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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레터_0707. 문화 주권 회복에 횃불밝힌 '옥자'

[2017 상반기 영화계 결산] 외화 강세속 칸이 주목한 한국영화 세편


매년 7월 초가 되면, 각종 매체나 큐레이터는 상반기 결산을 하는 글이나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요, 올 상반기에 정리했던 영화 리뷰를 토대로 지극히 주관적인 '2017 상반기 베스트무비 5'를 꼽아 보고 상업적인 흥행이나 이슈 몰이에 있어 외화에 다소 밀린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올 상반기 국내 극장가의 총관객 수는 1억 명에 다소 못 미쳤다고 하는데요, 이 가운데 한국영화 점유율은 42.6%로 현빈-유해진-김주혁의 존재감이 빛났던 영화 <공조>가 781만 명으로 1위에 올랐고, 정우성-조인성 콤비의 아우라가 주목받은 영화 <더 킹>이 531만 명으로 500만 명을 넘은 작품은 두 편뿐이었어요.


반면에 외화의 완성도는 상대적으로 높았는데요 올 상반기에 관람한 50여 편의 리뷰를 별점 5개 기준으로 되돌아본 결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과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로건>은 별 다섯 개 만점을 줬던 것 같아요.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목받은 <문라이트>와 <컨택트>,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의 컴백이 반가웠던 <존윅-리로드>는 갱스터 무비와 누아르가 영리하게 결합한 '올해의 액션 영화'로 꼽을 만한 완성도를 보였다고 생각됐어요. 이 외에도 DC코믹스의 야심작 <원더우먼>은 전쟁의 비극 속 휴머니티를 성찰하는 걸크러쉬의 매력이 느껴졌으며, 다르덴 형제의 <언노운 걸>은 치열한 삶 속에 균열이 초래한 직업윤리와 죄책감을 사유하면서 폭력성과 이기심 등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 같아 별 네 개 반으로 호평했어요.



서사의 완결성에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창동 키드로서 절제되고 감각적인 연출을 통해 겨울철 제철영화로 3050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가 돋보였고 <번지 점프를 하다> 이후 16년 만에 애달픈 부성애를 진지하고 감성적으로 표현해내는 이병헌의 멜로 장르 컴백이 반가웠던 이주영 감독의 <싱글라이더> 정도만이 국내 영화에서는 별 네 개 반으로 호평했던 것 같습니다.


국내에 내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짧은 GV로 더욱 기억되는 영화 <너의 이름은.>은 동일본 대지진, 세월호 참사 등 대재앙에 대한 리얼리티 있는 성찰을 통해 그려낸 몽환적인 스펙터클에서 네트워크 시대에 잊지 않았던 기억이 가져온 기적의 순간을 조명합니다.


역사에 대한 반성은 우리가 잊어버린 기억을 비로소 떠올릴 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사유를 전하는 이 작품은 몽환적인 미장셴으로 현실과 맞닿은 리얼리티 있는 성찰을 통해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치유와 위안을 전하는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 세계를 보여줍니다.



SF 시리즈에 정통 웨스턴 장르를 교배하는 서사로 '엑스맨' 시리즈의 리부트로서 '울버린'의 대단원을 연출한 영화 <로건>은 3대에 걸친 부성애를 성찰하며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경배하는 판타스틱한 마블 코믹스의 웨스턴무비 같아요.


<울버린> 시리즈 전편의 혹평을 견뎌내고 비상한 휴 잭맨과 제임스 맨골드의 랑데뷰가 돋보인 이 작품은 마블의 매니아층을 4050은 물론 6070까지 확장할지도 모르겠어요. 특히 로라 역의 다프네 킨은 시얼샤 로넌을 처음 스크린에서 만났을 때처럼 깊은 인상을 남겼고, 향후 <엑스맨>의 리부트를 이어갈 '리틀 울버린'이 될 것 같았어요.


영화 <문라이트>는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흑인 소년이 일상의 불안 속 상처로 가득한 가운데 흔들리고 위태로운 모습을 푸른 달빛에 투영해 미국 사회의 민낯을 서정성 있는 엘레지(비가)처럼 담아낸 작품입니다.


극 중 리틀의 대부가 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존재감을 각인시킨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의 연기가 빛나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안전망에서 내쳐지며 위태로운 소년의 성장기는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보이후드>의 흑인 버전이라할 만합니다.


문명의 시초는 과학이 아닌 언어라는 드니 빌뇌브의 사유와 상상력이 만들어낸 SF 영화 <컨택트>는 미지와의 조우가 제로섬 게임이라는 성찰을 전합니다.


