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대학생인 너에게 해주고픈 말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결심하고 다녀온 나였지만 그 전까지의 대학생활은 정말 평범했다. 모두가 비슷하겠지만 왜 대학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 채, 아니 질문도 하지 않은 채, 질문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대학에 진학하였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가야만 하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대학을 선택하리라. 일정한 목표도 없이, 그냥 수능 점수에 맞춰서 대학과 별 고민 없는 과를 선택한다. 대학에 대한 나의 기대와 설렘의 이유는
‘자유’
였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 수 있다는 자유, 학교에서의 자유, 압박감 없는 자유. 대학에 대한 나의 기대는 정말, 자유 그 뿐이었다. 그리고 그 자유에 너무나 충실했다. 성적은 장학금 받을 정도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밑바닥도 아닌 평범한 정도. 영어는 잘하고 싶지만 잘하지는 못하는 수준. 수업시간엔 중간이나 뒷줄에 앉아서 필기는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는 평범한 나.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존재감이 있지도 않았던 생활. 그저 평범한 다수의 1인으로 그렇게 생활을 했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동기들 중에서도 공부하는 부류, 학생회 하는 부류, 나같이 동아리 활동하는 부류, 이도 저도 아닌 부류. 각각 목적 없이 떠도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하루하루 강의 대충 듣고, 미팅이나 소개팅에 열을 올리고, 어느 어느 과에 누가 멋있다더라 하는 수다로 하루를 보내고, 리포트 대충 쓰고, 주말도 대충 보내고. 그나마 동아리 활동을 하는 나는 양반이었다.
입학하기 전 고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사회에 꽤나 삐딱한 시선을 가졌고, 교육부 장관이 되겠다는 부품 꿈 아래에 현실적인 꿈인 교사가 있었다. 그리하여 사범대로의 전과의 야무진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전과에 대한 나의 희망과 목표는 ‘자유’라는 이름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동아리 생활, 학과 생활, 그리고 자유롭게 즐겼던 음주가무등. 전과는 티오가 나야하는 운과 과탑을 해야 하는 실력이 받쳐줘야 가능했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과탑을 꿈꾸는 사람이 몇이나 될 까. 보통 8학기를 들으면 과탑은 8명만 존재한다는 것인데, 동기들이 60명이었으니, 나는 8명 아닌 52명 중 한 명으로 남겠지.라는 생각으로 일찌감치 포기한지가 오래였다.
수강신청은 금요일은 당연히 빼고, 그러면 주 4일. 대학생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생각을 했다. 왠지 금요일까지 다니면 대학생이 아닌 느낌이니까. 우린 대학생 느낌 아니까. 아침엔 일찍 일어나기 힘드니까 빼고, 수업시간엔 최대한 뒤에 앉아서 교수님 눈에 띄지 않게, 수업은 1시간은 그래도 교수님에 대한 예의로 열심히 듣는데 그 다음부터는 이해도안될 뿐 더러 집중도 안 되어서, 다음 시간은 졸다가. 10분이라 도일 찍 안 끝내주시나 하고 시계만 자꾸 쳐다보고. 그럴수록 시간은 점점 더디어만 가는 것 같고.
시험 때가 되어서야 친구들 노트 정리 빌려서 정리하고, 한 번, 두 번 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시험 범위까지 쭉 훑어보고, 운이 좋으면 A 보통이면 B 그리고 까다로운 교수님은 C 이렇게 받았던 것 같다. 장학금은 받아본 적 없고, 평소에 리포트, 시험의 이유가 아니라면 공부한 기억이 없다. 왜냐면 내게 공부란 자고로 시험기간에만 하는 것이었으므로.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하더라도 토익이나 스펙을 쌓는 것이 지금처럼 경쟁적이지 않았다. 아니면 지방에 있는 대학이라서 그랬던 것 인가. 확실한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다. 교내 토익 강좌도 초급, 중급 한 강좌씩이었고, 종합대학교가 있는데, 토익 학원 하나 있을 법도 한데, 제대로 된 토익 학원 하나 없었고, 주변에 토익 강의를 따로 듣는 친구들은 없었다. 이런 실정이나 졸업반이 아닌 이상에야 토익을 치르는 친구들도 없었다. 그래서 여름방학은 그 저 노는 방학이었다.
그 누구도 공부와 학문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 주지 않았다. 이렇게 합리화라도 하고 싶다. 쳇바퀴 돌아가듯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자유가 주어진 고등학교 생활의 연속이었고, 자유에 대한 책임은 져야 했지만 360도 바뀌어버린 상황 앞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생활을 하였다. 생활하면서도 잘못된 것인지, 허송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방법도 몰랐고, 그냥 몰랐다.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꿈이 있던가. 목표가 있던가.
꿈과 목표를 가지는 것은 대학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저, 대학에 입학을 했으니 대졸의 타이틀은 보장이 되었고, 이 타이틀로 취업을 해서 잘 살아가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지는 못하지만, 뒤쳐지지도 않는 삶이라 생각했고, 큰 욕심도 없어서 대학 졸업하고, 대학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무역회사에 들어가서 일 하다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많이 바쁘다. 내가 경험했던 그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취업 스펙을 쌓는다는데 대학이라는 학문의 산실이 되어야 할 대학교가 취업준비사관학교로 거듭나는 그 발전이 못내 불편하다. 학교의 특성, 학과의 특성 보다는 취업률 몇 프로라는 타이틀이 더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지금의 대학이 못내 불편하다. 물론, 내가 학문이 산실에서 열심히 학문을 닦지 않았던 나는 할 말이 많진 않지만, 대학의 역할이 변질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토익점수 만들기에 제2외국어에 학점관리에. 스스로를 목 죄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점점 입시가 취업 입시까지 올라오는 느낌이다.
후에 내가 깨달은 것들을 먼저 이 과정을 거친 누군가가, 되도록이면 나처럼 후회를 조금 하는 누군가 진지하게 조언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지름길은 아니어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더라면
조금은 덜 힘들지 않았을까.
조금은 덜 방황하지 않았을까.
조금은 일찍 깨닫지 않았을까.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이야기를 통해 간접 경험하면서 시야를 조금이나마 넓히고, 시야를 넓히지 못한다면, ‘생각’을 한 번만 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보통 홈커밍 데이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마련해놓은 자리에는 대기업에 간 선배들만 와서 어떻게 취업준비를 했는지만 이야기하니까 나와는 더욱더 멀게 느껴지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만 여겨지고, 다들 사회에서 인정받고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들으니 공감보다는 난 저렇게 될 수 없다고 이내 포기하는 법만 배우게 된 건 아닐까. 학교 생활만을 이야기했지만, 생활 면에서도 진부했다. 뭘 해야 할지를 몰랐고, 작은 도시에 있으면서 그 시야는 더욱더 좁아갔다.
할 수 있는 만큼 많은 활동을 하고, 많은 경험을 해 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아르바이트가 되었든, 활동이 되었든, 봉사활동이 되었든, 시험 준비가 되었든 앞으로 살아가는 자양분이 되는 것 중에 경험만큼 좋은 것은 없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좋은 경험 나쁜 경험 따질 것 없이 경험이라는 것은 무조건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요즘은 아르바이트도, 봉사활동도 후에 취업을 할 때 이력서에 얼마나 쓸 수 있는지, 자기소개서에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한다고 하던데, 무조건 많이 경험하고 그 속에서 배우려는 생각을 가진다면, 일부러 스트레스 받아가며 내가 경험에 짜 맞추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