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대학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전공
어떤 형태로든의 대학원을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남들은 내가 외국가서 왠지 모르게 외국인 만나 자유롭게 살 거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사실 한국이 좋고, 내 고향이 너무 좋다(제 고향은 강원도 동해시 입니다^^) 근데 한국에서 무엇을 해서 돈을 벌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놀질 않을 테니까. 무언가를 찾을 테니까. 막연히 근자감으로 생활했다.
하선 후 휴가를 보내며 잠정적으로 승선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그곳에는 수많은 이유들을 대려면 댈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가지 아니겠는가. 배를 타는 것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가 아닌가. 아니다. 아니다도 아니고, 글쎄. 정도이다... 그렇다면?
사실 크루즈 승무원 첫 계약 때는 무한반복 한중일 노선이라 캐리비안이나 알래스카 노선 한 번만 타보면 소원이 없겠다 했는데, 그 이후 여차여차 배를 옮기고, 세계일주를 했으니 목표했던 바를 이루었다 하겠다. 물론 올해 말 12월에 아프리카, 남미 노선이 있지만, 다음 계약은 마침 4월에 승선해서 12월에 내리는 스케쥴이네? 흠. 아쉬운 대로 꿈을 이루었다. 세계일주. 이제는 다른 꿈을 꿀 차례...
코이카 봉사활동과 대학원 진학, 이 두가지로 오랜 고민 끝에 좁혀졌다.
하선 당시 2018년 각 대학의 전기 대학원 모집이 모두 마감한 가운데, 그럼 코이카를 가야지! 하고 거의 마음의 준비를 했던 때. 코이카는 2-3개월에 한 번씩 공고가 뜨니까. 1월의 어느날, 우연히 다시 한 번 들어가본 한 대학의 홈페이지에는 추가 모집 전형 공고가 떠 있었다. 운명인가. 운명이다! 나의 모토인 "기회는 먼저 오는 것부터"
어떤 형태로든의 대학원을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학력보다 실력이라는 생각에서. 그래서 코이카 봉사활동을 먼저 가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아무런 준비없이 떠난 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교원양성과정을 이수했지만 이것 만으로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 이후 자격증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공부를 더 한 것도 아니고, 바로 승선을 해서 하선을 했으니 우선 내가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 양성과정을 통해 내가 얻은 건 잠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이 이런 거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얼마전 양성과정을 함께 들었던 선생님들과 다시 재회했다. 3급자격증을 취득한 이야기, 그 이후의 이야기, 한국어강사의 현실 등등 우리는 또 그렇게 1년전 그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어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선호한다고 생각되는 대학 교육기관에서 채용하는 한국어교원의 자격요건이 석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은 99%라 말할 수 있고, 지방도 점점 그런 추세. 석사가 자격요건이 아니라면 3급 자격증에(3급 자격증은 1년에 한 번 시험을 쳐서 취득할 수 있고, 2급 자격증은 학점은행이나 석사 이수를 하면 취득할 수 있다) 공인기관 경력 2년 정도를 요구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 그런가 생각이 들기도 하다.
운명과도 같았던(이라고 믿고 싶다) 추가 모집을 하는 대학원에 지원을 했고, 오늘 면접을 보았다. 서울의 대학들에서는 압박면접(다른 표현이 생각이 안남;; 털리고 온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ㅎㅎ)도 많이 본다고 하는데, 국립대학교의 특성인 것인지, 이 학교의 특성인 것인지 교수님 두 분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면접이 진행되었다. 양성과정 들을 때도, 내 직업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었는데, 오늘도 역시나 ㅎㅎ
다음주 합격자 발표와 등록이다 ^^
이제 이렇게 다시 학생이 되는 것인가. 기대 기대.
올 한 해도 즐거운 한 해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