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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레터_0428. 안성기 특별전, '개그맨' GV

컬트 코미디 실험 이명세와 만남, 현실적이고 몽환적 캐릭터 연기 선봬


봄꽃이 화사하게 피고, 청명해진 하늘을 바라보니 문득 불어오는 봄바람에 기대어 햇살을 나른하게 느껴도 좋을 날씨가 찾아왔네요.


최일남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넝쿨'을 원작으로 배우 안성기의 연기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 이장호 감독의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에도 '새로운 바람이 분다. 바람 불어 좋은 날에 내 꿈도 부풀어 온다'는 문구로 개발이라는 바람이 진행되던 80년대 사회의 변화상을 그려내고 있지요.  


스크린에서도 변화의 바람은 불어와 몇몇 블록버스터는 상업 영화의 본고장인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북미 지역보다 한국에서의 개봉을 며칠 앞당기기도 하는데요, 이렇듯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한 한국영화의 역사와 함께 영화배우로서 60년간 제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국민배우' 안성기가 최근, 한국영상자료원 주최로 주요 출연작 27편을 무료 상영하는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 전'을 지난 13일부터 28일까지 개최했어요.



최근 봤던 오승욱 감독의 영화 '킬리만자로(2000)'를 비롯해 '바람 불어 좋은 날(1980년)', '고래사냥(1984년)', '기쁜 우리 젊은 날(1987년)', '개그맨(1988년)', '하얀 전쟁(1992년)', '남자는 괴로워(1994년)', '인정 사정 볼 것 없다(1999년)', '라디오스타(2006년)' 등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주요 출연작 스물일곱 편인데요.


중견배우 안성기는 1957년 작인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 열차>에서 부친과의 인연으로 김 감독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고 아역으로 데뷔해 40여 편에 출연했고, 이장호 감독의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중국집 배달부로 변신해 제19회 대종상영화제에선 신인남우상을 받았고 영화 <칠수와 만수> 옥상 페인트공, <킬리만자로> 한물간 동네 건달, <개그맨> 정작 자신은 웃지 못하는 개그맨으로 변신하는 등 스크린 속에서 자취를 남기면서 격변의 시대에 위태로운 청춘의 초상을 대표하는 '페르소나'처럼 살아왔죠.


시골 출신 청년 3명이 등장하는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말더듬이 중국집 배달부로 출연하는 안성기는 "나도 처음부터 말을 더듬었던 건 아니야. 서울 와서 할 말 못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야"라며 "참고 살아야 해.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말하고 싶어도 벙어리인 척"이라는 말로 1980년, 경제성장의 이면을 조명, 사회 부조리를 체감한 소시민의 삶과 애환을 표현했습니다.  



지난 22일, 영화 <개그맨> 상영 후에는 충무로에서 스타일 넘치는 미학을 구현해 온 이명세 감독과 함께 GV(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필모그래피와 연기 철학을 시민들에게 전했어요.


영화 <개그맨>은 이명세 감독의 초기작으로 풍자와 해학을 통한 컬트 정서 가득한 블랙코미디 입니다. 영화 속에서 밤무대 DJ, 개그맨 이종세로 변신한 안성기의 캐릭터는 새롭고, 현실인 듯 허구인 듯 영화감독을 꿈꾸다가 연기도 하는 배창호 감독, 황신혜와 3인조 은행 강도를 결성하고 실제 범죄를 모의합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뒷골목 인생들은 영화 <킬리만자로>에 이어 우연한 기회로 총을 손에 쥐게 되는데요, 이는 권력을 갖게 된 후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 웃픈 일탈처럼 느껴지고, 배창호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기쁜 우리 젊은 날>과 캐스팅도 같아 리부트처럼 다가오며, 하드보일드 블랙코미디의 대가인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키치적인 감성에 더해 홍상수의 최근작에서 자주 차용하는 영화감독과 꿈을 소재로 한 몽환적인 정서도 특징 같아요.  


이날 모더레이터로 나선 김형석 영화평론가가 "인정 사정 볼 것 없다 촬영 끝나고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영화 안 찍는다는 후문이 있었는데 이명세 감독과의 작업이 어땠냐"고 묻자 안성기는 "이명세 감독은 1989년도에 <개그맨>으로 데뷔를 할 때,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기존의 영화 문법을 넘어서는 색다른 것을 느꼈고, 이 영화를 하면서 배우로서 하고 싶은 캐릭터나 감정선도 허용이 돼서 좋았다"며 "많은 배우가 당시에 신인이었던 이 감독과 같이 작품을 하고 싶어 했다. 아직도 작품을 같이 하고 싶은데, 또다시 한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전했어요.


특히 "<개그맨>을 비롯해 <남자는 괴로워><인정 사정 볼 것 없다><형사:Duelist> 까지 캐릭터도 세계도 다르고 할 때마다 정말 힘들었다. <형사>라는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남산의 드라센터 연습장에서 훈련은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힘은 들었지만 늘 하고 나면 남는 게 있고 좋은 추억이 있고, '형사중독'이라는 마니아도 있는 만큼 이 감독과 작품하는 게 기다려진다"고 답했죠.


영화 보는 내내 극 중 종세(안성기 분)의 방 안에 찰리 채플린 그림도 걸려 있고, 행동이나 캐릭터 등을 많이 따온 것이냐는 관객의 질문에 이명세 감독은 "영화를 영화로 찍는 다섯 명의 감독 중에서 항상 찰리 채플린이 들어가는데, 그때 당시만 해도 찰리 채플린의 흉내를 냈던 희극 '웃으면 복이 와요'에 나왔던 남철, 남성남 콤비 캐릭터에서 차용했다"라며 "20여 일 만에 찍으면서 당시 영화 전문지 스크린의 부록으로 찰리 채플린 포스터를 받아 잘 쓰게 됐다"고 설명했죠.



이어서 안성기는 "일부러 채플린의 모습을 연습하고 이런 적은 없고, 캐릭터의 느낌을 갖고 비슷한 몸짓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찰리 채플린은 블랙코미디에 영향을 많이 끼친 정점의 영화인으로, 영화에서 분장과 의상을 하게 되면 그 인물처럼 많이 된다"며 "평소와 달리 콧수염 하나 붙이니까 채플린처럼 되는 느낌이다. 눈 만 약간 크면 비슷할 것, 아이디어를 내서 머리를 두 갈래로 내리고 눈썹을 강조하면서 우스꽝스러우면서 몽환적인 몸짓이 나왔던 것 같다 "고 전했어요.  

 

최근작 <사냥><화장> 등에서도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캐릭터를 보여줌으로써 완숙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의 자세를 준비하고 있냐는 질문에 "다음에 어떤 작품이 올지 기분 좋은 상상과 행복감을 느끼고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할 계획이며, 배우로서의 일만 생각해왔고,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날 때도 그런 감정을 느껴왔다"며 "특히, 나이가 들면 에너지가 있어 보이지 않기 쉬운데, 체력 면에선 자신이 있는 편"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민 배우라는 칭호에 어울리게 겸손한 태도로 영화인들에게 귀감이 되며 자기 관리도 철저히 해온 배우 안성기, 출연작의 완성도를 떠나 영화 속 그가 만들어내는 캐릭터 연기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From Mornin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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