야 바쁜 날이니까 다행스럽다. 크루 드릴은 뉴욕 가기 전에 한 번은 더 하지 싶다. 미국은 까다로운 나라니까.

결제 시스템이 느려서 꽤나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보통은 1시 전으로 출력을 다 마치는데 2시가 훌쩍 넘어서야 출력을 마쳤다. 이게 출력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개인 정보니까 반으로 접어야지, 테이프도 붙여야지, 객실번호대로 출력 안되는 직원들은 하나하나 다 찾아서 끼워넣어야지. 여튼 결론은 4시가 넘어서 모두 끝이 났다. 이제 신용카드 결제 거부된 승객들이 현금 결제할 수 있도록 다시 프린트 해야 한다. 치프의 몫. 리셉션도 바쁜지 접는 일을 많이 도와주지 못했다. 아님 관심이 없거나. 여튼 나 혼자 독박 썼다. -_-; 출력하는 시스템이 엄청 예민하기 때문에 쉽게 오류가 나기 쉽다. 안되는 것 같다고 두 번 클릭해서도 안되고, 실행 중 다른 프로그램이나 문서를 열어서도 안된다. 더구나 다 일본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프로그램을 돌린다. 그래서 오늘 승객들 요청사항이나 기타 테크니션 연락은 써니한테 부탁하지 말라고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그렇게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치프가 이야기 했는데, 항상 결제내역서 출력하는 날 방해하는 이들이 있다. 한 두 명이 아니다. 나의 인내심을 이렇게 실험하나이까. 나의 화를. 나의 열받음을. 나의 빡침을. 이렇게 실험하나이까!!!! 아마 귀가 없어 못 알아들었거나, 눈이 없어 내가 노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겠지. 표정으로 나의 기분을 표현해 주었다.;;;;;;

양고기를 좋아하는 나도, 양고기와 양고기 카레가 주였던 저녁이 먹을 게 없었다. 배고파……………. 윈다도 먹을 게 없었는지 뭔가를 만들어 먹자고 했다. 9시쯤 해서 전화가 왔다. 크루 메스에서 만나기로. 피자 비슷한 뭔가 잔뜩 만들어 왔네. 소시지 듬뿍. 소스 듬뿍. 맥주 한 캔과 맛나게 먹었다. 땡큐 윈다! ^^ 크루 바에서 캐리비안 해적 영화를 틀어준다고 해서 가서 보았다. 헐. 자막이 없다. 영어 자막이라도 있어야 이해를 하지-_- 한시간쯤 보는데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캐빈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결제내역서 관련 긴장 했더니 더욱더 피곤하다.

뉴욕만을 기다리며 버틴다 ㅋㅋㅋ 뉴욕 지나면 하와이를 기다리며 버틸 것이고, 하와이 지나면 하선을 기다리면 버틸 것이다 ㅋㅋㅋ 어제 친구 하나가 크루즈에서 고생이 많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 문장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너무 고마웠다. 참 외로워지기 쉬운 크루즈 생활인데, 과분하게도 한국에, 외국에, 크루즈에 나 자신보다도 더 나를 염려해주고, 생각해주는 이들이 있어 행복하다.

화나고, 열받고, 빡쳤던 오늘 하루였는데 고마운 이들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내일은 또다른 행복한 하루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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