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콤플렉스
누구에게나 콤플렉스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특히 나 요즘 많은 이들이 함께 고민하고 목표도 없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만 여겨지는 영어는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 일 것이다. 서점에 가면 영어 관련 서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나 이렇게 공부했다’, 조금이라도 더 쉽게 영어를 정복하는 법을 알려주는 듯한 이야기들은 흔히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이나 지방 상관없이 초등학교 때부터 아니 훨씬 그 전부터 영어에 대한 열망은 부모님으로부터 아이들로까지 전해지고, 아이들은 그렇게 한글을 다 깨우치기도 전에 ABCD를 외우는 것이 보편화되어버렸다. 내 조카도 어린이 집에서, 유치원에서 배운 영어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영어가 한국에서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구나를 느끼게 된다.
어른이 되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더 많은 영어에 대한 부담을 안고 살아간다. 회사에 들어가려면 일정 점수 이상을 맞아야 함은 물론이고, 회사에 들어가서도 승진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점수만 만들면 뭐하나, 회화도 요즘은 다 잘해야 한다는데 하면서 회화도 공부해야 하고. 힘들다. 힘들어.
안타깝지만 지금의 현실은 이렇다.
영어란 것, 제대로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잘하지 못하는 것,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10년이나 공부했는데. 하면서 마치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 치부해 버린다. 정말 좋은 핑계거리다. 우리나라 영어 교육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10년을 공부했어도 내가 못하는 것이지, 이건 내가 노력을 안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한국 교육 자체가 잘못되어서 그런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래도 10년을 공부했는데… 하면서. 하지만 이 말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그렇게 따지면 영어와 더불어 국어와 수학도 그만큼의 양을 공부했는데, 지금 기억나는 게 있는지. 우리의 국어 실력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고, 고대시조는 생각조차 나지 않으며, 수학은 웬만큼 관심을 가진 사람들 아니고서는 미적분 기억을 해내기는 쉽지 않은 상태이다.
나또한,나의 노력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화시키기 위한 핑계만 대고 있었다. 나중에 깨달았다. 성의를 가지고 공부하지 않은 것을 공부라고 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따지면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했었는데, 일주일에 한 시간 1년을 배웠는데, 1년이나 배웠는데, 기억나는 건 왜 여성형, 남성형 이 두 가지뿐 인 건지. 국어의 고대시조, 세계사의 일부분이 기억이 나질 않아도, 왜 영어에만 그렇게 면죄부를 씌우는 것인 것 말이다.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 영어공부를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지금은 어떤 식으로 내신을 보는 지 모르겠으나, 내가 중. 고등학교 때 내신 시험은 선생님들이 100문 제정도 예상문제를 주고, 그중에서 25 문제가 나왔다. 그것만 잘 보면 다 맞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설사 문제가 변형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문을 주고, 주제를 고르는 문제, 혹은 문법을 주고 고르는 문제는 조금 만 공부하면 5지선다에서 답을 고를 수 있었다. 영어 시험을 잘 보는 것이 지내 영어 점수가 높다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보통의 학생들은 시험 점수가 높으면 내가 그것을 잘한다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영어 과외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이 친구가 영어 기초 문법이 정말 안되어 있었는데, 시험만 보면 1-2개 틀리는 기염을 토해냈던 것과 마찬가지다. 내신 시험을 보면 항상 2-3개 밖에 틀리지 않는데(사실은 다 예상문제를 달달 외운 결과), 기초는 정말 안되어 있고, 읽을 수는 있는데, 약간의 해석도 되는데 어려운 단어는 잘 모르며, 작문은 못하는 참 이상한 형태의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서 나오는 성적에 가장 높은 점수가 바로 나의 실력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난 중간은 가지 않겠어’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그래도 영어에 대해서는 중간은 가겠지 하는 가지고 있었다. ABCD 알고, 간단하게 문장도 만들 줄 알고, 몇몇 문법은 아직도 헷갈리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이 아니니 영어의 수준은 중간은 가겠지 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나도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영어에 대한 꿈이 있었다. 영어, 잘하고는 싶은데 공부한 적이 없으니 잘 할 리 없는 영어를 잘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다. 영어는 막연히 잘하고 싶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언젠가는 다 이겨내 주겠어’라고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늘 생각만 했지,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이것만 보면 영어를 잘 할 수 있다고 자신 있는 문구를 사용한 책들도 사서 보았고, 언어교육원에서 회화 수업도 들어보았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대학교 2년을 어영부영 보냈다. 3학년이 되어서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영문과의 생활영어 1학년 수업을 수강신청했다. 이상하게 그 수업은 타과 학생들이 더 많이 수강신청을 했고, 알고 보니 영어를 좀 하는 사람들이 점수를 따기 위해서 신청한 것이었다. 순전히 기초부터 가르쳐줄 거란 나의 믿음은 안드로메다로. 사실 이렇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학문에 대한 모욕이다. 어느 누가, 대학 영어를 기초부터 가르쳐 주겠는가. 그렇다고 하면 학원을 다녀야지. 나는 이때까지도 대학교육을 조금 무시했던 듯싶다. 수업이 수강신청을 한 학생들의 수준에 맞춰서 수업이 진행되니 얼마나 괴로웠는지 짐작이나 가는지. 이건 마치 초등학생에게 신문 사설과 9시 뉴스를 틀어주고, 현재 정치상황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것 같은 느낌 이랄까.
그리고 발표 수업은 얼마나 많은지, 정말 괴로운 한 학기였다. 같은 조 친구들도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다들 힘들어했고, 이런 친구들끼리 모인 영어 발표 수업은 보나마 나였다. 얼굴만 빨개지고 들어오는 그런 발표. 어쩔 줄 모르고 서로를 쳐다보기만 하는 그런 발표. 악… 정말이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받은 점수는 C+. 허걱. 털썩.
그렇게 여름방학을 맞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