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여울, 배우 송강호의 고해성사..새 시대를 맞는 자세
"나는 몇 번이나 원고 전체를 검열, 수정 당하거나 힘들게 쓴 원고 자체를 ‘싣지 못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때마다 ‘부당한 세상’보다는 ‘좀 더 용기 있게, 과감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나’를 원망했다"
지난 20일 자 정여울 작가가 중앙일보의 '삶의 향기'란 코너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 말입니다. 정 작가는 자신이 지난 정권이 관리해왔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면서 부당한 권력을 향해 투쟁하는 용기를 펼쳐 보이지 못해 분노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다가왔다는 고해성사를 하듯 말을 잇고 있습니다.
권력 앞에서 한없이 약해진 펜의 힘은 메마른 세상 속에서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지 못했고 작가 자신도 두려움의 뿌리를 모른 채 엄마가 지켜줄 거라 믿는 아기처럼 인생을 던져 도전해보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는 용기가 없었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그는 "작가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자기검열"이라며 누가 나를 검열하기 전에 스스로 검열하며 스스로 삭제해왔던 익숙해진 것과의 결별을 선언하고는 웅크리고 주눅 들고 상처 입은 자신을 깨워 안아주고 세상 밖으로 나와야겠다는 자기 암시와 함께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 분야에서 창작 활동을 해온 예술가들이 블랙리스트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죠.
지난 25일 저녁 방송된 JTBC의 뉴스룸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과 19대 대통령선거로 인해 7개월간 중단됐던 '목요 문화초대석' 코너에 영화 <변호인>에서 부당하고 폭력적인 공권력에 맞서 사자후를 내뱉으며 '연기의 신'으로 주목받았던 배우 송강호가 출연해 자신의 연기론과 함께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인한 예술가들의 자기검열에 대한 트라우마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전했습니다.
영화 <변호인>에서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연기했던 그는 "개인적으로는 당황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주변에서도 혹시 불이익이 있었나 걱정해주는 분들이 있었다. 제작자, 투자자들이 곤란을 겪고 어느 정도 불이익 겪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에 누를 끼치지 않고 연기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라며 "20~30대 핫한 배우가 아닌데 뭐가 무서우냐"라는 아내의 조언에 용기를 얻어 출연하게 됐다고 밝혔어요.
직접적인 불이익에 대한 소문에 대해 송강호는 "나에 대해 그런 소문도 있었지만, 블랙리스트는 은밀하게 작동되는 것이라 겉으로 드러나는 증거나 증인이 없어 공식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라며 "그런 소문만으로도 블랙리스트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이 가장 무섭게 느껴졌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죠.
송강호 역시도 앞서 정여울 작가의 자기 고백처럼 "내가 어떤 작품을 선택할 때 시나리오를 읽고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이 작품을 정부에서 싫어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라고 전했습니다.
영화 <사도>에서의 연기에 대한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그는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영조 대왕의 딜레마였는데, 왕의 입장과 아비가 지녀야 할 마음이 충돌하는 지점이 어떻게 깊이 있게 표현될까, 말투나 언어도 기존 사극의 언어보다는 일상적으로 하려고 했다"며 사극 속 군주의 모습이 너무 경직된 것 같아 이를 자유롭게 표현하되 극 중 인물이 지닌 감정의 딜레마를 재미있고 심도 있게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어요.
<사도>에 이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 출연 계기에 대해 "시나리오를 보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기도 했는데, 뜨거운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두려움을 극복하고 출연을 결심했지만, 그 과정이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고 아직도 내면에 남아 있는 자기검열의 트라우마를 전했어요.
송강호는 연기론에 대해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다 보니까 유머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다. 우리의 일상이 다양한 감정들이 모아져 인물이 임체적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라며 "유머를 위해 연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감정 중 소중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어요.
최근 개최된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힌 바 있는 그는 "광화문 촛불 집회처럼 영화 한 편이 보잘것없지만 모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뼈 있는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글 한 편, 영화 한 편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세상에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것, 예술 창작자는 물론 새 시대를 맞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요?
From Morning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