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부터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는 공간의 영어 과외 수업과 독서 모임, 영어 스터디 모두 안정적이었다. 코로나는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모두에게 그럴 것이다. 내가 사는 청주에 첫 확진자가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예측하지 못해, 알지 못해 더욱 공포스러웠다.
코로나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모든 것을 중단했다. 먼저 연락을 주신 분도 계셨는데 상황이 심각해질 조짐이 있어 모든 수업과 모임을 중단하고 당분간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사회적으로 가장 어수선한 시기였다. 많은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학교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이어나갔다. 공간의 영어 과외 수업은 당시 대면뿐이라 전부 멈췄다. 모임은 물론이었다. 모든 일정이 순식간에 갑자기 사라졌다.
2020년 1월에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땄으니 바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새로운 일을 구해볼 참이었다. ‘하필 뭔가 해보려고 할 때 코로나가 터질 건 뭐람.’ 상황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코로나가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공간 운영면에서는 코로나는 분명 독이었다. 공간의 영어 과외 수업과 모임은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었다. 나 홀로 아무런 일정 없이 공간을 지키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집 밖을 나와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코로나 시대에 참으로 다행이었다. 공간이 아니었다면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었을 테니 코로나 블루를 겪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공간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앞으로 월세는 잘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수입이 거의 0에 수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지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한 초등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코로나를 이유로 예정보다 조금 미뤄져 4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 당시 초등학교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교과 수업을 했는데 한국어 학급은 동영상 녹화 수업이 결정되어 동영상 녹화를 해야 했다.
처음 하는 일이라 바쁘게 초등학교에서 일했고 시간이 지나자 코로나도 점차 주춤하는 시기가 되어 영어 과외 수업도 서서히 다시 시작했다. 이 중에는 온라인 수업으로 바꾼 분들도 계셨다. 이 때 영어 과외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게 되었다. 이때 처음 접한 온라인 수업은 지금 지역에 상관없이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이 있던 시기라 각종 모임은 중단한 이후 공간을 접는 그날까지 다시 하지 않았다. 영어 과외 수업은 일대 일 수업이었기 때문에 계속 진행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며 이어갔다. 2학기가 되자 다른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도 하게 되어 오전과 오후는 초등학교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영어 과외 수업을 하며 청주 생활 중 가장 바쁜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를 나름 잘 이겨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