영화가 때론 보는 것이 아닌 체험이라는 걸 각인시켜주는 이 작품은 <에너미>에 이어 절지동물 사랑을 유감없이 보여준 드니 빌뇌브의 영화 세계을 나타냅니다. 디지털 이전에 음성, 음성 이전에 표의 문자라는 인류 문명의 진화를 사유케하며, 특히 <킹콩>의 나오미 왓츠를 떠올리며 언어학자로 변신한 에이미 아담스에겐 인생 영화가 된 것 같아요.



지난겨울 광화문 촛불 집회와 더불어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따라 보궐로 치러진 19대 대통령 선거 등 얼마 전 영화상 시상식에서 배우 이병헌이 수상소감으로 전했듯 현실이 허구를 기반으로 한 영화를 압도해버리는 분위기 탓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블랙리스트 여파는 미국 평단으로부터 호평받았던 영화 <아가씨>가 아닌 <밀정>으로 선정된 데 의구심을 갖게 하면서 결국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사퇴하기에 이르렀죠.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다섯 편의 한국영화가 초청돼 홍상수와 봉준호 감독은 국내 스타 감독으로서 명예에 찬물을 끼얹는 노이즈 마케팅의 희생자가 됐는데요.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자로 선정된 배우 김민희는 홍 감독과 불륜설 이후 칸영화제와 국내 매체에 모습을 나타내 열애를 인정하면서 희대의 스캔들을 만들어냈고, 국내에 공개된 홍 감독의 <그 후>는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예술을 빙자한 자기 합리화'라고 비난받으며 평점 테러를 당했어요.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은 봉 감독의 영화 <옥자>는 스크린-온라인 동시 개봉이라는 배급 방식으로 인해 칸에서 평가를 받기도 전에 페드로 알모도바르 심사위원장과 프랑스 극장주들로부터 외면받았죠.


얼마 전 영화 <대립군> 정윤철 감독으로부터 개봉한 지 일주일이 되기도 전에 <미이라>에 스크린을 몰아주고 있다고 비난을 받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3대 멀티플렉스에도 이러한 영향이 미쳤는데, 영화 <옥자>에게 3주간의 홀드 백(Hold back; 극장 종영 이후 TV나 VOD 배급 시점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유예 기간을 두는 것)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넷플릭스의 온라인 개봉 방식에 반발해 상영 거부를 선언했고 결국 <옥자>는 과거 충무로를 주도했던 서울극장, 대한극장 등 단관 상영관이나 독립영화관에서 상영이 결정됐습니다.


국내 스크린의 90% 이상을 독과점하고 있는 멀티플렉스가 넷플릭스에 전통적인 영화 배급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스파이더맨:홈커밍> 등 할리우드 대작이 개봉되면 또다시 온통 스크린을 그 영화로 깔아놓을 것이 분명한 바, 멀티플렉스에서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오른 작품들의 이번 주 스크린 점유율이 급감할 것이 분명해지지만 <옥자>는 단관 극장 등에서 안정적으로 스크린 수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아이러니로 다가옵니다.


다만, 칸영화제에 초청된 한국 감독의 작품은 뚜껑을 열어보니 괜찮은 완성도를 보여 한국 영화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낳게 했어요.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조폭 영화에 하드보일드 감성 덧입힌 누아르의 성취라 할 만큼 뻔한 스토리를 균열감과 스타일로 밀어붙이는 장르의 미학이 돋보였는데요.



유사한 영화로, 교도소를 무대로 만든 한석규-김래원 주연의 영화 <프리즌>보다 디테일하고 황정민-강동원 주연의 <검사외전> 보다 실험적인 작품으로 기록될 만한 것 같아요. 하지만 편견과 자기애에 뒤덮인 나쁜 마음의 감독이 SNS에 내뱉은 아무 말은 일부 평점 테러를 감수해야 했죠.


정병길 감독의 <악녀> 또한 스토리의 약점을 상쇄시키는 한국형 누아르의 강렬한 인장 같았습니다. 살인 병기 소모품으로부터 네버 다이 악녀로 살아남기까지 극 중 숙희의 모습은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야 하는 정글 속 여성들에 대한 헌사로 다가옵니다.


액션의 장인, 류승완 키드의 명맥을 잇는 액션 마스터 <우린 액션배우다> 정병길 감독의 진화가 반가웠고, 최근 본 누아르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도입부로 남을만 해요. 박찬욱의 '금자씨'를 뛰어넘는 '숙희' 김옥빈의 미친 존재감은 미장셴으로 남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친환경 기업이란 가면을 쓴 대기업 미란도가 유전자 조작 기술을 통한 식용 슈퍼 돼지의 사육을 위해 전 세계에 분양한 10년 후, 무공해의 강원도 산골에서 '옥자'를 키우며 평온한 일상을 살던 미자라는 소녀가 사라진 옥자를 찾아 서울과 뉴욕으로 행방을 쫓아 추적하는 모험을 그려냅니다.


