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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레터_0425. 말을 멈추거나 침묵하는 지혜

'침묵은 지혜를 지키는 방패'라는 탈무드의 격언 떠올릴 때

 

대선 정국으로 들어서면서 후보자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언론이나 구설에 오르내리고 특히, 그 사람을 부각하기 보다는 그동안 가졌던 호감도를 불식시키며 부정적인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유독 침묵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눈길을 끕니다. 정지우 감독의 <침묵>이라는 영화에 최민식, 박신혜, 류준열 등이 캐스팅돼 올 하반기에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고요, 지난 3월에 개봉한 영화 <사일런스>에서는 이교도의 박해로 인해 종교적 딜레마에 처한 가톨릭 선교 이면을 비춘 거장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사유가 돋보였어요. 


롤랑 조페 감독의 1986년 작 <미션>과 달리, 우리가 몰랐던 가톨릭 선교에서 질곡의 역사를 또 다른 지점에서 이교도의 박해 속에 구원과 신앙의 참 의미를 되새긴 일본판 <미션>이라고 할 만큼, 폭력과 학대 속에 박해를 받을수록 깊게 뿌리 내리는 신앙의 진리를 일깨우는 동시에 우리가 영적으로 무장해제 했느냐란 침묵의 물음으로 조명합니다. 


 

최근 극장가에서 다양성 영화로 4만 명의 관객을 돌파하면서 조용한 흥행을 거두고 있는 영화 <나는 부정한다> 역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 진위를 놓고 벌어진 세기의 법정 공방을 소재로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깊은 공감과 잔잔한 여운을 전하는데요.

 

특히, 영화 속에서 유대인 출신으로 홀로코스트 역사학자 데보라 교수 역으로 열연한 레이첼 와이즈는 역사를 왜곡하는 집단에 대해 분노를 삼키면서 '거짓이 승리하는 것과 진실이 침묵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변호인단의 조언에 따라 법정에서 상대로부터 회유와 공격을 받았을 때 자신을 부정하면서 침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줍니다.   


유대인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 온 탈무드에도 '침묵은 지혜를 지키는 방패'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괜히 말을 해서 긁어 부스럼을 내는 것보다 가끔은 모르는 척 침묵하는 것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방패가 된다는 것이죠. 


 

영화 <나는 부정한다>를 통해 우리는 최근 역사교사서의 국정화나 위안부 졸속 합의 등 왜곡된 역사 속에서 신념과 진실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깨닫게 되고 선택의 순간에 놓일 때 때로는 침묵하는 지혜로, 나를 부정하는 침묵을 통해 신념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침묵에 귀 기울이지 않는 탈 침묵의 시대에서 침묵으로 간직되어야 할 내면의 진실이 소진되고 있어 표현되지 않는 침묵하는 서로에 대한 경청이 절실하다"는 깨닫게 되는 아침입니다. 

 

지난 15일자 중앙일보 주말판 '삶의 향기' 코너에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기고한 '침묵을 위한 경청'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전한 말인데요, 그는 "가장 많이 대화할 수 있는 시대에 정작 대화가 줄어드는 모순이 나타나고 내면에 귀 기울이는 경청의 부재로 인해 끊임없이 소음이 생산된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그는 경청을 들리는 소리를 듣기, 대화 등 적극적인 듣기, 그리고 내면에 의한 듣기 등 세 단계로 구분해 경청하는 지혜를 전하고 있는데요.

 

먼저 소음을 비롯한 수동적으로 듣기의 과정에서 상대의 언어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의 경험을 연결해 섣부른 조언을 하려 하고 우월한 입장에서 훈계하려는 태도가 소통에 있어 착각과 왜곡, 그리고 악의적인 의도의 오역까지 만들어 낸다며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합니다.


적극적인 듣기에서는 상대를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대화에 집중하고 맥락을 고려해 상대의 관점에서 서보거나 내용의 전개와 강조, 일관성 등을 살펴야 하고, 다자간 대화의 경우에는 호감과 갈등이 혼재된 속에서 대화의 주도권에 주시하며 표정이나 제스처 등 비언어적인 반응을 감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내면의 의미를 듣는 것은 TV토론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이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요. 상대의 침묵을 참지 못하거나 대화가 진행되다가 침묵이 시작되면 불안해하며 진지함을 감추려 불필요한 말을 하게 되는데, 이때 침묵하거나 대화를 잠시 쉬는 지혜도 필요할 것 같아요.

 

침묵을 불안해하진 않으시나요? 송 교수의 말처럼 듣고 싶은 말만 골라 '좋아요'의 장벽에 갇혀 침묵하는 지혜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요?


 From Mornin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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