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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어학연수

간 이유는 열등감 때문에

by 꿈꾸는 앵두

평범한 대학 생활 2년을 보내고, 아무 생각 없이 3학년 여름방학이 되었다.

학기 내내, 방학 내내 해 오던 아르바이트들. 그 여름에는 학교 앞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준비하는 자격증도 없었고, 하루 6시간의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좀 쉬었다가, 방학 때 나처럼 할 일 없이 남아 있는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수다 떨고 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그러다가 어느 날, 친구가 4주 동안 뉴질랜드로 떠난 다며 점심이나 먹자고 했다. 방학 해외 프로그램 중 하나로 4주 동안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난다고 했다.

아. 뉴질랜드? 비행기 값이며 연수비용이며 비싸겠다는 생각과 든 생각은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했는데 졌다 졌어.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피시방에서 담배연기 맡으며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고. 순간 너무 초라해 보였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자유를 만끽하는 일 뿐이었는데, 친구는 앞서 나가는 기분. 그런 생각도 못하고 이제껏 시간낭비만 하며 살아온 것만 같은 부끄러움.


친구가 헤어진 후 학교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나완 상관없다며 지나친 공고를 발견했다. 참가비는 200만 원이었다.

200만 원.

200만 원.

대학생에게 200만 원이란?

국립대 중에서도 인문대를 다닌 나의 학비는 그당시 한 학기에 2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으니 200만 원이 나에게 주는 부담감은 꽤 컸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러워.

부러워.

부럽다고.

힝 부러워!!!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 일하는 피시방에 동생 하나가 일하기 시작했는데, 근무시간이 조금 더 많고 일주일에 하루 쉬는 조건으로 월급 85만 원이라고 했다. 당시 한 달에 열심히 알바를 하면 내 손에 쥘 수 있는 돈 50만 원. 그런데 휴학을 하고, 직원으로 일하면 6개월 정도만 일해도 500만 원은 모을 수 있겠는걸? 이래저래 계산을 해 보니 그럼 나도 어학연수를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어학연수라는 것이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하지도 않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못하는 일 중 하나로 치부해 버렸던 것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나 스스로가 규정지어 놓은 한계에서 벗어나 왔다.


외국에 나가는 친구를 보고, 부러워만 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열등감이 나를 움직였고, 외국을 가지 못하는 나를 화나게 했고, 방법을 찾게 했고,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건강한 열등감은 내게 좋은 자극제가 된다. 어떤 것이 열등감이나 콤플렉스를 갖는 것 또한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자칫 이것들은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나,


열등감쯤 콤플렉스쯤 다 이겨내 주겠어!


라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하나 제거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른 것이다. 내가 나의 열등감을 콤플렉스를 어떻게 마주하는 냐에대한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바로, 내 나이 22살 때 휴학을 했다.

22살. 지금 생각하면 그 어디로 어린 내가 결심을 하고, 실천을 하고, 홀로 힘들었을 텐데, 홀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많았을 텐데 참 야무졌다. 어학연수를 하기 위해서. 9개월 동안 열심히, 정말 아르바이트만 했다. 준비과정도 혼자였고, 모든 게 혼자였지만 결국엔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목표한 바를 잘 달성하고 귀국하였다.


이 작은(?) 사건이 내 인생의 “계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조금 의미를 두고 표현하자면 인생의 터닝포인트. 지금도 나태해지거나 힘들 때면 그때 내가 가졌던,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던 그때를 생각하면 힘을 내곤 한다. 이 성취가 앞으로 평생을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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