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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레터_1202. 팟캐스트,20년을 건너온 감성메신저

메마른 감성을 적셔주는 영화음악 한곡 어떠세요


1990년대에 영화팬들에게 라디오는 기성 세대는 모르는 내밀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며 감성을 길러주는 매체로서 역할을 담당했고, MBC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함께 아나운서들이 진행하는 영화프로그램은 깊이있는 영화정보와 함께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노애락과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아녔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전문 잡지를 접하기 힘들었던 시절, 1992년도에 라디오를 통해 첫 전파를 탄 ‘정은임의 영화음악’(이하 정영음)은 단순한 연예정보가 아닌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 PC통신 세대에게 영화라는 매체의 매력을 소개함과 동시에 다양한 영화 속 사운드트랙과 청취자들의 애환과 고민을 나누는 감성메신저가 되어 중독성있게 방송 시작 전에 카세트테이프 레코더에 공테이프를 넣고 녹음을 준비하기도 했죠.


정영음은 영화정보 외에도 노동과 인권, 시국에 관한 강도높은 담론을 이끌어내면서 2004년 4월에 폐지됐고 정 아나운서가 8월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달리하면서 추억 속에 묻혀있다가 고인의 부친이 녹음해 둔 카세트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해 팟캐스트라는 컨텐츠로 재탄생해 정영음앓이로 밤을 지샜던 중장년층 뿐 아니라 팟캐스트에 익숙한 신세대들에게도 폭넓은 공감대를 얻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2000년대 초기에 새로운 미디어로서 등장한 팟캐스트는 올해엔 대중적인 매체가 됐고 프로그램을 접하는 수단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만 바뀌었을 뿐이지 라디오에 익숙한 7080세대에게는 20년이란 시간을 건너와 복고적인 감성을 되살려주는 감성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팟캐스트 메인 매체인 팟빵에 영화관련 팟캐스트 만해도 300~400여개가 넘는데, 오디오보다 비디오에 익숙한 10대보다는 20년전 라디오를 듣던 중장년층이 라디오의 정체성과 결합해 시간적 제약이 없는 맞춤형 미디어인 팟캐스트 콘텐츠의 생산자이자 소비자, 즉 프로슈머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러한 가운데 필자 역시 20년 전의 감성을 되살려보고자 정영음을 비롯해 영화의 심리학, 시네타운 나인틴 등 여러 영화관련 팟캐스트를 들어보던 중에 신문 칼럼을 통해 정영음과 가장 유사하면서도 영화음악을 소재로 음악감독 인터뷰를 메인 콘텐츠로 채택해 영화평론가 윤성은이 올해 9월 말부터 시작한 '윤성은의 Screen music'이라는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습니다.



윤성은의 Screen music은 솔직하고 담백한 영화음악 감독의 스크린 데뷔 에피소드에서부터 영화 덕후인 음악감독들의 개성있는 영화적 취향과 영화음악 해설, 제작 안팎에 얽힌 이야기와 미발표 음악, 영화음악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라디오 감성의 팟캐스트 같아요.


영화계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태성, 김명종, 최승현, 이용범 등 네 명의 영화음악 감독과의 인터뷰에 이어 최근에는 일본의 이와이 슌지 감독을 초청해 인터뷰 방송도 하였고, 최근 10회차에 강제규 감독의 영화 <은행나무 침대><쉬리><태극기 휘날리며>의 영화음악을 맡아 스타성을 알린 이동준 음악감독과의 인터뷰를 들을 수 있었죠.


CG라는 특수 촬영 기법으로 국내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던 영화 <구미호>의 사운드트랙을 맡아 영화음악가로서 행보를 시작했던 이동준 음악감독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이어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로 대중들에게 비로소 영화음악가로서 존재감을 알리게 됐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7번방의 선물> 음악감독을 맡기도 하셨고요.



지금으로부터 꼬박 20년전인 1996년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홍상수와 <은행나무 침대>의 강제규 등 이른바 '포스트 코리안 뉴웨이브'라 일컫던 스타감독들의 탄생이 주목되었던 시기였고, 이동준 감독의 영화음악은 가장 동양적이면서도 한국적인 대금과 가야금 선율로 정한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 영화팬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동준 음악 감독은 이번 팟캐스트에서 영화 <은행나무 침대>와 <태극기 휘날리며>에 대한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솔직하게 들려줬는데요, 오랜만에 감미롭고 애절한 영화 사운드트랙과 미공개작인 일본영화 <링 사이드 스토리>의 메인 테마곡까지 들어보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어요.


팟캐스트는 스마트폰으로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어 집중에도 도움되고 잠이 잘 안올 때 낮은 볼륨으로 틀어놓고 잠을 청해보면 숙면에도 좋은 것 같아요.


건조해지기 쉬운 12월이 시작됐는데요, 메마른 감성을 적셔주는 영화음악 한곡 들어보는 건 어떠세요?


From mornin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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