이 영화에서 봉준호 감독은 전작 <괴물><설국열차>의 주제 의식은 유지하면서도 사회에 대한 날 선 비판으로 위트와 풍자 가득한 스토리텔러로 명성을 쌓았던 영화 <플란다스의 개><피도 눈물도 없이> 등 초기작을 떠올리게 하고, 최근 영화계에서 <옥자>의 상영을 거부한 대기업 계열의 멀티플렉스를 극 중 초국적 기업 미란도로 은유하면서 선택권을 빼앗는 탐욕적인 자본가 권력을 고발하는 것 같았어요.


영화는 거대 기업이 탐욕과 이윤 추구를 앞세워 착한 소비자를 기만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조리를 비판하면서 필자에게는 최근 읽고 있는 콜렘 캠벨 박사가 쓴 건강 서적 <무엇을 먹을 것인가> 영향 때문인지 GMO(유전자조작) 푸드와 MSG(인공조미료)에 길들여진 식생활 건강에 관한 봉준호식 적색경보처럼 다가왔는데요, 특히 엔딩신에서 시스템에 저항하고 공명하는 울음소리들은 극장을 나온 뒤에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경제 전문 미디어 팟캐스트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이하 경제브리핑)은 지난 4일 방송에서 '<옥자> 상영 거부한 CGV, 롯데가 자승자박 한 것이 아닌가'라며 "멀티플렉스 업체들이 시대의 요구와 흐름에 역행하면서 90%에 가까운 점유율을 믿고 소비자의 선택권과 상대적으로 편리한 극장 접근권을 박탈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습니다.


영화 <옥자>가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 추억의 영화관이나 독립영화관 등 전국 111개 극장에서 300~400회가량 상영하고 있음에도 지난 주말까지 흥행 순위 4위에 올라 전체 스크린 점유율은 1.9%에 불과하지만, 좌석 점유율은 <박열>보다 높아 누적 관객 수도 11만 명을 넘었다고 설명했죠.


경제브리핑은 "넷플릭스가 1997년 미국에서 비디오 대여업체로 출발해 최근 글로벌 가입자 1억 명을 넘어섰지만, 유료 콘텐츠 이용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국내 시장에서 13만 명밖에 회원을 유치하지 못하며 돌파구를 찾지 못하다가 이번 <옥자>의 개봉으로 인해 넷플릭스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고 더 많은 가입자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어요.


특히, 경제브리핑은 "그동안 멀티플렉스의 관행에 비춰볼 때, 미국 현지에서 호평받은 <스파이더맨:홈커밍>이 지난 5일 개봉함에 따라 1천여 개에 가깝게 대규모로 스크린을 확보한 영화 <박열><리얼><트랜스포머:최후의 기사>의 스크린 수가 급감할 것을 예상되는 바, 이들의 영향과 관계없는 <옥자>는 꾸준히 관객몰이할 수 있다는 게 '멀티플렉스의 역설'로 다가온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지난 6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리얼>은 전일 대비 반 토막이 난 353개의 스크린을, <박열> 역시 44%가 줄어든 743개로 1,703개의 스크린으로 40% 가까이 점유한 마블 코믹스의 야심작 <스파이더맨:홈커밍>에게 스크린을 내줬으나, 대형 멀티플렉스로부터 보이콧을 당한 <옥자>는 6개 줄어든 91개 스크린에서 상영하면서 박스오피스에서도 <리얼>을 바짝 뒤쫓고 있어 아이러니가 느껴집니다.



경제브리핑 PD는 "넷플릭스가 대기업 계열의 멀티플렉스, 자신들을 옹호하는 착한 소비자 사이에서 인지도를 높이면서 노이즈 마케팅에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며 "드라마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는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좀비의 이야기를 그려낸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으로 컴백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고 덧붙였어요.


최근 들어 재개봉 영화나 저예산 독립 영화들의 온라인 배급 시사회가 점차 늘고 있는 가운데, 올 상반기 끝날 즈음에 개봉한 <옥자>의 봉준호 감독이 내년 개최될 미국아카데미시상식의 감독상 후보까지 거론되면서 하반기에 국내외 투자, 배급사들의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텐트폴 영화들 틈새 사이로 <옥자>가 대중문화계에 던져진 다양한 담론을 업고 가늘고 길게 상영하면서 문화 주권 회복에 눈뜬 소비자들에게 관람 패턴의 변화라는 각성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됩니다.


From Morningman.


경제브리핑 불편한진실_1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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